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 인류 최후의 에덴동산, 아마존 오디세이
정승희 지음.사진 / 사군자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구상에 존재를 하는 가장 긴 강의 하나라고 할수가 있는 남미의 아마존강 유역에서 살아가는 인디오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일을 자신의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작가가 자신이 그동안의 긴시간동안 촬영을 하면서 만난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1. 아마존강의 원주민들

남미의 많은 부분을 점유를 하고 주변의 광대한 숲으로 인해서 지구의 허파라고도 불리고 있는 밀림지대 인데 그곳에서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원주민들을 만나서 배우고 알아가는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과거에는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던 그들이 백인들의 침략으로 인하여서 많은수의 사람들이 죽어갔고 지금도 그들이 남긴 각종 질병과 환경의 파괴로 인하여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도 그리고 있다.

 

2. 기이한 문화

세계 각지에서 벌레를 음식으로 먹는 문화가 있는데 당연하게도 아마존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들만의 손쉬운 단백질 공급원으로 벌레를 먹는다.

이들이 문명의 혜택을 받지를 못하였지 때문에 벌레를 먹는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전통적인 문화이고 그들의 식문화라는 사실에 대하여서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의 문화를 자랑을 하는 프랑스인과 그리스인들도 달팽이라는 벌레를 아주 고급음식으로 생각을 하고 먹는것을 보면 아마존의 사람들이 벌레를 먹는것도 그들만의 문화라고 인정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한다.

 

아마존강 유역은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 지고 고온다습한 환경으로 인하여서 곤충이 많은데 곤충의 종류가 해충도 포함을 하는 것이라서 그곳에 사는 모기들은 그종류와 독성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모기와는 틀리다고 한다.

그곳에서 적응을 하고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별로 피해가 없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고있는 벌레에 대하여서 적응을 하기가 어려운데 그러한 현상은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생활을 하면서 많은 부분이 익숙한 저자도 버티기가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한다.

 

옷을 안 걸치고 살아가는 그들의 문화는 옷감을 만들수 있는 작물의 재배가 어려웠다는 환경과 옷을 입고 살아야만 하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을 한 일면과 그들의 환경이 옷을 입으면 더욱 움직이기가 어려운 것도 큰 역활을 하였다고 생각을 한다.

 

3. 원주민의 고통

오랜 세월을 아무런 제약을 받지를 않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나서 자신의 땅이라고 하면서 다른곳으로 이전을 요구를 하고 자신들의 땅에 도로를 만들면서 숲을 파괴를 하고 금광을 개발을 하면서 환경을 오염을 시키는등 주변의 변화로 인하여서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문명사회로 들어오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는데 그들이 도시에서 살아가기에는 자신들과 다른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틈에서 돈을 버는 행위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서 빈민으로 전락을 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팔아서 살아가는 부족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왜 원주민들이 그들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영위를 할수가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을 하지를 않고 그들을 자신들이 사회로 받아들이려는 노력만을 하는 것일까?

 

원주민들이 살아가는 지역은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원자재의 폭등과 농경지의 확장으로 인하여서 숲을 개발을 하면서 그들의 땅을 개발을 하라는 압력이 강하여 지고 있고 사람들을 자신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인간이하의 생활을 한다고 믿어지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문명의 혜택을 베푸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로 인하여서 안그래도 살아가는것이 어려운 그들의 생활이 망가지고 있다고 볼수가 있다.

 

4. 파라다이스

도시에서 좁은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자연의 혜택을 직접 경험을 못하고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의 눈에는 그들이 아무런 근심이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이상향으로 보일것 같은데 그들만의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을 진정으로 돌울수 있는 일들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국지 사실과 허구를 말하다
뤄지푸 지음, 양성희.이지은 옮김 / 아리샘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삼국지는 역사서가 아닌 소설인데 이러한 소설을 진정한 삼국의 역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펴편인것 같다. 중국의 역사에 대하여서 그것도 아주작은 일부분을 알고 있다고 하여서 많은 도움이 되는 일도 없지만 그러한 이야기들이 허구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 편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 면도 있는것 같다.

 

위촉오의 삼국의 시대는 중국의 역사에서 본다면 아주 작은 일부분이고 각지의 지방 정권들이 서로와 싸운 역사를 다루고 있을뿐인데 그시대의 인물들 보다도 더욱 많은 인재가 역사에 등장을 하였지만 그들의 활약이 소설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를 못하여서 알려진 부분이 적고 삼국지는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유명해 졌는데 그러한 소설에 사용이 된 부분들에서 허구적인 부분을 설명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나오는 내용들에 의문을 가진 부분들을 그 당시의 역사에 비추어서 무기와 전법등을 설명을 하여서 삼국지를 읽는데 도움을 준다.

 

1. 삼국지 현장 산책

현대인의 눈으로 보아도 위력이 강한 무기들이 그 당시의 전쟁에 많이 사용이 되었는데 오랜 기간의 전쟁으로 군인으로 활동을 할수가 있는 인구가 줄어 들어서 군사력의 부족한 면을 강력한 무기로 대체를 하려는 일면을 볼수가 있는 부분들인것 같다.

 

삼국의 영웅들이 활약을 할수가 있는 무대를 제공을 하였던 한나라의 문무백관들의 관직명과 그들의 녹봉 그리고 그러한 관리를 선발을 하는 방법을 설명을 하고 있다.

 

조조와 조비가 계승을 하여서 발전을 시킨 관리를 뽑는 방법인 구품중정제는 초기에는 재야에있는 많은 인재들을 중앙으로 불러오는 방법으로 사용이 되었지만 나라가 안정이 되면서 관리를 뽑는 주체들이 명문가의 사람들로 채워지면서 그들만의 리그가 만들어지고 귀족사회가 번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귀족의 계급은 그 명맥을 송나라 이전까지 유지를 하였지만 많은 전란을 거치면서 귀족들이 몰락을 하여서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송나라에서는 경제의 발달로 많은 부를 축척을한 지방의 유력자들인 사대부들이 권력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2. 사실과 허구

신으로 숭배를 받고있는 관우에 대하여서는 많은 의문들이 있는데 관우를 능가를 하는 업적을 쌓은 장수들이 역사적으로 많았지만 연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관우로 대표가 되는 의리와 신의에 대하여서 황제들이 선호를 하면서 신으로 숭배를 하는 모습으로 발전이 되었다.

 

장비의 본질 : 장비는 삼국지연의를 통하여서 가장 저평가된 인물중의 하나로 뽑을수가 있을것 같은데 연의에서는 술을 좋아하고 산적과 같은 용모로 표현이 되는 호한으로 등장을 하지만 실제로 장비가 남긴 글들을 보면 그가 많은 공부를 하였고 서예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로 보이도 그의 두딸이 후주의 황후가 된 점에서 보면 큰키의 멋진 남자라는 사실이 유추가 된다.

 

아무리 자신의 권력을 강화를 하기위한 일환으로 정략혼이 성행을 한다지만 일국의 황제가 추녀를 황후로 뽑는 경우는 없는데 그러한 전례를 보아도 장비의 인물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손견은 어떠한 인물인가 ?

연의에서는 동탁의 장수인 화웅에게 패하고 옥새를 발견을 하자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본거지로 달아나는 모습을 보였는데 역사에 실제하는 모습은 화웅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한 사람은 관우가 아닌 손견이고 동탁과 맞써서 싸운 실제의 장수는 조조와 손견두명뿐이라고 한다.

전쟁터에 남아서 동탁이 파괴를 한 낙양의 황릉들을 정리를 한 사람이 손견인데 그 당시의 누구라도 옥새를 구하였다면 그 사실을 숨기고 자신의 본거지로 가지고 가는 일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수가 있다.

당시의 조정은 동탁의 허수아비역활 만을 하고 있었고 구국의 결심으로 모였다는 군웅들도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러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서 움직인다는 사실이 나쁜것은 아니다.

 

3. 삼십육계

춘추전국시대의 손무가 지었다는 손자병법에서 말을 하는 삼십육가지의 병법을 하나씩 삼국지에 등장을 하는 이야기와 합쳐서 이야기를 하는 장인데 연의를 보면사도 가지게 되는 왜 이상황에서 저런 방법을 사용을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장이라고 할수가 있다.

 

연의를 보는데 많은 도움을 줄수가 있는 책인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왜 홍차에 열광하는가? - 전문가가 들려주는 정통 홍차 이야기
박정동 지음 / 티움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전 세계의 인류가 마시고 있는 음료중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를 하고 있는 것은 현대에 들어와서 발명이 되었던 청량음료도 아니고 물과 같은 느낌을 준다고 생각이 되어지는 커피나 맥주도 아닌 일명 홍차라는 사실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왜 홍차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에 대하여서 자신이 사랑을 하는 홍차의 여러 가지 모습과 그 과정을 보여줍니다.

 

홍차의 전래와 역사만을 강조를 하면서 원산지를 찾아가는 여행담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홍차의 종류에 대하여서 이야기를 하고 그러한 홍차가 가장 잘어울리는 현장에 대하여서 자신이 경험을 하였던 각종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멀게 느끼고 있었던 홍차가 실제로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는 책입니다.

 

중국에서 차를 마신 역사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있었고 중국에서 만들어진 차를 수입을 하여서 즐기던 영국에서 홍차의 역사는 성대하게 열렸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오랜 기간을 통하여서 전달이 되어지는 차의 이동 경로를 통하여서 만들어진 홍차의 역사가 중국 본토에서는 녹차를 즐기고 그 이외의 변방이라고 불려지는 지역에서는 홍차를 위주로 하여서 즐기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차의 수입대금으로 엄청난 은을 소비를 하였던 영국이 자국의 자본을 지키기 위하여서 많은 식민지에서 차를 대체를 할 수가 있는 작물을 구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발견이 된 인도의 자연에서 발견이 되어진 차나무가 인도를 홍차의 산지로 만드는 과정을 거치면서 인도인들도 녹차가 아닌 자국에서 생산이 되어지는 홍차를 선호를 하는 모습을 만들게 되었고 세계를 지배를 하였던 영국의 영향으로 많은 지역에서 즐기는 홍차의 영역이 만들어 졌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차는 육류를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모자란 영양소를 인위적인 방법으로 공급을 하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차를 만시면서 느끼는 상큼한 입맛의 영향이 더욱 발전을 하면서 수많은 홍차의 제품화가 이루어 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하나의 방식으로 즐기는 것이 아닌 수많은 방법을 사용을 하여서 다양한 모습으로 즐길수가 있는 홍차의 세계와 그러한 차를 어떠한 상황에서 마시는 것이 가장 좋은지에 대하여서 알려주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도로 보는 한국사 - 시공간을 함께 보는 한국 역사 탐험
김용만 김준수 지음 / 수막새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하여서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느낄수가 있는 부분은 오로지 글을 통하여서 암기를 위주로 하여서 익히는 공부는 머리에 남아있는 부분이 글로만 남아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바로보는 관점이 결여가 되는 부분이 존재를 하고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오직 머릿속에 존재를 하는 이야기로 남아있는 역사에 대하여서 시각적인 방법인 지도를 통하여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었고 글로 남아있는 역사의 이야기가 어떠한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서 어떤 방법으로 존재를 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리나라의 시초인 고조선의 강역에 대하여서 의견들이 존재를 하지만 지금까지 들어나고 있는 유물인 청동검을 통하여서 조선의 무기로 사용이 되었고 상대적으로 권력층의 부장유물로 활용이 되어진 청동검이 출토가 되면서 동일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이 되어지는 고조선의 영역을 지도를 통하여서 보여주고 있고 왜 그러한 역사가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이 되어지는지에 대하여서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방식으로 만들어서 자신들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하여서 사용이 된다고 보는 부장물의 동일성을 통하여서 과거의 이제는 찾아볼수가 없는 역사를 찾아가는 발자취로 활용을 하는 과정을 보입니다.

 

고조선의 한국가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많은 경우에는 부속적인 영역으로 남아있는 부여에 대하여서 찾아보고 한반도를 벗어나서 존재를 하였던 조상의 국가들이 남기고 간 영역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과 그러한 부분들이 우리의 역사에 남긴 흔적을 찾아 봅니다.

 

삼국시대의 혼란과 발전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단일 국가의 위세와 주변국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형성이 되어지고 있던 백성들의 문화에 대하여서 어떠한 지역을 통하여서 발전을 거듭을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서 보여주고 그러한 존재의 역사적인 의미와 왜 그곳에서 거점을 형성을 하고 발전을 하였는지에 대하여서 생각을 해볼수가 있는 기회를 제공을 합니다.

 

많은 부분에서 극화를 통하여서 살펴본 지역적인 특성과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많은 흔적을 남긴 부분들이 무엇을 통하여서 존재를 하였는지 지도의 영역을 통하여서 교과서에서 배운 공부를 더욱 자세히 익힐수가 있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의 메멘토모리 - 조선이 버린 자들의 죽음을 기억하라
정구선 지음 / 애플북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가장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볼수가 있는 정사인 왕조실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100%완전 하다고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은 진실이라고 생각을 하고 인용을 하는 책이 실록인데 실록에 나온 사람들의 죽음에 대하여서 쓰고 있고 다른 야사들도 인용을 하고 있는데 조선의 위로 있었던 국가들의 역사가 현재 남아있는 경우가 적어서 그런 부분들은 제외가 되어서 아쉽다.

 

1. 자살 혹은 자결 둘말의 뜻은 서로 틀리지만 결과는 죽음이라는 것으로 같은데 책에 나오는 이들의 죽음에는 왕조를 지키기 위한 죽음과 그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에 의해서 죽은 경우등 다양한 죽음의 모습이 보이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죽음은 모두 자살 혹은 자결이라는 이분법으로 등장을 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지배계급인 무사들의 죽음인 할복이 그들의 미를 나타낸다고 이야기를 하는 부류들이 있는데 그러한 영향을 받아서 자결이 역사에 남은 측면도 있는것 같다.

중국의 경우에는 자결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데 그들의 조국은 면적에서 엄청난 국토를 자랑하고 인구도 많아서 어딘가에 숨으면 평생 찾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죽는것 보다는 회피를 하는 문화가 발달이 되었고 우리나라와 일본은 좁은 국토와 섬이라는 특징으로 인해서 다른곳으로 피해도 사람들의 눈을 벗어나서 살아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조건들이 자결에 대한 선호를 높이고 이상한 방향으로 발전을 한 성리학의 영향도 많은것 같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인들은 자결과 자살을 한 위인들이 별로 없다. 순결을 지키려고 자결을 한 경우도 드물고 수절을 하는 경우도 없는것이 그들의 역사다.

 

2. 왕실 구성원들의 자결

조선의 왕실에서는 왕권의 강화에 사용이 되는 경우와 역모로 인한 경우를 포함 하여서 종친들이 자결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왕이라는 자리는 권력도 많지만 주변에서 흔드는 경우도 많아서 주변의 가족들도 믿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중국의 경우처럼 골육상쟁의 경우는 드물다고 이야기를 할수가 있는데 중국은 절대권력을 자랑을 하던 황제의 권위 때문에 자신의 자리를 위협을 하는 인물들은 황실의 가족이라고 하여도 처참하게 죽었는데 조선은 왕권이 초기의 경우를 제외 하고는 신권에 열세를 하여서 종친들의 목숨이 자결이라는 그래도 품위있는 죽음이 많았던것 같다.

 

우리나라에 골육상쟁이 적은 이유로는 황제가 거느렸던 여인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었고 그러한 이유로 인해서 자식들의 숫자도 적고 왕이라는 직위가 중국의 황제위 보다 권력이 적고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다. 조선의 왕들중에서 절대권력에 도전을 하였던 왕으로는 태종과 연산군 두명 정도이고 나머지 왕들은 신권의 위협을 받았던 왕들인것으로 생각이 된다.

신권이 강해서 좋았던 경우는 역성 혁명이 힘들다는 점인데 권력이 신하가 더욱 강하므로 일부러 왕이라는 제약이 많은 자리에 오르려는 힘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이씨 왕조가 500년이라는 긴시간을 보낸것 같다.

 

3. 신하들의 자결

왕조 국가에서는 왕조를 지탱을 하는 역활을 하는 지배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조선도 초기에는 왕을 세우는데 큰 역활을 하였던 훈구파들이 자신들이 만들은 왕에게 자신의 처지를 잊고 반항을 하다가 죽임을 당한 경우와 훈구대신들의 힘을 조절을 하기 위해서 억울한 죽임을 당한 경우도 있는데 죽을것을 아는 경우에는 고문을 피하고 자신의 뜻을 알리기 위한 처사로 자결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후기로 넘어 오면서 민간에서 공부를 한 사림파가 득세를 하였는데 이들도 처음에는 상대방인 훈구대신들이 있기에 그들과 싸웠지만 나중에 훈구대신들을 몰아내고 자신들 끼리 당을 만들어서 싸우고 싸울수 있는 상대가 없으면 분파를 하여서 싸우면서 상대를 몰아내기 위하여서 서로 무고를 하면서 자신의 뜻을 알리기 위한 경우로 자결을 선호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고문이 성행을 하였는데 그 방법이 무식하여서 당한 사람들은 온전하게 시체를 남기는 경우가 적었다고 할 정도이고 고문을 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당하는 사람들을 악독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4. 민가에서의 자결의 경우

여인들의 자결이 많았는데 성리학을 신봉을 하는 조선에서는 여인들의 정절을 최고로 생각을 하였고 그들이 정절을 더럽히면 인간으로 취급을 안 하고 후세에도 많은 불이익을 당하였으므로 당사자들인 여인들은 자신이 받았던 교육의 힘과 주변의 시선 그리고 가문을 위하여서 자결을 하였고 자결을 안하는 경우에는 명예살인도 많이 발생을 하였다고 한다.

 

남성들의 경우에는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서 자결을 하는 경우는 없었고 자신들의 욕정을 위해서 많은 여인들의 희생을 부른 경우는 많았고 자신들이 무능하여서 타국으로 끌려갔던 여인들이 조국으로 돌아오자 양반가에서는 후대를 위한 이혼과 자결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5. 결 론

긴 시간동안 사회가 흘러 가면서 억울한 죽음도 많고 황당한 죽음도 많은것이 역사의 흐름이라고 할수가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서 싸우다가 실패를 하고 죽은 경우는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죽음이지만 성리학에 빠져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던것 같다.

사람이 살면서 황당한 경우도 있는것 처럼 그러한 일들은 기억에서 지우고 미래를 생각하는 모습을 키우는것이 올바른 사고인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