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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야곱 DNA - 축복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이중적 욕망
김기현 지음 / 죠이선교회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미시시피 버닝’이라는 영화를 봤다. 1960년도 미시시피 주에서 일어난 인종차별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백인 우월주의자들인 KKK단이 흑인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폭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대사는 정확하지 않지만 아주 착하게 생긴 백인 여자가 “흑인들을 차별해야 한다고 성경에 나온 줄 알았어요.” 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생각해보면 모두가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성경 뿐 아니다. 엄청난 책들을 번역본이든 원본이든 우리는 손쉽게 구해서 읽을 수 있다. 성경을 소수만 읽고 해석할 수 있었던 중세의 시대를 지나 지금은 손만 뻗으면 우리말로 써 있는 성경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글자를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제대로 된 해석을 하고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제대로 된 해석을 했다고 해도 삶 속에서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성경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마태복음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버리곤 했다. 한 구절씩 한 단어씩 새겨가며 읽지 않고 급한 마음에 주욱 읽은 다음에 같은 에피소드가 반복되는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은 넘겨가며 읽었다. 그러다가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놀랐다. 한 단락을 읽으면서도 한 시간 넘게 토론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었다. 신자들이 느낀 점도 다 달랐고 해석하는 부분도 달랐다. 거기에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의미를 추가로 설명해서 들으니 이해도가 높아지고 내용도 풍성해졌다. 같은 성경도 해석하는 사람의 지식에 따라, 인품에 따라, 세계관에 따라 달라진다.
헨리 나우웬은 ‘영적발돋움’에서 “말씀과 침묵은 둘 다 길잡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우리가 자기 구미에 맞는 말씀만 골라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우리가 자기가 만들어 낸 음성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라고 지적한다.
“눈 먼 사람이 눈 먼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마태복음 15:14)라는 말씀처럼 나는 제대로 된 길잡이가 필요한 성경에, 말씀에 눈 먼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 ‘내 안의 야곱 DNA'는 야곱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이자 주석이다. 이 책은 수천 년 전 평범하고 작은 사람이 ’믿음‘을 붙들고 살아내는 이야기를 인문학적 신학적 해석들을 통해서 지금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볼 수 있게 해 준다.
야곱은 약했으나 ‘믿음’이 있었고 그와 더불어 ‘의지’가 있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약하고 어리석고 욕심 많은 나 자신도 조금씩 변모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또 치열한 삶 속에서 녹여낸 깊이 있는 글들이 야곱의 삶을 통해 나의 이중성을 직면하게 하고 반성하게 한다.
야곱의 생을 붙들고, 성경 말씀을 붙들고, 치열한 우리 삶을 묵상해야만 쓸 수 있는 진국 같은 글을 만나서 반갑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해석자이자 길잡이를 만나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