힘 빼기의 기술 - 카피라이터 김하나의 유연한 일상
김하나 지음 / 시공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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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조근조근 차분한 목소리를 들은 건 회사의 특강 시간이었다. 토크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 강연에서 카피라이터 김하나는 단연 돋보였다. 성우를 준비한 적이 있어서인지, 남들 앞에서 은근 자신감이 있다는 그녀는 '만다꼬'로 대표되는 충고 아닌 충고를 계속했다. 카피라이터답게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깊이 남기는 말들을 많이 했고, 공통된 주제는 너무 거창하고, 필사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핵심가치를 세뇌시키고, 미래 비전을 위해 헌신하고 뼈를 깎아야한다는 기존의 교육과는 완전히 결이 달라 어안이 벙벙했다
 
"만다꼬 그래 쎄빠지게 해쌌노?"
 
경상도 사투리로 뭐하러, 뭘 하려고에 해당하는 '만다꼬'에 엄청난 공감을 했다. 매번 죽을 힘을 다해 도전해야하고, "힘내! 할 수 있어!"가 제일 흔한 말인 요즘 오히려 가장 와닿는 말이었다. '쉬고 싶으면 쉬어도 된다, 그렇게까지 스트레스 받으면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직장인들의 Q&A에도 조심스레 조언을 하면서도, 분명히 할 말은 했다. 대부분의 질문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웠으며, 걱정 투성이였지만 대답은 짧고 명쾌했다. 충고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충고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서도 그녀는 청중을 집중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더라. 만다꼬 정신으로 무장한 저자의 목소리는 참 역설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이었다. 직장 생활 5년차, 이런저런 퇴사 욕구가 극에 달하는 이들을 상대로 그녀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회사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퇴직도 하나의 탈출구라고 생각해요."
 
이직을 하고, 프리랜서로도 지내본 저자의 조언은 하나하나 와닿았다. 나는 회사 지원서에도 나를 '적당 주의자'라고 소개할만큼 힘을 빼면 오히려 일이 잘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수영이나 테니스에서도 가장 힘든 게 바로 힘을 빼는 것이다. 지나치게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하나하나 뜯어고치려고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보다는 잠시 한 걸음 물러나 편한 마음으로 임한다? 그럴때 오히려 더 괜찮은 성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나도 덜 힘들었다. 인상적인 강연 후 그녀의 에세이집을 읽어본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미리 말한 것처럼 '기술'에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힘 빼기'에 집중하면서.
 
"어떤 목적도 내비치지 않으면서 꼬박꼬박 할 말을 다 하고, 어떤 욕심도 부리지 않으면서 사람을 오래 붙잡아두는 글. 그래서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초현실적 효과를 거두는 글,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싶어 했다."  - 문학평론가 황현산
 
그녀의 글은 말처럼 역시 담백하면서도 힘이 있었고, 소소한 힘빼기의 이야깃거리가 모여있었다. 1부는 저자가 여기저기 기고하고 틈틈이 끄적거린 일상 수필이었고, 2부는 남미 여행의 추억들이 담겨 있었다. 냥이 집사로서의 기록도 제법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개인적으로 일상, 특히 부모님과의 흐뭇한 추억이 많이 담긴 1부의 이야기들이 좋았다. 유연한 사고, 여유있는 마음가짐이 정말 큰 힘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특히 어린 딸을 키우던 엄마의 일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자라서 이 글을 보게 될 아이를 상상하며, 잊지 못한 소중한 하루를 기록하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가. 1등을 해야한다, 돈을 잘 벌어야한다 이런 뻔하고 부담스런 잔소리보다 묵묵히 아이를 응원하고 토닥여준 양육 방식이 지금의 '만다꼬'를 빚어낸 게 아닐까 싶었다. 다짐과 긍정적 글귀로 가득한 일기장은 잠시 접어두고, 그냥 힘을 쭉 빼고 잠이나 자자. 오늘 하루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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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에 속지 마라 - 불확실한 시대에 살아남는 투자 생존법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이건 옮김, 신진오 감수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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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시대에서 '투자'는 일확천금보다 '생존'이 최우선시되어야 한다. 투자에 대한 인사이트를 넓히기 위해 추천 받은 <행운에 속지 마라>는 단순히 투자 지침서가 아니었다. 이 책은 사회학, 철학, 과학 이론을 넘나들며 일생생활까지 지배하고 있는 이성을 실랄하게 비판한다. 모두까기인형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투자전문가이면서도, 어쨌든 치열하고 실수 한번에 모든 게 무너지는 월가에서 살아남은 자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책에서 자신과 비슷한 투자가 네로가 헬기 사고로 죽는다. 본인 역시 언제나 불확실한 운의 영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듯 하다.)
 
서브프라임 사태, 미중 무역갈등. 잘나가는 시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건 너무나 쉽고, 실제로 봐왔다. 니콜라스 탈레브는 이런 검은 백조가 나타나는 순간, 합리적이고 매우 과학적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이론들이 풍지박산 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의 성공이 ''에 큰 힘을 빌렸으면서, 후견지명으로 본인의 실력과 능력덕분이었다고 떠벌리는 것이다. 그는 이런 행동들이 바보같은 일이라면서 강하게 비판하고, 언제나 이론은 진리가 아니라 반증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노벨상 수상자는 물론 철학자 칸트, 흄 등을 비판하면서도, 유일하게 과학철학자 칼 포퍼만큼은 인정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도발적이면서도 매우 매력적인 그의 주장, 독설은 동종업계 사람들에게 거듭 운에 속지 말길 당부한다.
 
그렇다고 모든 일은 운에 달려있다는 낙관적이고 무책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운은 준비된 자에게 불어오는 바람과도 같다. 점점 살아가면서 성실성이 반드시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흔히들 배워왔듯이,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공부하고, 착실하게 모은다고 모두가 성공하지는 않는다. 이런 전통적인 방식은 성공의 필요조건이긴 하더라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비즈니스 세계, 투자의 영역에서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준비된 자도 성공할 수 없다. 하지만 애초에 준비되어있지 않다면, 소중한 운이 따라왔을 때도 허망하게 지나쳐버릴 것이다. 운은 결국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내가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을 겸손하고 침착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색다른 시각으로 성공을 바라보고, 투자자의 입장에서 항상 보수적이면서도 적극적으로 위기를 준비하고, 기회로 바꿔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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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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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 진행된 행복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누가 왜 행복한가"에 대한 우리의 통상적인 생각은 틀린 부분이 많다. 이 강의는 최근의 과학적 연구가 밝히는 행복과 관련된 성격, 객관적 조건(돈, 결혼), 문화등의 요인을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행복을 다시 평가해본다.

 

연세대 인기 강의 <행복의 과학>의 강의 소개는 위와 같다. <행복의 기원> 책을 읽고 나니 위 강의도 꼭 들어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심지어 익숙한 위당관에서 수업이라니!) 최근 '행복'은 강연, 도서, 자기계발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화두다. 하지만 이런 행복수업을 듣고 나면 언제나 알맹이가 빠진듯한 인상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꿔라, 남과 비교하지 마라, 행복은 성적순/경제력순이 아니다.' 모두가 행복해지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그 방법론이 너무나 천편일률적이라 의문이 갈 수밖에 없다. 각자 처한 상황이나 삶의 기준이 모두 다른데, 어쩜 그렇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쉬운걸까? 차라리 과학적으로 여러 요소를 살펴보면서 '행복'이란 모호한 개념을 '모든 것은 생존과 번식의 수단'이라는 시각으로 살펴보는 이 책이 제일 와닿았다.
 
행복 역시 생존과 번식을 위한 진화의 산물에 불과한데, 즉 거창한 삶의 목표나 지향점이 아닌데 인간이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며 매달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란 존재일 뿐이다. 대중에게 퍼져있는 '행복을 위해'란 대표 명제에 저자는 전적으로 반대하는 다양한 논거를 바탕으로 신선하게 이어간다. 마치 창의성의 존재 이유처럼 인간은 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이고, 먹고 자고 사랑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에 반기를 들고 다윈의 진화론을 슬쩍 끌어다가 행복감을 새롭게 살펴보는 저자는 개인적 경험보다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다. (본인이 행복을 연구한다고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다고 고백하기도.)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저자의 지도교수 논문에 등장한 단어는 <행복의 기원>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아무리 큰 쾌락이라도 어느샌가 질리고 뻔해지기 마련이며, 이런 감정은 허무함과 무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복권에 당첨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게 아니라 박스 안 초콜릿처럼 소소한 즐거움에 어느순간 물들어가는 게 더욱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밖에도 유전적 요인, 그 중에서도 외향성이란 특징이 행복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진화론이란 새로운 안경을 쓰고 보면 인간의 행동이 조금 더 구체적이고 과학적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생존 장치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더라도 결국 행복 심리학의 화살표를 사람에게로 다시 돌아온다. 각자가 가진 가치와 이상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야만 사람의 가장 단맛을 서로 느끼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책만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행복'이 가진 지나치고 거창한 허울을 벗고 조금 더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은 큰 수확이다. 책 말미에 등장한 사진처럼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고 서로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만큼 소소한 행복은 없다. 그러한 행복을 위해 오늘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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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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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빌어먹을 물고기, 물고기, 물고기새끼! 곤의 생사 문제는 사실 걱정할 필요 없고 물에서 나온 뒤 어른들이 그의 특별한 폐활량을 미심쩍어하며 무언가를 캐물어도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무시하면 그만이겠지만 정작 강하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결코 자신의 손이 닿을 수 없는 호수의 바닥, 그 깊이였다. 자신이 가지 못하는 곳에 곤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거리감과, 언젠가는 곤이 정말로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다른 물고기 떼들 사이로 깊이깊이 헤엄쳐 들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예감이 흔들고 지나간 미로의 바닥에는 길을 잃은 분노와 질투라는 이름의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수없이 겹이 덧씌워지는, 아직 발생지 않은 장면들이 상상의 틀에서 벗어나 현실로 방생되고 있었다.

--- p.97~98"

 

강렬한 표지만큼이나 놀라운 흡입력을 자랑하는 짧은 소설이었다. 분량 때문이 아니라 빠른 호흡과 신선한 날 것의 느낌으로 빠르게 읽히는 편이었다. <아가미>는 독특한 상상력로 빚어낸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기 위해 호흡하는 우리의 일상같았다. 죽음을 마주하고 본능적으로 살아나기 위해 몸부림친 곤의 인생은 매우 좁다. 때리고 괴롭히고 욕하는 게 일상인 강하의 통제 아래 숨죽이고 살아가는 그에게 물가는 삶의 탈출구였다. 꽁꽁 숨겨야하는 비늘을 마음껏 드러내고, 자유롭게 호흡하며 헤엄치는 그 순간이 그에게 유일하게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역설적으로 ''이란 이름을 지어준 것은 툴툴거리는 강하였다. 물고기새끼라고 부르며 욕하던 건 미움의 표현이 아닌 소중함을 애써 돌려 말한 것이었다.  ''이라 부르면 <장자>에 나오는 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처럼 언제 어디로 떠날지 몰랐기 때문에, 그저 주저하고 후회하고 그리워했다. 곤은 결국 마지막엔 '아가미'로 호흡한다. 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구해내며 생명이란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 스스로 곱씹으며 말이다. 인생이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해 헤엄을 치는 일이다. 그저 곤은 아픔을 간직하고 아가미를 펄떡거리며 조금 외로운 곳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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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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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그간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면반쯤은 제대로 살고 있는 셈이다온전히 살고 싶다면사실은 세상이 나를 속였다기보다는 내 쪽의 일방적인 착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지만이 첫 소설집에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의 부끄러움민망함분노미움죄책감 등 다양한 감정들을 탐구하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그러나 탐구는 탐구이야기는 이야기다소설가로서 최은영의 가장 큰 미덕은 그게 무슨 탐구든 반드시 근사한 이야기로 들려준다는 점이다그녀가 앞으로 쓰게 될 근사한 이야기들이 바로 이 책에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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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에 대한 극찬은 익히 들어왔다순하고 맑은 힘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며 폭넓은 인간 관계의 감정을 다루는 소설들은 큰 인기를 끌었다. 2018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작가&소설가들이 뽑은 2016년의 소설 공동 1다양한 수식어에 걸맞은 소설일까 기대반 걱정반으로 책을 펼쳤는데잔잔한 울림으로 만족스럽게 마지막 장을 넘겼다어마어마한 몰입감으로 독자를 사로잡거나번뜩이는 반전은 없다대체 왜 관계가 단절되었는지그들이 서로에게 남긴 상처가 어떻게 치유되는지도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하지만 작가의 시선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차근차근 되새겨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느낌이다.

 

˝너가 어른 되면 남자고 여자고 없다너가 여자여서 안 된다는 소리 듣거들랑 무식한 소리구나 하구 비웃어버려넌 뭐든 다 되고 뭐든 다 할 수 있다너 땐 남자구 여자구 마음 바른 사람이 잘 살거여.˝ - <비밀>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인물들이 유독 많이 나온다지방 소읍의 일본 고등학생과의 우정이라하기엔 묘한 관계(<쇼코의 미소>), 베트남 가족과 아픈 과거를 곱씹는 관계(<씬짜오씬짜오>), 케냐 청년과의 썸인듯 아닌듯한 관계(<한지와 영주>), 폴란드 친구와 동경하던 선배를 공통분모로 추억을 공유하는 관계(<비밀>). 마치 편지와 일기를 훔쳐보듯 잔잔하게 이어지는 사건의 연속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담백한 맛이 있는 글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깊게 다가왔고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다그만큼 여운도 깊었고, <쇼코의 미소>에서 틱틱거리는 할아버지와의 애틋한 에피소드도 큰 울림이 있었다외면하지 않고 직시해야만 하는 현실의 무서움도 차분하게 마주하기에 배울만한 점도 많더라.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_「언니나의 작은순애 언니」

 

 

익숙지 않은 타국에서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들은 성장의 문턱을 통과한다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말이다물론 담담한 일기처럼 이어지는 7편의 소설에서 거듭 느낄 수 있는 삶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전혀 다른 타인을 인정하면서나아가 온전히 자기 자신이란 이유만으로 혐오의 멸시를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요즘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불합리하고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탓을 너무 하는듯 하다정작 나쁜 마음으로 스스로가 자책해야할 사람은 떳떳하고 뻔뻔한데 말이다세월호 사건을 다룬 <미카엘라>에서 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의지하고나아가 배려하는 마음으로 관계가 중요하다개인의 힘만으론 결코 버틸 수 없는 게 요즘 시대이니 말이다한편할아버지할머니가 나오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애틋하다손주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표현 방식만 다를뿐 한결같기 때문이다그들에게는 아무리 훌쩍 자라고다 커도 여전히 한없이 귀엽고 보듬어야할 '아기'인가보다어리광을 피우고투정을 부려도 언제나 변치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기에 살갑지 못한 나를 합리화해본다그래도 언젠가 다가올 이별에 가슴이 먹먹해도 담담하게 그리워하고 추억할 수 있도록 후회없이 사랑하고 표현해야겠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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