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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에 나 홀로 ㅣ 고래뱃속 창작동화 (작은 고래의 바다) 22
김진원 지음, 조혜원 그림 / 고래뱃속 / 2025년 11월
평점 :
<나홀로 캄캄한 밤에>를 읽고 가장 오래 남았던 장면은 의외로 큰 사건이 아니라, 은재가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이 책은 겉으로는 곰과 아이의 만남을 그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 아이가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해 가는 과정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처음 집 문 앞에서 곰과 마주하는 장면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곰은 상처를 입고 힘 없이 서 있습니다. 그 곁에 선 은재의 마음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두 존재의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은재가 느끼는 감정의 무게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책에서는 곰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독특한 설정이 등장합니다. 이 부분은 마치 은재가 마음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지수는 은재와 대비되는 인물입니다. 지수의 모습은 은재에게 잃어버린 세계를 떠올리게 하고,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계속 건드리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지수를 통해 은재는 그동안 밀어낸 감정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 보게 됩니다.
이야기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강조하지 않음에도 자연스럽게 독자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은재가 마음속에서 작은 변화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과장 없이 그려져 있어, 현실에 가까운 감정 흐름으로 다가옵니다. 상처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 주면서, 그 안에서 조금씩 힘을 찾아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은재에게 마음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림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조혜원 작가의 연필 선은 인물의 감정에 맞게 조용하고 차분하게 움직입니다. 글에서 표현하지 않은 감정들이 그림 속에 숨어 있어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물게 됩니다. 어둠과 빛의 대비가 이야기의 분위기를 잘 잡아주고 있어, 한 장씩 천천히 넘기며 바라보게 됩니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은재가 희미하게나마 자신을 다시 받아들이는 모습은 큰 위로처럼 다가옵니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은재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읽고 난 뒤, 잠시 조용히 책을 덮고 마음을 정리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