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화를 멈출 수 없을까? -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강한 분노 처방전
가타다 다마미 지음, 노경아 옮김 / 생각정거장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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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화를 멈출 수 없을까?

<가타다 다마미 지음>

자연재해, 사고, 범죄로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을 때 슬픔과 동시에 분노가 북받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암 선고를 받은 환자는 처음에는 현실을 부인하다가 이내 분노를 드러낸다고 한다. ‘왜 나야?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에 괴로워하면서 말이다.

이처럼 큰 상실의 슬픔을 당한 사람이 분노와 원망, 때로는 증오까지 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예로부터 천재지변은 신의 분노로 여겨졌다. 그래서 큰 재해를 당한 후에는 신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기도와 제사, 혹은 산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종종 치러졌다. 이것은 아마도 인간의 분노를 신이라는 절대자에게 투영함으로써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이처럼 감정을 의식하고 자각하는 과정은 슬픔에서 일어나 회복의 첫걸음을 내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 내면에 이런 어두운 감정이 있음을 깨닫고 밀로 표현할 때 우리는 비로서 상실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긴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분노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심지어 자신에게 분노라는 감정이 있다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많다. 물론 그것은 분노를 일체 허용하지 않는 환경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령 모든 것을 잃고도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분노를 표현할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억압된 분노는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분노의 근저에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 무력감이 숨어 있으므로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은 이 무력감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지배하려는 행동을 취하기 쉽다. 한편, 분노가 자신을 향해 표출되면 다양한 몸의 이상 혹은 과식, 구토와 손목 자해 등의 자기 파괴적 행동이 나타난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울증이나 자살 기도가 뒤따르기도 한다. 최근 분노 범죄가 급증하는 이유도 앞날이 불투명한 시대를 사는 현대인 안에 분노가 쌓일 대로 쌓였다가 폭발하는 것이다. 게다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엉뚱한 대상에게 분노를 폭발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무척 당황시킨다.

우리가 이처럼 분노를 잘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우리가 분노를 나쁜 감정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분노는 좋지 않아, 화를 내면 스스로도 곤란해지니 그런 마음은 버리렴’ 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교훈을 전하며 살아 왔다.

그런 환경에서 성장해 일명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일수록 분노를 숨기는 특징이 있다. 때로는 분노를 최대한 외면하여 마치 자신에게는 그런 감정이 없는 듯 행동하려고도 한다. 분노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는 희로애락의 감정 중 하나일 뿐이다. 또 분노란 ‘내면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 는 신호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매우 중요한 감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노를 자각하는 일의 중요성을 모른 채 참으라는 말만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분노 공포증에 빠지기 쉽다. 그러니 억압된 분노는 반드시 다른 형태로 나타나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자신을 망가뜨린다. 때문에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분노를 쌓아두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괴로워졌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만 달성해도 인생이 상당히 달라진다. 하지만 우리는 더 나아가 그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고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화내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에서는 분노를 잘 드러내지 못해서 생겨나는 다양한 문제를 소개하고 어떤 식으로 분노를 표현해야 할지 고민해 보려 한다. 우선 1장에서는 분노를 억압하면 어떻게 되는 지를 임상 경험에 기초하여 설명한다. 다음2장에서는 이 분노가 외부가 아닌 자신에게 돌려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해설한다. 3장에서는 수동적 공격을 소개하고 이어지는 4장에서는 우리가 분노를 직접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한다. 또 5장에서는 분노가 분노를 부르는 연쇄 작용 특히 수동적 공격의 악순환에 빠지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살펴봄과 마지막 6장에서는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 본다.

분노의 폭발을 피하려면 또 다른 형태로 드러난 억압된 분노가 인간관계를 망가뜨리거나 스스로 상처 입히는 사태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부터 그 효과적인 처방전을 함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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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 계획에서 출간까지 6주 만에 완성하는
홍유진 지음 / 생각정거장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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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연속되는 일상, 평범한 삶속에서 어떤 활로가 필요한 이때 여행이야 말로 누구나 가슴 벅차오르며 생각만 해도 온갖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감정!

지금은 여행 전성시대!

누구나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한 번쯤 여행작가를 꿈꾸기도 하지만 막상 돌아와서는 사진도, 여행 노트도 전부 방치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감정과 기억은 희미해진다. 그러나 의외로 나만의 이야기를 오롯이 남기기란 어렵지 않다.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6주과정’의 강사인 저자가 나 홀로 여행책 만들기에 처음 도전하는 이들을 위해 여행 기획부터 글쓰기, 사진 찍기, 직접 디자인하고 인쇄하기 등 여행책 만드는 모든 과정이 자세하게 본 책에 설명 되었으며 여행을 좀 더 특별하게 즐기고 더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정말 나만의 여행책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여행이 특별해지는 주제 찾기, 뭔가 있어 보이는 여행 글쓰기,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사진 찍기, 책 기획과 디자인 직접 해보기, 합리적인 인쇄와 제작 방법 알아보기, 톡톡 튀는 책 홍보 아이디어 짜보기 등 의 잘 준비된 내용이 풍성해 한번쯤 구독 권장할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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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맹자)

동양 전통사상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유학에서는 공자에 버금가는 사상가로 맹자를 꼽는다. 그래서 공자를 聖人으로 대우하고 맹자를 그다음인 亞聖에 자리매김 한다. 그만큼 맹자는 중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사상가다. 그가 주장한 性善說을 포함하여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게 회자되는 浩然之氣,大丈夫,王道,정전법,君子三樂 등 수많은 삶의 양식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또한 우리 역사에서 역성혁명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이성계의 조선 건국도 맹자의 사유에서 동기를 부여받았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가 맹자를 주목하는 것은 정치, 경제, 교육, 사회. 문화 등 인간 삶의 현실적 차원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그의 遊說 때문이다. 맹자가 실천했던 유세는 정치 지도자가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세는 시대를 선도하는 지성인의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 각국의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부국강병을 꿈꿨다. 문제는 양육강식 시대에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것이 힘의 논리에 지배당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맹자는 정치 지도자들을 찾아다녔다. 때로는 지도자들이 맹자를 초빙했다. 그때마다 맹자는 호소했다. 제발 무력이 아니라 도덕에 기초한 정치를 사람들에게 베풀어달라고,

맹자의 발언은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교훈적인 것들도 많지만 대개는 지도자를 설득해 보려는 유세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오늘날 선거 때만 되면 후보자들이 온갖 감언이설로 유세를 펼치는 현상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인간 세상을 향한 맹자의 호소와 열망은 처절할 정도로 간절했다. 하지만 대부분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당시 현실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인지 지도자들에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맹자는 후대를 기약했다. 자신의 유세를 비롯한 교훈을 저술로 남기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 결과가 불후의 명작 <孟子>다.

춘추전국시대의 대부분 사상가들이 그러하듯 우리에게 인지된 명성에 비해 맹자의 삶과 사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사마천이 전하는 서너단락의 글이 맹자의 역사적 흔적을 일러 주는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미친 맹자의 영향력은 매우 크며 우리에게 전해지는 맹자의 사유 역시 매우 광범위하다. 공자를 비롯한 고대 사유를 계승할 부분도 있지만 창조적인 사유도 많다. 맹자 고유의 독창적 사유나 실천을 보면 첫째는 인간의 성품이 착하다는 性善說을 확실하게 선언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공자의 仁의 뜻을 이어 義를 주장했고 이를 도덕실천의 규범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셋째는 ‘기를 기르라’는 養氣의 학설을 내놓았고 넷째는 인의를 근본으로 ‘왕의 길 王道’를 말하여 나라를 포함한 조직 공동체를 다스리는 주요 방법을 밝혔다는 점이다.

이런 독창적인 사고의 철학적 위대함은 ‘인간의 성품 혹은 본성이 착하다’는 양심의 선천성과 그것의 보존- 확충을 전제로 하여 인간의 모든 삶을 고려하는 데에서 발휘된다. 맹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제자에게서 배웠다. 자사는 ‘성실함 誠’을 중심으로 인간성을 규명했다. 맹자는 이를 발전시켜 ‘착함 善’을 선언했다. 착함에 기초한 인간의 길은 義, 그 자체였다. 의는 의리로 풀어 쓸 수 있다. 인간은 의리를 쌓고 쌓아 생명력을 얻어 호연지기를 마음에 충만하게 한다. 그것의 전형적 인간형이 대장부다. 최고 지도자나 경영자인 왕의 길은 이런 과정에 비추어 볼 수 있다. 맹자가 논한 지도자의 길은 공동체 조직에 속한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구성원을 보호하고 기르는 훌륭한 정치의 길이다.

서 반드시 부모를 모시기에 넉넉하게 해 주고 처자식을 양육하는 데 충분하게 지원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일차적으로 보장될 때 인간은 살맛을 느낀다. 사람이 억압받고 죽어 가는데 흔히 말하는 스트레스가 끊임없이 쌓여 가는데 누가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어 하고 누가 그런 조직 공동체에 근무하고 싶어 하겠는가?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지도자의 길일 따름이다.

본 책 제1장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 제2장에서는 사람의 행동이 의리에 의한 것인지 이익에 의한 것인지, 제3장에서는 정치의 기준이 왕도인지 패도인지, 제4장에서는 사람다움의 길이 효도와 우애에 있음을 제5장에서는 모범적 인물들의 공부와 삶의 지혜를 다루었다.

맹자 당시에는 이런 사유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주장이 역사를 통해 사상적 보편성을 얻었더라도 실제 현실 정치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자, 소크라데스, 예수, 무함마드, 부처 등의 위대한 사상이 대개 이런 과정을 거치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실이다. 맹자는 마음수양을 바탕으로 올바른 정치와 길을 모색했다. 이는 제4차 産業革命 의 빅 데이터 시대에도 우리 삶의 지침으로 요청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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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즐거움 - 7:5:1 정리 법칙으로 일상이 행복해지는 기술
야마시타 히데코 지음, 박선형 옮김 / 생각정거장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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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책자의 저자 야마시타 히데코 산하영자는 요가 행법 철학인 단행,사행,이행을 깨달으며 물건 정리법을 통해서 누구나 실천 가능한 자기 탐구 방법에 심취해 새로운 정리 기술로 단샤리(단사리)를 고안 <단:넘쳐나는 물건을 끊는다. 사:불필요한 물건을 버린다. 이:끊고 버리는 것을 반복하면서 물건의 집착에서 벗어난다>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정리 수납 청소라는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여 다양한 분야로 활약하는 가운데 이 책에서는 저자 자신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집 안 구석구석을 공간별(식:먹는공간,의:입는공간,면:자는공간,주:지내는공간,세:씻는공간,학:배우는공간,통:다니는공간)로 소개하면서 수년간의 경험에서 얻은 특급 노하우를 낱낱이 알려줍니다. 또 물건을 보는 기준을 ‘아깝다, 필요할까,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물건은 나에게 어울리는 것일까’라는 물건과 나와의 관계를 기준으로 물건 선택의 방법을 알려주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책을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넘기면서 절절하게 공감되는 경험담과 이를 바탕으로 바로 적용 가능한 실용적인 노하우 그리고 저자의 솔직한 조언들이 우리의 마음속에도 와 닿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애기하자면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단샤리’라는 개념을 단순하게 생각했으며 말끔하게 청소하거나 정리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소만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지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책을 읽으면서 그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이런저런 물건을 끌어들이는 ‘더하기’의 연속인 우리들의 삶을 ‘빼기’의 삶으로 바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물건을 줄인 깔끔한 공간에서 생활하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고 말하는 저자는 스스로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만 채우고 있습니다. 또한 버리는 즐거움을 실천하면서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요지는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정리하다보면 자연스레 소유욕과 접착에서 벗어나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유에서 이 책에서 소개한 미니멀 라이프, 즉 단샤리 라이프는 아무것도 없이 휑한 방이 떠오르는 무소유의 삶이 아닌 좋아하는 것만 남긴 공간에서 누리는 평화로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단샤리의 개념을 바탕으로 미니멀 라이프가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삶의 유형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물건에 압도당하지 않는 여백의 공간을 마련하고 건강한 식재료로 간소한 식탁을 차리며 불필요한 물건을 최소화한 일상은 덜어낸 만큼 더욱 풍요롭게 완성됩니다. 얼마나 버릴지에 집착하기 보다 무엇을 남길지를 고민하는 것이 단샤리의 시작이 아닐까요. 옷만봐도 정리를 하다보면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을 여러 벌 발견하고 깜작 놀라기도 하지만 앞으로 성향에도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조심스레 가져 봅니다. 언젠가 쓰려고 수납장 속 깊숙이 모셔둔 소품, 마음에 안 들지만 버릴수도 없는 선물, 책장에 켜켜이 먼지로 덮인 책 등 지금 우리의 주변에서 제자리를 못 찾고 뒹구는 수많은 물건들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그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복잡한 인간관계도 머릿속 고민도 심플하게 더 심플하게 줄여나가야겠습니다.

공간을 정리하다보니 나 자신 또한 되돌아보게 됩니다. 마음이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마음의 변화를 초래한 것이겠지요.

요컨대 이 책을 통해 나 자신이 물건으로 말미암아 시간과 공간을 얼마나 낭비했으며 유지하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저자의 경험담이 길잡이가 되어 ‘나도 줄여볼까’하는 작은 마음의 움직임이 생겨날 수 있기를 물건을 버리고 얻어지는 마음의 풍요로움과 즐거움 더불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종 201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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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국가 ㅣ 클래식 브라운 시리즈 3
김혜경 지음, 플라톤 원저 / 생각정거장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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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플라톤은 자기 작품에 자신을 등장시키지 않고 거의 매번 소크라테스를 등장시켜 대화를 이어가는 프롤로그를 정교하게 설치하기도 하며 여러 극적 장치들을 공들여 설정하기도 했고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논의를 스스로가 구축한 겹겹의 틀 안에 자리 잡게 했다. 고도의 극적 구조를 지닌 다른 작품들에 비한다면 <국가>는 플라톤의 대표작이자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꼼꼼한 무대 설치나 특별한 서막도 없이 불쑥 본극의 막을 올려 버린 것처럼 시작한다. 작품속 인물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고 이에 응답할 것을 요구하면서 그 물음이 국가의 면면을 관통하는 가장 근원적이고 중요한 물음이다. 국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호흡 깊은 성찰이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그리고 그 근거는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그런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야말로 우리가 온 생애를 걸고서라도 모색하고 대답해야 할 깊은 물음이라는 점을 <국가>는 보여준다. 역사상 플라톤 철학에 대한 반감과 반론은 그에 대한 존중과 후속 연구의 깊이 못지않게 강력하고 때로는 끈질기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플라톤 연구자들이 논란을 벌이곤 하는 문제들과 씨름할 이유는 없다. 플라톤의 <국가>가 정치철학 분야의 최고 고전이라고 주장하든 플라톤을 ‘이데아’라는 키워드로 표상되는 관념론자라고 부르든 또는 전체주의자나 엘리트주의자 등등의 푯말을 앞세우며 플라톤의 그런 면모가 <국가>에서 가장 전형적이고도 종합적으로 드러난다고 확언하든 간에 우리가 주의 깊게 살피고 음미해야 할 점이 있다. 즉 플라톤이라는 철학자와 그의 <국가>에 쏟아지는 모든 선언과 갖가지 평가들을 거론하기 전에 주목해야 할 것은 소크라테스의 내러티브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시작된 진지한 탐구 여정에 대한 시사라는 점이다. 소크라테스가 황혼기 인생의 실상을 물으며 시작하는 대화는 성격의 문제, 재산 소유의 이로움, 삶의 방식 등으로 옮겨 간다. 누구의 삶이 어떠한가, 즉 살 만한 것인가 그렇지 못한가라는 문제는 나이나 재산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방식의 삶을 살고 있는지가 핵심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화 속 인물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물음과 정의의 탐구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국가>가 정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임은 틀림없고 또 이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왜 정의를 요청하는가? 정의는 추상적인 이론의 공간에서 다루어질 문제가 아니다. 플라톤 역시 정의의 문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토의하는 과정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문제임을 분명히 한다. 정의는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는 물음이고 또한 성공적인 실천을 고민하는 활력과 난관을 동시에 얻는 물음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해 정의를 탐구하기 때문에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을 살펴보지 않고는 정의를 제대로 연구할 수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현실적인 물음이면서 동시에 뿌리를 이루는 물음이다. <국가>가 제기하는 물음들의 이런 근원적 연결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체제를 들춰 보라! 권력을 가진자들, 지배 세력은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법과 제도 그 모든 것들을 만들었고 또 이용했을 뿐이다.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늘리기 위해 수립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도 법, 제도 등에다 ‘정의’라는 그럴듯한 포장을 씌워 놓고 힘없는 보통 사람들을 때로는 현혹하고 때로는 압박해 왔다. 사람들이 정의를 칭찬하고 부정의를 비난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는 정의가 덕이고 부정의가 악덕이어서가 아니다. 부정의를 행하지 않기 위해서도 아니다. 철저하게 부정의한 자들, 말하자면 대놓고 큰 부정의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오히려 어마어마한 이익을 얻고 정의롭다는 평판까지 누려 왔다. 부정의를 행할 능력이 없는 약한 자들이나 행여 남들에게 부정의를 당할까 두려워하면서 부정의를 비난하고 정의를 칭찬하는 것일 뿐이다. 트라쉬마코스의 웅변은 냉혹한 경쟁 세계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인 우리에게도 얼마나 현실적이며 큰 호소력을 지녔는가! 당신들이 덕이라고 훌륭함이라고 또 유익한 것이라고 애써 강조하려는 정의란 기껏해야 남 좋은 일이고 약자들의 무덤이라는 도전장을 소크라테스에게 던지는 것이다. 부정의가 오히려 능력이라는 만만찮은 주장과 맞닥뜨렸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애초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정의가 덕이며 능력임을 입증해야한다.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에게 대답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소크라테스의 내러티브 그 의미를 정리해 보자. 하룻밤의 열띤 논의를 다시 들려주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내가 그 대화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대화하고 논쟁했다면 탐구의 갈피마다 내가 그들에게 보내는 응답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라. 이 방법이야말로 대화로 철학을 했던 플라톤에게 다가가는 아주 좋은 길이다. 소크라테스의 네러티브를 듣는 사람,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대화해야 하는 사람은 우리들 자신이다. 플라톤이 어제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복기(복기)하고 있는 소크라테스만을 <국가>에 등장시킨 것은 그의 작품을 접할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 네러티브의 단순한 청자일 수 없음을 역설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은 하루 동안의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온 생애를 걸고 탐구해 가야 할 것, 일생의 물음임을 주장하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 인간은 정말 어떤 존재인지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어떻게 꾸미고 운영해 갈지 그 원칙에 대한 탐구에서 결코 물러서지 말 것을 우리에게 촉구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왜 대화인가? 이제 이것은 우리의 정말 큰 여행이기 때문아닌가? (201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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