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J 달달 옛글 조림 1
유준재 지음 / 웅진주니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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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책을 가득 채운 설원의 질감이었다. 흑백의 차가운 화면 속에서 아주 

‘빛은 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다’는 사실이 두 존재 사이에서 천천히 자라난다.

책의 강렬한 장면은 후반부에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산타 마을을 덮친 눈사태 앞에서, 사라졌다고 믿었던 J의 빛이 다시 깨어난다. 그것은 마치 초능력처럼 터져 나오는 뜨거운 에너지이며, 그 빛은 루키와 산타에게 향하는 길을 눈 속에서 직접 만들어낸다. 이미 빛을 잃었다고 단정했던 존재가 가장 큰 어둠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내는 순간,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강하게 울린다.

결국 이 그림책은 ‘빛을 찾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 빛을 건네는 이야기’다.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던 내면의 빛은 사실 사라진 적이 없고,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내어주는 순간 다시 타오른다는 메시지는 어른 독자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루돌프J>는 계절성 그림책을 넘어, 마음의 온도를 바꿔 놓는 겨울의 위로 같은 작품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차가운 설원 속에 작은 빨간빛이 오래도록 남아 반짝이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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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훔치는 추억 상점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22
이병승 지음, 해랑 옮김 / 서유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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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훔치는 추억 상점』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읽고 난 뒤가 더 오래 남는 책이었다. 겉보기에는 기묘한 가게와 수상한 게임기를 둘러싼 모험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담긴 질문들은 의외로 깊고 단단하다.


이야기는 동네에 나타난 ‘추억 상점’에서 시작된다. 행복한 사람에게만 무료로 준다는 게임기 ‘메모리 퀘스트’를 중심으로, 아이들의 기억이 미세하게 어긋나기 시작한다. 수진과 기훈, 봉구는 이상해진 친구들을 보며 그 원인을 찾아 나서고, 결국 ‘가면 아저씨’라는 인물과 마주하게 된다. 표면적인 갈등은 기억을 조종하는 기술이지만, 진짜 문제는 기억이 사라질 때 함께 흔들리는 감정과 관계라는 점이 흥미롭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첨단 기술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결론적으로 독자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기억을 저장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장치, 증강현실 게임, AI와 로봇 등 기술적 요소가 많이 등장하지만 이야기가 향하는 곳은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잃어버리는 사람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아이들이 가면 아저씨에게 보이는 태도였다. 흔히 악당 앞에서 승리나 처벌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 주인공들은 다른 선택을 한다. 그들은 상대의 슬픔을 보고, 그 슬픔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하려 노력하며, 마지막에는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건네며 치유를 선택한다. 이런 선택은 어린이 문학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결말이 아니기에 더욱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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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보다 무서운
상자 지음, 이수연 그림 / 꼬마이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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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이야기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는 책이었습니다. 늑대가 돼지 마을을 공격하는 장면으로 시작되지만, 조금씩 읽다 보면 이야기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늑대의 위험 앞에서 돼지들은 방법을 찾기 위해 모이지만 생각은 하나로 모이지 않습니다. 그때 어린 돼지가 우왕나무를 늑대가 피하는 것 같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 어린 돼지의 말이 사실임이 드러나면서 마을 분위기는 크게 흔들립니다.

문제는 바로 그다음부터 나타납니다.
우왕나무가 돼지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나무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점점 커지고, 서로를 경계하는 분위기까지 생겨납니다. 나무를 가진 돼지와 그렇지 못한 돼지 사이의 차이는 빠르게 벌어지고, 결국 위험 앞에서 모두가 같지 않다는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 버립니다. 이 부분에서 현실과 겹쳐 보이는 면이 많아 마음 한쪽이 묵직해졌습니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은 부드러운 숨을 틔웁니다.
어린 돼지가 건네는 작은 우왕나무 조각은 갈등을 멈추게 하는 열쇠처럼 느껴졌습니다. 거창한 무언가보다 작은 마음 하나가 더 큰 안전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해집니다. 책장이 닫히는 순간, ‘우리 사회에서 진짜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조용히 남습니다.

짧지만 생각할 지점이 많은 작품입니다.
아이에게 읽어주기에도 좋고, 어른이 스스로 읽어도 충분히 가치가 느껴지는 그림책입니다. 오래 바라보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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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에 나 홀로 고래뱃속 창작동화 (작은 고래의 바다) 22
김진원 지음, 조혜원 그림 / 고래뱃속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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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캄캄한 밤에>를 읽고 가장 오래 남았던 장면은 의외로 큰 사건이 아니라, 은재가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이 책은 겉으로는 곰과 아이의 만남을 그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 아이가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해 가는 과정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처음 집 문 앞에서 곰과 마주하는 장면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처럼 느껴졌습니다. 곰은 상처를 입고 힘 없이 서 있습니다. 그 곁에 선 은재의 마음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두 존재의 모습이 겹쳐 보이면서, 은재가 느끼는 감정의 무게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책에서는 곰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독특한 설정이 등장합니다. 이 부분은 마치 은재가 마음의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지수는 은재와 대비되는 인물입니다. 지수의 모습은 은재에게 잃어버린 세계를 떠올리게 하고,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계속 건드리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지수를 통해 은재는 그동안 밀어낸 감정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 보게 됩니다.

이야기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강조하지 않음에도 자연스럽게 독자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은재가 마음속에서 작은 변화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과장 없이 그려져 있어, 현실에 가까운 감정 흐름으로 다가옵니다. 상처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 주면서, 그 안에서 조금씩 힘을 찾아가는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은재에게 마음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림의 역할도 매우 중요합니다. 조혜원 작가의 연필 선은 인물의 감정에 맞게 조용하고 차분하게 움직입니다. 글에서 표현하지 않은 감정들이 그림 속에 숨어 있어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물게 됩니다. 어둠과 빛의 대비가 이야기의 분위기를 잘 잡아주고 있어, 한 장씩 천천히 넘기며 바라보게 됩니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은재가 희미하게나마 자신을 다시 받아들이는 모습은 큰 위로처럼 다가옵니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보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은재를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읽고 난 뒤, 잠시 조용히 책을 덮고 마음을 정리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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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새 케이를 찾아서
풀피리(박영란) 지음, 안병현 그림 / 초록개구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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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새 케이를 찾아서』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 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그리고 해양 보호 생물인 저어새 K94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감동적인 생태 환경 동화입니다. 환경 활동가로 오랜 시간 활동해 온 풀피리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어 작품 전반에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저어새의 시점과 사람의 시점이 교차하며 전개된다는 점입니다. 저어새의 눈으로 본 세상은 낯설고도 순수하며, 인간의 시선에서는 그 생명을 지켜주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이러한 구성은 독자가 자연과 생명에 더 깊이 공감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작품의 모티브가 된 K94는 어린 시절 날개를 다쳐 바위 아래로 떨어졌지만, 끝내 스스로 기어올라 둥지로 돌아간 강인한 생명력의 주인공입니다. 작가는 이 저어새의 이야기를 통해 “작은 생명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림을 맡은 안병현 작가는 장면마다 다른 화풍으로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했습니다. 저어새의 시점은 서정적인 느낌으로, 사람의 시점은 웹툰처럼 현실감 있게 표현되어 보는 즐거움이 큽니다.


『저어새 케이를 찾아서』는 아이들에게는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어른들에게는 자연과의 공존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작품입니다. 한 마리 새의 용기와 희망이 세상에 전하는 울림이 참 따뜻하게 남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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