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찾은 자유 - 천년 지혜의 보고 장자에서 배우는 삶의 자세
뤄룽즈 지음, 정유희 옮김 / 생각정거장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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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의 원작자는 장주(莊周)다.장주(장자)의 신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史記》<老莊申韓列傳노장신한열전>에 따르면 그는 전국시대 宋나라 사람이다. 양나라 惠王(B.C370∼319재위), 제나라 宣王(B.C319∼301재위)과 같은 시대에 살았다. 또한 옻나무 밭을 관리하는 벼슬을 맡기도 했다. 초나라 威王(B.C339∼329재위)이 그를 재상으로 초빙했지만 장자는 “나는 차라리 자유롭게 살겠다!”라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 위 내용은 장자에 관해 현존하는 가장 초기의 전기다. 이 전기는 장자가 죽고 약 200여 년이 지난 뒤 역사학자 司馬遷(사마천)이 기록한 것이다. 아쉽게도 기록된 내용은 대단히 간략하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장자의 부모와 자녀가 누구인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사기》<宋世家송세가>와《戰國策전국책》에서도 장자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수 없다. 장자 본인이 했던 말을 통해 우리는 그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부인은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는 헐렁한 무명옷을 입었는데 곳곳에 기운 자국이 가득했다고 한다. 허리에는 풀로 엮은 띠를 두르고 발에는 삼끈으로 엮은 신을 신었는데 뒤축이 떨어져 나갔어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장자에게 유일한 말동무가 있었다. 그가 바로 언변에 능한 惠施(혜시,전국시대 송나라의 철학자이며 헤자라고도 함)다. 혜시는 公孫龍(공손룡,전국시대 사상가)과 마찬가지로 ‘닭은 다리가 셋이다’, ‘알 속에 털이 있다’와 같은 명제에 관해 논쟁하기를 좋아했다. 혜시 또한 장자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혜시가 죽고 난 뒤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와 함께 이야기 할 사람이 없구나!”이외에 장자와 가까이 지낸 사람으로는 그의 제자 몇 명이 전부다. 그들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장자는 무척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일생을 사는 동안 자신을 알아주는 지음지기 한 명 없었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대자연의 化身(화신)들이다. 구만 리 창공을 나는 붕새, 바람과 이슬을 먹고 사는 고야산의 신녀, 하늘의 피리를 연주하는 남곽자기, 그리고 그와 꿈속에서 조우했던 나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장자는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고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잔혹하게 정복’했던 전국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다.우리는 《장자》 곳곳에 반영된 당시의 참상을 읽을수 있다. 《장자 칙양》편을 보면 제나라로 간 백구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나라 교외에 막 도착했을 때 백구가 처음 발견한 것은 죄수의 시체였다. 백구는 죄수 곁으로 가서 그를 일으켜 앉히고 자신의 옷을 그에게 덮어주며 통곡하면서 말했다.“아아! 천하의 가장 큰 재앙을 그대가 먼저 당하였구려! 가엾어라! 국법에 이르기를 ‘강도가 되지 말고 살인을 저지르지 말라’고 하였다. 허나 누가 강도인가? 누가 살인을 저지르는가?강도와 살인은 누구의 탓인가?”

장자가 태어난 곳은 송나라이다. 송나라는 지금의 허난성 뤄양 부근에 자리한 소국이며 주변국으로부터 자주 공격을 받았다. 송나라는 패망한 殷(은)나라의 후손이 모여 산 곳이었기 때문에 피정복자의 비참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장자 시대에 이르러 한때 큰 용맹을 떨쳤던 정복자인 주나라마저도 그 힘을 잃어 간신히 뤄양 성을 지키고 있었다. 현실의 고통은 끝이 없는 나락과 같다. 지금은 석양 아래 놓인 옛 정복자의 위용, 황토 언덕 아래의 현자, 이를 두고 위대하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보잘 것 없다고 할 것인가? 장자는 여기서 눈길을 돌려 인간 세상을 주목했다. 그가 바라본 것은 바로 다함이 없는 時空(시공)이었다.

장자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는 결국 ‘不自由’임을 간파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부자유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물질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감정에 의존하며 지식에 의존하고 예술에 의존하며 신에게 의존해서 살아간다. 이렇게 의존하다 보면 인간은 자신이 판‘부자유’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인간이 자유를 얻으려면 반드시 의존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장자는 인간은 반드시 자신의 존재가 무한한 시공 속에서 일어나는 대자연의 유기적인 운행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은 반드시 자연의 관점에서 “一切”를 관찰해야 한다. 자연은 마치 混沌 상태와 같으므로 인간 또한 혼돈 상태와 같아져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타인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이라고 그려내서는 안 되며 자연을 인간으로 그려서는 안 된다. 가치 없는 것을 가지 있는 것으로 그려서는 안되고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그려서는 안 된다. 죽음을 생명으로 그려서는 안 되고 무한을 유한으로 그려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장자 철학이 제자백가의 사상과 다른 점이다.

장자의 철학은 자유의 철학이다. 무한한 시간, 공간 속에서 생명을 마음껏 향유하는 철학이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멀쩡하게 살아있는 나무를 무참하게 베어버린다. 하지만 장자는 이 살아있는 나무가 자신의 생명을 마음껏 향유하게 한다. 《장자》의 구조와 차원을 볼 때, 장자는 너무나 위대한 철학자다. 인간 세상은 그에게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장자가 묘사한 붕을 비웃는 참새 小麻雀自鳴得意(소마작자명득의)참새가 구만 리 하늘 꼭대기를 날아가는 붕을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 ‘붕새 저 녀석은 구만 리나 되는 높은 곳까지 힘들게 날아갈 게 뭐람? 나는 땅에 있다 날고 싶으면 여기저기 마음껏 날아다닐 수 있다고! 어떤 때는 저 높은 느릅나무까지 날아오르기도 하고, 나무 위까지 오르지 못하면 그때는 다시 땅으로 내려오면 그만이지. 이렇게 풀밭과 숲속을 마음대로 누비고 다니는 것도 대단한 재주라고!“∼참새의 재주,지식,경지는 모두 붕과는 다르다. 참새는 자신의 경지로는 결코 붕을 이해할 수 없기에 그를 비웃는 것이다. 사람은 각기 지닌 것이 다르다. 그러니 우리도 참새를 비웃을 필요가 없고, 붕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붕이 저 멀리 구만 리의 상공까지 날아오르자 참새가 이 광경을 보고 붕을 비웃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이 장자를 오해하고 비방하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세상 사람들은 장자의 철학을 소극적이며 염세적이고 퇴페적이고 허무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실제로 삶의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은 누구인가? 또한 세상은 장자의 사상을 개인주의, 신비주의, 무정부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장자의 지혜는 이러한 주의들을 까마득히 높이 뛰어넘었다. 이러한 주의들은 장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어떤 지식도 지극한 도에 견줄 수 없듯이 말이다. 세상에서의 삶은 장자의 관점에서 ‘생명이 없는 질서’이다. 그런데 장자가 추구하는 것은 ‘생명이 있는 무질서’이다.

사람들은 나무의 생김새와 색깔을 좋아한다. 장자가 좋아하는 것은 나무의 생명이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자유롭게’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장자 철학의 핵심은 인간을 극한으로 내몰아서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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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휘둘리지 않기 - 조금씩 단단해져 내일이 아름다울 당신
가야마 리카 지음, 임영신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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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네 가지 요인, 즉 ‘일의 양적 부담’, ‘일에 대한 재량권’, ‘상사의 지원’, ‘동료의 지원’에 따라 결정된다. 여기서 문제는 ‘일에 대한 재량권’이다. 자기 스스로 일에 대한 방향과 방법을 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스트레스의 강도가 많이 좌우된다.

예를 들어 ‘이번 달 초엔 자료 수집과 공부를 하고 이달 말엔 외국 출장을 다녀와야겠다’등처럼 스스로 일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에 비해 일을 어떻게 추진할지에 대한 선택이 제한된 업무를 보는 사람은 일의 양이 약간 늘어나더라도 스트레스 강도가 급격히 커진다. 반면 일이 아무리 많아도 일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거나 고민할 수 있는 재량권이 주어지면 스트레스 강도는 상대적으로 약해진다. 바쁜 건 괜찮은데 뭔가에 휘둘려 피곤함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일에 대한 재량권’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저자는 ‘휘둘리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비단 직장에서뿐만이 아니다. 집에서 남편과 아이, 부모한테 휘둘리는 여성들을 상담해 보면 스트레스가 매우 많았다.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취미 생활을 즐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친정 엄마가 몸이 좀 불편하다며 집에 좀 와 달라는 연락이 오면 계획이 한 순간에 틀어져 버린다. 하려고 마음먹은 취미가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왠지 인생이 엉망이 된 것처럼 느껴져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이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우리는 무엇에 휘둘려 인생이 뜻대로 안 된다며 불평하 는 걸까?

♤우리는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걸까?

♤나 자신에 의해 내가 휘둘릴수도 있는 걸까?

♤휘둘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어떤 차이가 있 는 걸까?

♤휘둘리지 않고 내 인생의 핸들을 꽉 잡고 앞으로 나아가 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휘둘린다고 느꼈을 때 그 상황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무엇알까?

‘휘둘리는 것’이 우리 인생 최대의 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나는 무언가에 심하게 휘들려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물론 어떤 일 때문에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그러나 혼란 속에서 길을 잃는 게 아니라 지금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나의 일상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등에 대해 확실하게 자각하려고 노력한 덕분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인생은 조금만 방심하면 주위로부터 휘둘려 거친 바다 위를 떠다니는 나뭇잎처럼 어디로 가는지 가라앉는 건 아닌지 모르는 상태로 여기저기 표류하기 쉽다. 여기에 불안과 공포가 마음에 차오르면 자신의 인생이 내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러지 않으려면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누군가를 휘두르지도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휘둘리는 사람의 유형은

항상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고집불통형의 사람, 평가에 지나치게 예민한 팔랑귀형의 사람, 기가 죽어 자기 주장을 못하는 소심형의 사람, 항상 결정이 어려운 결정장애형의 사람이 있으며 또 건강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보면 시대별로 바뀌는 건강 개념의 지나친 사고, 광고가 만드는 ‘건강함’의 이미지, 돈벌이가 되어 버린 건강, 건강은 챙길수록 망가질수도 있다, 노력이 화를 부를수도 있다와 외모에 휘둘리는 사람들은 다이어트와 노화, 비만공포, 몸무게와 나의 가치는 반비례한다?, 왕따를 피하기 위한 다이어트, 몸무게처럼 관리해야 하는 것, 누구를 위한 성형인가?, 노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차피 늙을 거면 자연스럽게 또 학력에 휘둘리는 사람들은 내 미래는 초등학교가 결정한다?, 학력과 풍요는 다른 차원의 세계다. 학력과 출세의 관계, 더욱 학벌에 집착하는 아이러니, 가방끈은 당신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는다, 와 또 돈에 휘둘리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돈이란?, 돈이 마음을 채우지는 못한다, 노후를 걱정하는 청년들, 돈 많이 나쁠건 없지만···, 또 역할에 휘둘리는 사람들과 남의 혀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당장 오늘부터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괜찮다, 신경쓰지 말자, 과거에 좋았던 기억을 항상 떠올리자, 인간관계에 너무 기대지 말자, 주저 없이 “아니요”라고 말하자, 기억하자, 생각보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이걸로 충분하다고 나를 설득하면서 우리, 휘둘리지 말자. 스스로 선택하자. 모든 일은 내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되찾자’라는 패기로 자신의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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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림 Do Dream, 불가능을 즐겨라
최은수.MBN Y 포럼 사무국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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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뛰는 단어 성공을 만들어낸 사람들에게는 어떤 DNA가 있을까? 성공한 사람은 타고난 것일까, 죽어라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까.

MBN기자들이 지난 3년 동안 크고 작은 성공을 거둔 수많은 사람의 성공 사례를 분석해봤다. 수많은 글러벌 리더를 비롯해 주요 기업CEO 및 창업자, 정치 지도자, 연에인, 석학들과의 인터뷰 내용과 책을 통해 그들의 성공 비밀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성공의 법칙은 아주 사소하지만 위대한 것이었다. 누구나 생각하면 다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대다수가 삶에 쫓겨 아니면 생활에 지쳐 쉽게 잊고 사는 것이었다. 그 비밀은 무엇일까. 바로 ‘두드림 DoDream’이라는 세 글자다. 누구나 꿈꾸고Dream 도전하면Do 꿈을 이뤄낼 수 있다. 그런데 그 꿈을 이루려면 두드리고 또 두드려야 했다. 쉼 없는 두드림이 꿈에 다가가게 해줬고 ‘自己革命(자기혁명)’의 혜안을 제공해줬다.

두드림은 매우 중의적인 표현이다. 한 단어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성공 비밀 두드림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두드림의 비밀은 ‘두드려라’는 것이다. 북을 치려면 북을 두드려야 한다. 닫힌 문을 열려면 문을 두드려야 한다. 문자를 보내거나 검색하려면 키보드를 두드려야 한다. ‘결과’를 얻어내려면 무엇이든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또 다른 두드림의 의미도 있다. 대학에 들어가려면 대학의 문을 드드려야 한다. 취업하려면 취업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면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꿈을 이루려면 자신의 꿈을두드려야 한다는 것이다.꿈을 이뤄주는 성공의 비밀은 바로 두드림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두드림에서 시작된다. 성경에도 ‘두드려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지 않은가.

이 두드림에는 울림이 있다. 원하는 것, 구하는 것을 향해 간절하게 두드릴 때 원하는 것, 구하는 것을 얻게 된다. 세게 두드릴수록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고 더 많이 더 자주 두드릴수록 문은 쉽게 열리게 된다. 더 크게 두드릴수록 자신을 울려 가슴을 더 벅차오르게 하고 그 울림은 주위로 울려 퍼진다.

그런데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큰 꿈 Big Dream’을 두드렸다. 원대한 꿈을 품고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해 자기 자신을 수도 없이 두드렸다. 한 번 두드려 열리지 않으면 또 두드리고 두드렸다. 수백 번, 수천 번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좌절하지 않도 다시 두드렸다. 성공 비밀 두드림이 말하는 ‘두드린다’는 것은 이처럼 꿈에 다가가기 위한 ‘몸짓’, 즉 ‘실행’을 말한다. 성공의 시작은 바로 이 몸짓, 두드림에 있다. 성공은 어디에서 지작될까. 내 삶에서 간절히 원하는 것, 바로 꿈을갖는 일에서 시작된다. 꿈을 갖게 되면 할 일이 생긴다. 내 차 구입의 꿈을 세웠다면 돈을 벌고 모으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원하는 대학 입학의 꿈을 꾼다면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가수를 꿈꾼다면 노래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꿈을 꾼 다음에는 그 꿈을 이뤘을 때의 기쁨을 미리 머릿속으로 즐겨야 한다.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바꾸고 싶은가, 인생을 행복하게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인생을 바꿀 첫 번째 보석을 두드려야 한다.

인생을 바꿀 첫 번째 보석은 ‘渴望(갈망)의 두드림’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그들이 꼭 이뤄야 할 간절한 꿈이 있었다. 왜, 그 꿈을 이뤄야 하고 왜 내가 그 꿈의 주인공이 돼야 하는 지, 분명한 신념이 있었다. 남들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간절함과 갈망이 있었다. 딱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강한 집착과도 같은 집요한 갈망이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성공한 사람들은 생각이 남달랐다. 자신만의 꿈에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꿈을 이뤘을 때의 기쁨을 생각하기도 하고 실패했을 때 좌절한 자신의 모습도 상상해봤다. 그런데 남달랐던 것은 자신만의 ‘실행의 법칙’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사연을 벤치마킹하고 성공에 이르는 길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인생을 바꿀 두 번째 보석은 ‘생각의 두드림’이다. 꿈에 대한 갈구, 꿈에 대한 갈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상상의 나래를 폈다. 머릿속으로 꿈을 성취하는 좀 더 구체적인 방법들을 생각하며 성취의 기쁨을 날마다 머릿속으로 즐겼다. 베스트셀러 <시크릿>에서 제시했던 성공 비밀 ‘끌어당김의 법칙Law of Attraction을 철저히 활용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란 우리 인생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우리가 끌어당긴 결과라는 것이다. 좋은 결과를 끌어당기면 좋은 결과가, 나쁜 결과를 끌어당기면 나쁜 결과가 찾아오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끌어당김의 법칙‘에 따라 더 밝은 미래의 모습을 간절히 상상하고 확신하면 달라진 미래를 끌어당길 수 있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은 ’생각의 끌어당김‘으로 꿈을 이룰 구체적인 방법을 수없이 끌어당겼다.

아무리 큰 꿈을 갖고 있더라도 아무리 꿈을 이룰 생각이 원대하더라도 실행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남다른 ‘실행력’이 있었다. 끈기와 인내, 오기로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강한 집념이 있었다.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강한 믿음으로 자기 최면을 불어넣었다. 인생을 바꿀 세 번째 보석은 ‘實行(실행)의 두드림’이다.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뛰어난 재주와 재능이 있더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인생을 바꿀 세 번째 보석 실행의 두드림은 꿈을 실제로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꿈꾸고 생각하는 데서 머물지 않았다. 생각한 내용을 앞세워 실행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리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두드리는 뚝심을 발휘했다. 힘들고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꿈을 이룰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돼도 그 속에서 다시 일어나 꿈을 두드렸다.

성공한 사람과 보통 사람과의 가장 큰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성공한 뒤, 꿈을 이룬 뒤의 미래에 대해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꿈은 꼭 이루어진다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놀라운 ‘실행력’을 발휘했다. 이루기 힘든 목표, 달성하기 힘든 꿈,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즉 불가능 자체를 즐겼다. 인생을 바꿀 세 가지 보석인 渴望(갈망), 생각, 實行(실행)의 세 가지 두드림을 가슴속에 담고 자신이 꼭 성공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믿음, 자신감을 가졌다. 그 자신감은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신기한 마법의 힘을 발휘했다. 두드림의 소중한 결과물 ‘想像(상상),Imagination 현실’을 잉태시키는 것이다.

이제 성공의 주역들이 구체적으로 그들의 꿈을 어떻게 두드려 성공의 기쁨을 만끽했는지, 성공에 이르는 ‘秘密(비밀) 讀書(독서)’를 시작해보자. 이 책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성공 법칙을 따라 하는 두드림의 實踐者(실천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동시에 두드림의 비밀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두드림의 支持者(지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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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유엔을 위하여 - 반기문 사무총장 10년의 기록
유엔UN.반기문 지음, 김태훈.이영래.김은경 옮김, 오준 감수 / 생각정거장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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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재직한 2007∼2016년간 유엔의 주요 발자취를 기록한 것이다. 유엔에서 사무총장의 근무기간을 단위로 해서 활동과 기록을 정리한 것은 유엔 역사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다. 반총장의 임기 10년은 적어도 3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것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세계화globalization’라고 생각된다.

첫째, 반 총장의 10년은 세계화에서 중요한 개념인 多樣性의 구현을 뜻한다. 반 총장은 서구 이외의 문화권에서 나온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앞선 7명의 사무총장들은 유럽 출신이거나 유럽 문화권 국가에서 나왔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출신의 사무총장들도 예외 없이 유럽식 교육을 받은 인사들이었다. 한국고유의 문화와 유교적 전통이 강한 관료제도에서 성장한 반 총장이 유엔의 국제적 업무환경에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다는 것은 세계화 시대에 다양한 문화의 공존과 조화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선례가 된다.

둘째, 지난 10년은 세계화가 가져온 문제들이 오늘의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 되고 있음을 부각시켜준 시기였다. 당초 교통과 통신의 발달과 같은 혜택들이 강조되던 세계화는 시간이 갈수록 문제점도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 사회적 불평등의 증대는 경쟁의 국제화, 기업의 다국적화, 조세와 같은 국가의 소득 재분배 수단의 효과 감소 등 세계화의 영향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세계 금융 위기, 폭력적 극단주의와 난민 문제, 기후변화와 자연 재해 증가, 대량파괴무기의 확산 문제 등 국제사회가 지난 10년간 다루어온 지구적 도전들은 거의 모두가 세계화의 부정적 영향으로 발생하거나 악화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유엔은 인류 전체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하여 “강력한 유엔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Strong UN,Better World”는 기치 아래 국제사회를 단합시켜 지구적 도전에 대응했다. 20년 이상 끌어온 기후변화협약을 2015년 12월 파리기후변화협약으로 마무리하고 2030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의 합의를 도출한 것등이 좋은 예가 된다.

셋째, 세계화가 도전뿐 아니라 희망도 함께 가져옴을 확인할 수 있는 10년이었다. 세계화의 혜택으로 국제관계에 있어서 정부만이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시민사회나 기업, 언론계나 학계는 개발, 평화 유지, 인권 신장 등 유엔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파트너로 참여하게 되었다. 소통 수단도 다양해져서 멀티미디어, SNS 등 전 세계의 더 많은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유엔이 하는 일을 알게 되고 참여가 가능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국제사회가 유엔을 중심으로 다양한 지구적 도전들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해주며 여기에 필수적인 세계시민의식의 확산을 도와준다.

한 시대를 정리하고 기록해서 다음 시대의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인류 문명의 발달에 항상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렇게 보면 유엔이 《더 나은 유엔을 위하여》 와 같이 이정표가 되는 기록물을 이제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뒤늦은 감이 있다.

유엔은 전 세계에 걸쳐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45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현재 회원국만 193개국에 이른다. 본부는 뉴욕에 있으며 총회를 비롯해 사무국, 안전보장이사회, 경제사회이사회, 국제사법재판소 등 여러 기구를 산하에 두고 있다.

2007년에 반기문이 제8대 사무총장으로 취임하면서 한국인 최초의 유엔 수장이라는 기록을 낳았다. 2016년 임기를 끝낸 반 총장이 유엔을 이끈 10년 시기를 기록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유엔이 과거에 세운 목표와 이룬 성과, 그리고 앞으로 이뤄야 할 과제를 함께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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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을 그리다 - 내실에서 꿈을 찾은 예술가
정항교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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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은 지극한 효녀요, 7남매의 훌륭한 어머니인데다가 학문이 깊고 시문에 뛰어난 여류 문인으로서 글씨와 그림, 바느질과 자수에 이르기까지 정묘하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지녔다 할지라도 인격과 덕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것은 한낱 재주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나 사임당은 인격도 뛰어났고 덕 또한 높은 분이었다. 당시는 여자가 길쌈하고 바느질 잘하면 그만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사임당은 여성에게 씌워진 그 많은 모진 조건을 모두 이겨 내고 자신이 지니고 있던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이은상은 ‘중국 역사상 글씨와 그림으로 이름을 떨쳤던 여성들도 한두 가지에만 능했으나 종합적인 전인여성으로 시와 그림, 그리고 글씨, 자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신묘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사임당뿐이라 했다.

우리는 흔히 사임당을 현모양처(賢母良妻(현모양처))라 하는데 사실 나를 낳아 길러 주신 어머니, 나의 아버지를 낳아 길러 주신 할머니, 나의 어머니를 낳아 길러 주신 외할머니가 모두 현모양처이다. ‘양처(良妻(량처))’라는 말은 <사기(史記(사기))에 “나라가 어지러우면 어진 신하가 생각나고〔國難則思良臣(국난칙사량신)),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가 생각난다(家貧則思良妻(가빈칙사량처))”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어렵고 가난한 시기에 우리를 낳아 기른 어머니, 할머니, 외할머니 모두가 양처이다. 사임당은 양처이면서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개발하여 자아를 실현한 21세기 여성, 시와 그림 속에서도 어머니를 그린 효성스러운 여성, 남편을 입신양명(立身揚名(입신양명))케 한 어진 아내, 백대의 스승 율곡은 물론 7남매를 태교로 키운 훌륭한 어머니, 글씨, 그림, 자수 등 정묘한 예술세계를 개척한 우리 역사상 최고의 여류 예술인,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한 참된 살림꾼이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사임당의 참모습이라 할 수 있다.

사임당은 1504년 경포대 근처 호숫가 강릉 북평촌, 지금의 오죽헌(烏竹軒(오죽헌))에서 태어나 1551년 서울에서 4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때는 조선 전기라 여성은 이름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사임당도 이름이 없었고 다만 자신이 지은 ‘사임당(師任堂(사임당))’이라는 호(號(호))만 전하고 있다. 사임당은 딸만 다섯을 둔 집안에 둘째 딸로 태어났다. 나면서부터 인물이 고운 데다 품성이 뛰어나 부모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뿐만 아니라 총명하고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 여자로서 갖추어야 할 도리는 물론 바느질이나, 자수, 글씨와 그림, 학문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눈부신 천재적 소질을 발휘하였다. 이는 물론 사임당의 타고난 자질 덕분이기도 하겠으나 무엇보다 예의범절이 뛰어난 어머니 이씨(생원 李思溫(이사온)의 따님)와 학문이 높았던 아버지 진사 申命和(신명화)의 지극한 자녀 교육의 영향 때문이었다.

사임당은 19세에 서울의 李元秀(이원수)에게 시집가 10년씩이나 남편의 학문을 위해 떨어져 살기를 원했고 실천하여 후에 종5품 水運判官(수운판관)이 되었으며 무엇보다 우리 인류사 최초로 태교(胎敎(태교))를 실시한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태임은 임신을 한 열 달 동안 ‘눈으로는 예법에 어긋나는 것은 보지 않았고(非禮勿視(비례물시)), 귀로는 예법에 어긋나는 것을 듣지 않았고(非禮勿聽(비례물청)), 입으로는 예법에 어긋나는 것을 말하지 않았으며(非禮勿言(비례물언)), 행실로는 예법에 어긋나는 것을 행하지 않았다(非禮勿動(비례물동))’고 했다.

허균은 ‘율곡 선생의 모친은 신씨였는데 성품이 차분하고 강직하였으며 글도 잘 쓰고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다. 여자로서의 규범이 매우 엄하여 언제나 여자가 지켜야 할 법칙으로 몸을 단속하였으니 율곡선생의 학문은 바로 어머니 사임당의 태교에서 얻어진 것이다(栗谷(율곡) 先生母(선생모) 卽申氏少女(즉신씨소녀) 性貞靜剛方(성정정강방) 能文且解丹靑(능문차해단청) 閨範甚嚴(규범심엄) 動以律身(동이율신) 先生之學(선생지학) 得於胎敎者爲多(득어태교자위다))’라고 하였다. 율곡은 훗날 이르기를 어머니께서 실시한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는 네 가지 태교법은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선비가 몸을 닦는 데에도 필수 덕목이라고 했다.

《동계만록東溪漫錄(동계만록)》을 보면 사임당이 남편과 문답한 내용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이원수:공자가 아내를 내보낸 것은 무슨 예법에 근거한 것이 오?

사임당;공자가 노나라 소공 때에 난을 만나 제나라 이계라는 곳으로 피란을 갔었는데 그 부인이 공자의 가족을 따라 가지 않고 바로 송나라로 갔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공 자가 그 부인하고 다시 동거하지 아니했을 뿐이지 바로 내쫓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원수:증자가 부인을 내쫓은 것은 무슨 까닭이오?

사임당:증자의 부친이 찐 배를 좋아했는데 그 부인이 배를 잘 못 쪄서 부모 봉양하는 도리에 어긋났기 때문에 내쫓은 것입니다. 그러나 증자도 한 번 혼인한 예의를 중히 여 겨 다시 새장가는 들지 않았습니다.

이원수:주자의 집안 예법은 어떠했소?

사임당:주자 나이 47세에 부인 유씨가 죽고 맏아들 숙(塾(숙))은 아직 장가를 들지 않아 집안 살림을 할 사람이 없었지 만 주자는 다시 장가들지 않았습니다.

문답에서 보듯 사임당의 학문은 깊고 출중했으며 7남매 자식을 위해서라면 남편에게도 충언을 아끼지 않았다.

화가 사임당의 풀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 살아 있는 <조충도>

‘그림으로서 세상에 드러난 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모두는 남자요, 부인은 극히 드물다. 게다가 잘 그리는 사람은 많아도 신묘한 경지에까지 들어간 사람은 우리나라에서도 오직 사임당 신씨뿐이다.’ 1764년 이조판서를 지낸 홍양한(洪良漢(홍양한))이 한 말이다. 심지어 숙종은 자신의 장인 경은부원군 김주신이 소장하고 있던 사임당의 <조충도>를 직접 보고 똑같이 그리게 한 다음 병풍을 만들어 대궐에 두고 감상했다.

惟草惟虫(유초유충)(유초유충) 풀이랑 벌레랑

狀貌酷似(상모혹사)(상모혹사) 실물과 똑같구나

婦人所描(부인소묘)(부인소묘) 부인의 솜씨인데

何其妙矣(하기묘의)(하기묘의) 어찌 그리 묘하다니

于以摸之(우이모지)(우이모지) 하나 더 모사하여

作屛殿裡(작병전리)(작병전리) 대궐에다 병풍 쳤지

惜乎闕一(석호궐일)(석호궐일) 안타깝다 빠진 한 폭

疊摸可已(첩모가이)(첩모가이) 다시 하나 그릴 수밖에

只以采施(지이채시)(지이채시) 채색만을 썼는데도

此尤爲美(차우위미)(차우위미) 한층 더 아름다워

其法維何(기법유하)(기법유하) 그 무슨 법이런가

無骨是耳(무골시이)(무골시이) 무골법이 이것일세

-肅宗御製(숙종어제)숙종어제-

좌의정까지 올랐던 權尙夏(권상하)는 <조충도>를 보고 ‘줄기와 잎사귀는 마치 이슬을 머금은 것 같고 풀벌레는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으며 오이와 수박을 보고 있노라면 저도 몰래 입에 침이 흐르니 어찌 천하의 보배라 하지 않으리오’라고 했다.

사임당은 글씨에서도 새로운 서풍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그래서 조선시대 이름난 선비들이 사임당을 ‘여중군자’요.‘여류 선비’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 역사상 사대부 선비들이 여성을 이같이 평가하는 예는 사임당밖에 없다.

1869년 강릉부사로 온 尹宗儀(윤종의)는 사임당의 글씨를 보고 ‘정성 들여 그은 획이 그윽하고 고상하며 또 정결하고 고요하여 사임당 신부인은 문왕의 어머니 태임의 덕을 본받고자 했음을 우러러볼 수 있다’라고 감탄했다. 또 윤종의 부사로부터 사임당의 판본 글씨를 받아 본 尹鍾燮(윤종섭)은 ‘초서 필체가 묘경에 들어 등꽃처럼 예스럽고 자체의 변화가 구름 같아 마치 하늘에 구름이 비를 만들어 베푸는 조화와 같다’라고 극찬했다.

우리나라 초서풍의 서체는 16세기 전반 중국 명대 중기의 초서풍이 수용되어 유행하였는데 사임당의 초서풍은 정확히 어느 화풍을 따랐는지 분명하지 않다. 율곡도 <어머니 행장>에서 ‘어머니는 어렸을 때 경전에 통했고 글도 잘 지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라고만 밝혀 놓았기 때문이다. 당시 사임당의 부친 신명화 공이 己卯名賢(기묘명현)인 이들과 친분이 두터운 데다 교류가 잦았기 때문에 사임당은 기묘명현들이 추구한 왕희지 서체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고유 문자가 없던 세종 때까지 여류 문학은 그야말로 희미하기 그지 없었다. 훈민정음이 반포되기 이전까지 한자로의 기록이라면 여옥(麗玉(여옥))의 <箜篌引(공후인)공후인>,진덕여왕의 <致唐太平頌(치당태평송)치당태평송>이 전할 뿐이다. 이후 훈민정음의 보급책으로 佛典(불전)(불전)의 번역 사업에 맞춘 이른바 내간체의 施用(시용)(시용)은 비단 부녀자를 위해서만은 아니지만 여류 문학의 발전에 원동의 된 것은 틀림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釋譜詳節(석보상절)석보상절》과 《月印千江之曲(월인천강지곡)월인천강지곡》, 그리고 계속된 佛經諺解(불경언해)(불경언해)로 말미암아 훈민정음이 문자로 정착했고 소현 황후에 의해 《內訓(내훈)내훈》과《女四書(여사서)여사서》가 간행되어 비로소 여류 문학이 뿌리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삼강오륜을 앞세운 남녀유별의 빗나간 가르침은 삼종지도와 칠거지악의 폐단을 낳았고 이는 결국 여성 교육의 당위성을 짓밟아 여류 문학의 부재를 가져오고 말았다. 더욱이 여성의 순종을 미덕으로 보채는가 하면 여자는 누에치기, 길쌈, 그리고 바느질에만 전념케 한 채 문자 교육은 철저하게 외면하는 바람에 여간한 천재가 아니고는 한문의 문리는 깨칠 수 없었다. 비록 어깨 너머로 배웠다 하더라도 한자로 시를 짓는다는 것은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이렇듯 여성에게는 질곡의 시대에도 사임당과 같은 걸출한 여류 시인이 태어났다. 비록 7언 율시 한 수와 7언 절구 한 수가 전할 뿐이지만 이 두 시를 통해서 사임당이 추구했던 이상, 나아가 삶의 미학까지 살펴볼 수 있다.

율곡은 <어머니 행장>에서 “어머니께서는 어려서부터 유교 경전에 통했고, 글도 잘 지었다”라고 했다. 사임당은 학문이 높았던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용인이씨, 그리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로부터 일찍이 학문과 예술을 익히고 배웠던 것으로 보인다. 딸만 다섯이었던 집안의 둘째 딸 사임당은 총명하여 부모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세에 이원수에게 시집갈 때 아버지 신명화는 사위에게 “내가 딸이 많은데 다른 딸은 시집을 가도 서운하질 않더니 자네 처만은 내곁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네 그려”라고 했다. 둘째 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부모의 각별한 보살핌 덕에 사임당은 학문과 예술적 소질을 계발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임당의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며 지은 7언 절구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다 踰大關嶺望親庭(유대관령망친정)>이다.

慈親鶴髮在臨瀛(자친학발재임영) (자친학발재임영)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身向長安獨去情(신향장안독거정) (신향장안독거정)외로이 서울로 가는 이 마음

回首北村時一望(회수북촌시일망) (회수북촌시일망)이따금 머리 들어 북촌을 바 라보니

白雲飛下暮山靑(백운비하모산청) (백운비하모산청)흰 구름 떠 있는 곳 저녁산만 푸르네

-《율곡전서》권18-

당시 사임당은 38세, 친정어머니는 62세, 서울로 함께 간 율곡은 6세였다. 제1구와 2구에서는 백발이 되신 어머니를 홀로 두고 어쩔수 없이 서울 시댁으로 돌아가야 하는 외롭고 서글픈 마음을 담았다. 제3구와 4구에서는 대관령 구비를 돌 때마다 어머니 계신 곳을 바라보았으나 어머니 계신 곳은 아득하고 다만 보이는 저물어 가는 북평촌엔 흰 구름만 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제4구의 ‘백운’은 ‘白雲之思(백운지사)백운지사’ 혹은 ‘白雲孤飛(백운고비)백운고비’라고도 하는데 중국 당나라 때 狄仁傑(적인걸)적인걸 이라는 효자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적인걸이 산서성 태원부 법조참군으로 임명되어 갈 때 大行山(대행산)대행산 꼭대기에 이르자 일행들에게 말을 세우게 하고 흰 구름 덮인 곳을 바라보며 “저 구름 아래 우리 어머니가 계신다‘라 하고 오랫동안 섰다가 그 구름이 다 옮겨간 뒤에 그곳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백운은 어머니를 그리는 대명사로 이 시의 핵심이다. 사임당은 이미 《唐書狄仁傑傳(당서적인걸전)당서적인걸전》을 읽고 여기에 실려있는 ‘백운고비’를 意取(의취)(의취)했다. 사임당을 여류 시인이라 하는 까닭도 이렇게 감쪽같이 둘러맞추는 ‘天衣無縫(천의무봉)(천의무봉)’의 재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남이 쓴 詞華(사화)(사화)라고 망설이다가는 한 구도 지을 수 없는 것이 한시이니 도리가 없다. 따라서 중국의 시나 우리의 古詩(고시)(고시)를 되베끼어 쓰되 새로운 감각을 자아내게 꾸미는 재치가 名人(명인)과 凡人(범인)의 차이이다. 제4구 ‘백운비하모산청’은 경치를 빌려 자신의 정을 담은 ‘景中有情(경중유정)(경중유정)’으로 含蓄不盡(함축불진)(함축부진)의 맛이 넘친다.

끝으로 화폐에 들어가는 초상화는 그 나라 국민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나 어느 특정 분야에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 채택되기 마련이다. 화폐는 도안의 정수가 담겨 있는 결정체로 국가의 상징이자 얼굴이다.

오죽헌은 여성의 사표요, 겨레의 어머니로 불리는 사임당과 겨레의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는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기에 일찍부터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그러다 이곳에서 태어난 율곡과 사임당 두 모자가 5,000원 권과 5만 원 권의 화폐 도안 인물이 되자 오죽헌은 세계 최초 모자 화폐 인물 탄생지로 부각되면서 더욱 관심을 받게 되었다. 심지어 중국 관광객들 사이에 ‘오죽헌을 다녀가지 않으면 부자가 될 수 없다’라는 말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화폐박물관에 따르면 지구상 통용되고 있는 1,600여 종의 화폐 가운데 모자가 화폐 인물이 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고 한다. 화폐에서 가장 핵심은 인물 초상화이지만 인물과 관련이 있는 보조 소재 또한 화폐의 꽃이다. 2007년 새로 발행된 5,000원 권의 보조 소재로는 사임당의 <조충도> 가운데 ‘수박’과 ‘맨드라미’가 채택되었다. 사임당의 철학이 담겨 있는 <조충도> 가운데 수박은 다산을 상징하는 식물로 가문의 번창을 뜻하고, 맨드라미는 鷄冠花(계관화)(계관화)라 벼슬, 즉 입신양명을 의미한다. 따라서 5,000원 권 보조 소재에는 ‘아들 딸 많이 낳아 훌륭하게 키우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5만 원 권의 보조 소재로는 사임당의 ,묵포도> 그림과 <자수초충도>의 ‘가지 자수’가 들어 있다. 포도 역시 주렁주렁 달린 탐스러운 열매로 인해 예로부터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의미로 문인화 범주에 포함되면서 귀한 대접을 받아 왔다.

500년 전의 하늘이 오늘의 하늘이 아니고 그때의 바람이 지금의 바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고 또 이야기합니다. 물리적인 역사의 시간, 그 시간의 간극을 모르는 바 아니나 오죽헌이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공유할 어떤 것이 분명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존재 이유를 넉넉히 지녔지만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사소한 것들과 공감하고 그것을 어여쁘게 볼 나이가 되고 보니 작은 것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래서인지 이곳 오죽헌에서는 당신의 손길 하나, 말간 웃음 한 자락, 그리고 아이를 어르는 듯한 따뜻한 미소 등 여러 가지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으며 본 책은 우리 후손들이 대대로 자랑삼아 간직하여야 될 기본 요소라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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