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양희송 지음 / 포이에마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지 삼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이라니. 아직 나의 이력은 이런 이야기를 논하기에는 짧다. 하지만 신앙을 갖고, 다니고 싶은 교회를 찾는 동안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교회의 민낯을 보며 많은 고민을 했다. 결국 나에게 맞는 교회를 찾지 못했다면 나의 신앙은 잠시 부유했다가 희미해졌으리라. 아니면 지인들이 권하는 대로 성당을 찾았을 수도 있겠다. 밖에서 보기에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교회는, 미안하지만 아니다.

 

  나와 달리 남편의 경우 몇 년 정도를 가나안 성도로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녔던 남편은 대학에 입학한 후 본인이 선택한 활동을 하고 마음에 맞는 단체에 십일조를 내는 식으로 지냈다. 그래도 무신론자 부인이 성당에 가자고 했을 때 한마디 했다. 성당보다는 교회가 역사적으로 더 진보적인 공간이라고. 종교개혁으로 탄생한 것이 기독교 이긴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런가? 이방인의 시각으로 보자면 잘 모르겠다. 교회를 잘 다니고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뭔가 비틀려있다.

 

  나는 그 비틀림을 교회 안에서도 알고 있는데도 묵과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아예 알지 못하는 건지 궁금했다. 소수는 알면서 답답해하고 있고 또 다른 소수는 그걸 자신의 사리사욕에 이용하고 있고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따라가면서 골방의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있었을까. 이런 질문이 외부에서 시작된다면 비난을 위한 비난이 되고 말았을 텐데 성실히 믿고 따랐던 내부에서 시작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가나안 성도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의 교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한다. 가나안 성도 현상을 통해 지금 교회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그 원인을 짚으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진행한다. 글 시작부터 흥미진진하다. 진지하고 무겁고 논쟁적인 주제인데도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상을 통해 풀어간다. 쓸데없는 논쟁을 줄이도록 충분히 고민하고 쓴 흔적이 엿보인다. 예민하고 불편한 주제일 수 있지만 더 이상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면 결국은 많은 부분들이 논쟁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론은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예배 보는 가나안 성도는 답이 아니다 는 식으로 난다. 책을 읽어가면서 결론을 어떻게 내릴까, 답도 없는데 어설픈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봉합하지 않을까 싶었다. 의외로 저자는 과거의 단독자 들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어느 때나 힘든 때가 있었고 그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예수 정신을 실현했다. 그 어떤 결말보다도 강하게 와 닿는다.

 

  진정성 있는 고민과 지루하지 않은 전개 그리고 어설픈 대안이 아닌 문제를 보여주고 다 같이 논의해보자는 결론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책에서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들이 나가고 싶은 교회에게 필요한 덕목을 올바른 목회자가 있는 교회’, ‘공동체성이 강조되는 교회’, ‘부정부패 없는 건강한 교회이 세 가지로 꼽는다. 열심히 교회를 찾아 헤맨(?) 끝에 다행히 나는 이런 조건이 맞는 공동체를 찾았다.

 

  만약 나에게 맞는 교회를 찾지 못했다면 나의 신앙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반짝 했다가 다시 사라 졌을 수도 있다. 나의 신앙 자체가 아직까지도 현재 진행형이다.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매일 매일 새로워져야만 할 만큼 의지가 약하고 생활인으로 살기에 바쁘다. 내가 생각하는 예수, 내가 생각하는 성경이 진짜인지 내가 만들어낸 건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배우고 또 깨달아야 된다. 약하고 어린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풍성해지기 위해 나에게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믿음 밖에 있을 때는 쯧쯧혀를 차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안으로 들어와 버린 이상 혀를 찬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제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책임이 있는 당사자다. 논의를 시작하는 것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일 수도 있다. 길 위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에게 물으면서 방향을 수정하고 서로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신앙의 여정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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