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 번째 빙하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어렸을 적에 했던 혈액형 검사가 잘 못 되어 낳아준 부모님과 길러준 부모님이 다르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흔히 얘기하는 예민한 사춘기 때에 믿게 된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그 사건이 나를 방황하게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친부모라고 믿고 자라게 해 준 길러준 지금의 부모님께 너무 감사하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의없는 여유로움이었지만 몇 년 뒤에 혈액형 검사가 엉터리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나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원래 그렇게 무덤덤한 성격은 아닌데.. 아마도 엉터리 혈액형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불신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오늘 잊고 지냈던 그 사건을 떠올리게한 친구를 만났다. 이름은 와타루.
와타루는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외모(혼혈아)와 다른 환경(미혼모)속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크로마뇽인이라고 믿으며 성장하는 엉뚱한 소년이다. 정말 엉뚱한 소년이다.
"결론부터 꺼내자면 와타루는 결혼한 적이 없는 엄마(미혼모)와 함께 사는 혼혈아이다.
기억이라는 것이 생기기 전부터 와타루에게 가족이라고는 유전자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엄마
한 사람 뿐이다.
우리 나라 못지 않게 보수적이고 완고한 일본의 시골에서는 그런 와타루 모자를 보통의 가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와타루는 이유없는 무시와 멸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성장하지만 와타루의 사건은 의외로 자신의 아버지가
러시아에서 발견 된 아이스맨-크로마뇽인 : 그러나 나중엔 그냥 동사한 남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즉, 자신이 크로마뇽인의 유일한 후예라는 것을 맏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엄마가 알려준 자유라는 것을 달리는 것에서 찾고,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변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
아버지의 존재를 단 한 번도 알려주지 않은 엄마의 모습에서 와타루는 자신이
엄마가 러시아에서 유전자를 연구하는 연구원의 조수로 일 하던 시절에 연구목적으로
크로마뇽인의 냉동정자를 받아 태어났다고 믿으며 자란다.
그러나 와타루는 그런 것에서 슬픔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크로마뇽인의 마지막 후예로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한참 후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알려준 출생의 비밀을 듣기 전부터 와타루는 자신이 크로마뇽인의 후예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바람으로 찾아간 친 아버지와의 쓸쓸한 만남으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 준 아이스맨-크로마뇽인이라고 오해했던-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한다.
그리고 아이스맨에게 영원한 자유를 선물한다."
난 개인적으로 일본소설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와는 너무 다른 정서, 표현방법, 가치관들이 읽는 내내 나를 너무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선입견이 있는 상태에서 오로지 남자의 심리를 알 수 있다는 말에 홀려 읽게 된 '네 번째 빙하기'.
엄마이지만 여자인 내가 내 아이이지만 남자인 아들의 심리가 궁금해서 모험삼아 읽었던 책이
이렇게 웃음과 눈물과 설레임을 줄지는 정말 몰랐다.
'오기와라 히로시'라는 작가가 다른 일본작가와는 완전 다른 성향의 작가였기 때문인지
'양억관' 의 번역솜씨가 너무 근사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야한다는 사실도 잊은채 새벽을 몰두하게 했던 이 책에 난 별 다섯개를 모두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