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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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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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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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의 철학과 사유의 깊이 시대정신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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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양장) I LOVE 그림책
캐롤라인 제인 처치 그림, 버나뎃 로제티 슈스탁 글,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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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아이가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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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웨이 - 나를 위한 12주간의 창조성 워크숍, 개정판
줄리아 카메론 지음, 임지호 옮김 / 경당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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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하면 제일 먼저 보는 곳이 책 맨 앞 페이지의 저자 약력과 사진이다. 

 

내가 어떤 사람의 글을 읽는지 살펴보는 첫인사 같은 공간인데 가끔 그곳이 공란이거나 약력조차 넣지 않은 추상적인 소개만이 몇 줄 있을 때는 영 섭섭하다.

이번 과제인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열자 부글거리는 머리에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고양이같이 긴 손톱을 하고 팔찌를 주렁주렁 단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흑백사진인데도 짙은 색의 매니큐어가 짐작될 정도였다. 영화에 나오는 수정 구슬을 읽어 주는 마술사 같다. 다시 겉표지로 돌아간다. '나를 위한 12주간의 창조성 워크숍'이라는 부제가 달린 앞장에 출판사조차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혼자 책을 골랐더라면 아마 사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감이 덜한 채 책을 읽기 시작한다.

 

 저자에 대한 불신은 내 안의 무자비한 검열관과 부정적인 생각이 내가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을 가로막았던 경험과 일치하는 부분을 읽고 나서 사라졌다. 나만 이렇게 주저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공감이 생겼다. ‘창조성이 막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드는 경향’을 설명할 때는 그렇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전문의가 되고 대전에서 살 때 시간이 많은 적이 있었다. 갑작스레 아빠가 돌아가시고 낯선 곳에서 생긴 많은 시간을 창조적으로 보내지 못했다. 힘들지 않은 근무가 오후 네 시에 끝나면 수영을 배우거나 요가를 하거나 찻집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난생 처음으로 요리다운 요리를 하기도 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글쓰기를 적극적으로 시작하지도 않고 고민하지도 않았다. 대신 무료하고 적막한 시간에 미드를 봤다. 나 자신의 의식을 적극적으로 깨우고 싶지도 않았는데 의식을 깨워서 직면하는 것이 귀찮기도 두렵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미드를 보고 있노라면 마취라도 된 것처럼 세상만사가 사라지고 시간이 흘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자다가도 발을 동동 구를 정도지만 내 인생에서 그렇게 멍하게 시간을 보낸 경험은 그 때가 유일하니 아주 헛것은 아니라고 위안한다. 저자가 '창조성이 막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드는 우리'에 대해 설명할 때 내가 '미드'에 빠져 마취된 시간을 보낸 것이 생각났다.

 

  그 때 내가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해서 읽게 되었다 해도 지금처럼 간절하게 읽었을까? 아마 '창조주가 창조성을 북돋아준다'는 첫 구절을 읽자마자 흥미가 급감해서 어딘가에 던져두었을 거다. 오랜 시간 나는 무신론자였고 기독교라면 고개를 저을 정도로 반감이 심했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고 '지배체제의 수단'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태에서 이런 글은 뭔가 초점이 맞지 않는 종교인이 쓴 자기개발서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랬던 내가 로고스 교회를 다니게 되고 김기현 목사님을 만나게 되고 그리하여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저자가 말하는 '동시성' 인가?

 

 이 책은 '창조성'을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에 대해서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초심자가 ‘미덕의 덫’에 빠지거나, 자기방어적인 자세로 실패를 두려워하거나, 질투심으로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될 때 완벽주의로 주춤거리고 상처받고 웅크려 들려고 할 때 저자는 다독이며 ‘과정’을 즐기라고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며 도전하라고 이야기 한다. 산다는 것, 내 안에서 속삭이는 소리에 귀 기울여서 주체적으로 창조적으로 산다는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인 동시에 신을 사랑하는 일이지 싶다. 실제로 나의 목표는 끝내주는 작품으로 상과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글을 쓰며 살다보면 자신과 주변을 자주 들여다보고 하루하루를 더욱 풍성하게 살면서 좀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애쓰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어린 아티스트가 즐겁게 뛰놀도록 작업공간이 신들린 무당집 같아야 하고 아티스트로서 머리를 곱슬곱슬하게 파마하거나 괴상망측한 옷차림을 하기도 한다는 저자의 사진을 다시 펴본다. 거기에는 자유롭고 사랑스러운 여인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면서 본인이 고통스럽게 터득한 삶의 진리를 모두에게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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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야곱 DNA - 축복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이중적 욕망
김기현 지음 / 죠이선교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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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미시시피 버닝’이라는 영화를 봤다. 1960년도 미시시피 주에서 일어난 인종차별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백인 우월주의자들인 KKK단이 흑인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폭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대사는 정확하지 않지만 아주 착하게 생긴 백인 여자가 “흑인들을 차별해야 한다고 성경에 나온 줄 알았어요.” 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생각해보면 모두가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성경 뿐 아니다. 엄청난 책들을 번역본이든 원본이든 우리는 손쉽게 구해서 읽을 수 있다. 성경을 소수만 읽고 해석할 수 있었던 중세의 시대를 지나 지금은 손만 뻗으면 우리말로 써 있는 성경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글자를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제대로 된 해석을 하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제대로 된 해석을 했다고 해도 삶 속에서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성경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마태복음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버리곤 했다. 한 구절씩 한 단어씩 새겨가며 읽지 않고 급한 마음에 주욱 읽은 다음에 같은 에피소드가 반복되는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은 넘겨가며 읽었다. 그러다가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놀랐다. 한 단락을 읽으면서도 한 시간 넘게 토론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었다. 신자들이 느낀 점도 다 달랐고 해석하는 부분도 달랐다. 거기에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의미를 추가로 설명해서 들으니 이해도가 높아지고 내용도 풍성해졌다. 같은 성경도 해석하는 사람의 지식에 따라, 인품에 따라, 세계관에 따라 달라진다.

 

 헨리 나우웬은 ‘영적발돋움’에서 “말씀과 침묵은 둘 다 길잡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우리가 자기 구미에 맞는 말씀만 골라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우리가 자기가 만들어 낸 음성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라고 지적한다.

 “눈 먼 사람이 눈 먼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마태복음 15:14)라는 말씀처럼 나는 제대로 된 길잡이가 필요한 성경에, 말씀에 눈 먼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 ‘내 안의 야곱 DNA'는 야곱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이자 주석이다. 이 책은 수천 년 전 평범하고 작은 사람이 ’믿음‘을 붙들고 살아내는 이야기를 인문학적 신학적 해석들을 통해서 지금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볼 수 있게 해 준다.

 

  야곱은 약했으나 ‘믿음’이 있었고 그와 더불어 ‘의지’가 있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약하고 어리석고 욕심 많은 나 자신도 조금씩 변모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또 치열한 삶 속에서 녹여낸 깊이 있는 글들이 야곱의 삶을 통해 나의 이중성을 직면하게 하고 반성하게 한다.

 야곱의 생을 붙들고, 성경 말씀을 붙들고, 치열한 우리 삶을 묵상해야만 쓸 수 있는 진국 같은 글을 만나서 반갑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해석자이자 길잡이를 만나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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