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저 빌어먹을 물고기, 물고기, 물고기새끼! 곤의 생사 문제는 사실 걱정할 필요 없고 물에서 나온 뒤 어른들이 그의 특별한 폐활량을 미심쩍어하며 무언가를 캐물어도 적당히 얼버무리거나 무시하면 그만이겠지만 정작 강하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결코 자신의 손이 닿을 수 없는 호수의 바닥, 그 깊이였다. 자신이 가지 못하는 곳에 곤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거리감과, 언젠가는 곤이 정말로 한 마리 물고기가 되어 다른 물고기 떼들 사이로 깊이깊이 헤엄쳐 들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예감이 흔들고 지나간 미로의 바닥에는 길을 잃은 분노와 질투라는 이름의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수없이 겹이 덧씌워지는, 아직 발생지 않은 장면들이 상상의 틀에서 벗어나 현실로 방생되고 있었다.

--- p.97~98"

 

강렬한 표지만큼이나 놀라운 흡입력을 자랑하는 짧은 소설이었다. 분량 때문이 아니라 빠른 호흡과 신선한 날 것의 느낌으로 빠르게 읽히는 편이었다. <아가미>는 독특한 상상력로 빚어낸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기 위해 호흡하는 우리의 일상같았다. 죽음을 마주하고 본능적으로 살아나기 위해 몸부림친 곤의 인생은 매우 좁다. 때리고 괴롭히고 욕하는 게 일상인 강하의 통제 아래 숨죽이고 살아가는 그에게 물가는 삶의 탈출구였다. 꽁꽁 숨겨야하는 비늘을 마음껏 드러내고, 자유롭게 호흡하며 헤엄치는 그 순간이 그에게 유일하게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역설적으로 ''이란 이름을 지어준 것은 툴툴거리는 강하였다. 물고기새끼라고 부르며 욕하던 건 미움의 표현이 아닌 소중함을 애써 돌려 말한 것이었다.  ''이라 부르면 <장자>에 나오는 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처럼 언제 어디로 떠날지 몰랐기 때문에, 그저 주저하고 후회하고 그리워했다. 곤은 결국 마지막엔 '아가미'로 호흡한다. 물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구해내며 생명이란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 스스로 곱씹으며 말이다. 인생이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해 헤엄을 치는 일이다. 그저 곤은 아픔을 간직하고 아가미를 펄떡거리며 조금 외로운 곳에서 노력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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