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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이집트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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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 안드레 애치먼.
그의 어린시절 기억을 담아낸 <아웃 오브 이집트>
할아버지 시대 부터 아버지 그리고 주인공인 소년까지 대가족을 아우르는 이야기이다.
책의 표지는 심플하게 이집트 사막의 색과 야자수 배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동안의 안드레 애치먼 작품들과 시리즈로 잘어우러진다. 개인적으로 '잔'의 책들은 정말 내스타일:) 서평단이 아니었더라도 꼭 소장했을 것 같다.
여름 햇빛 아래 반짝거리는 모래알을 머금은 따뜻한 해변과 오래된 야자수가 떠오르는 1960년대 이집트를 방문하고 싶다면 이 책을 집어들길.
선명한 작가의 기억을 이 책을 통해 쫓다보면 어느새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눈 앞에 이집트가 펼쳐지는 듯한 배경과 그 시대를 직접 겪는 듯한 생생한 묘사, 그리고 등장인물들 간의 촘촘한 감정과 갈등들. 이 모든것을 작가 특유의 문장으로 담아내고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책이나 영화로 감명깊게 접했던 이들에게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의 바탕이 되는 이 회고록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사실 읽는내내 시대적 상황과 전쟁 상황을 완벽히 아는 것은 아니라 100%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또 인물들도 다양하게 나오지만 번역의 문제인지 읽는 내내 시점이 계속 변동돼서,, (누나라 했다가 이모라 했다가 할머니라 한다던가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형 동생이 됐다가 하는 등) 처음엔 조금 헷갈린다. (내 독서 실력이 아직 부족한걸지도,,)
하지만 초반에 나름의 가계도를 그려두고 보면 조금이나마 쉽게 볼 수 있다는 점 ~!
-그러다 방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약하게 웅웅거리는 고음이었다. 열쇠 구멍 밖으로, 문밖으로, 인방도리의 갈라진 틈 사이로 수증기처럼 빠져나온 그 소리는 향과 불길한 예감철럼 우리 세 사람이 서 있는 어두운 침묵을 채웠다. 나 역시 어릴 때 배운 적 있는 익숙하지만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운율로 남몰래 수치심에 젖듯이 읊는 유대인의 기도 소리였다.
-공책에 머무는 4월의 햇살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법의 주문을 걸어 벽과 책, 책상, 내 손, 베껴 쓴 코란 구절에서 여름 한낮의 강렬한 햇볕과 따뜻한 바닷물, 친근한 바닷가 별장이 멀지 않았음이 느껴졌다.
내 방에 걸린 오래된 마티스의 복제화가 아침 햇살에 빛나며 손짓했다. 마티스의 니스 집 발코니 난간 사이에는 파란 공간, 언제나 그렇듯 바다가 있었다.
-“내가 그 시절에 밤마다 슈베르트를 연주한 건, 그 끔찍한 전쟁이 나에게는 망쳐 버린 인생을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에 불과했기 때문이야. 난 지금 슈나벨이 연주한 것처럼 연주할 거야. 네 할아버지가, 네 아버지가 들은 내 연주니까. 나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오늘 밤 내 아들이 들었을 연주야. 여기 앉으렴.”
-이집트를 떠나는 생각, 다시는 보지 못할 사람들에 대한 생각, 지금의 나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이 도시에 대한 생각. 시간이 지나면 꿈나라보다도 낯설게 변해 버리겠지. 그것을 죽음과 다를 바 없으리라. 죽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방으로 들어와 그 사람을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방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한때 그의 방이었다는 사실을 모르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들은 고인의 흔적을 조금씩, 결국 전부 다 없앨 것이다. 그의 냄새까지도. 언젠가는 그가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린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