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세 번째, 미국에 가다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E. M. 델라필드 지음, 박아람 옮김 / 이터널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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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공기가 여성의 옷깃을 어떻게 스치고 지나가는지,
나는 스칼렛 오하라와 어느 영국 여인의 기록에서 알게 되었다.

전쟁이 삶의 모든 질서를 뒤흔든 그 시절,
여성들은 사랑과 생존 사이에서 갈라지는 삶의 선을
조심스레 딛고 있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고 말하던 그때,
대서양 건너편 영국의 한 여인 또한,
자신의 방식으로 그 혼란의 시대를 유머와 체념,
조롱과 온기로 버티고 있었다.

@eternalbooks.seoul 에서 다시 만난
E.M. 델라필드의 『어느 영국 여인의 일기: 미국에 가다』는 전통과 위선으로 가득한 영국 사회에서 벗어나, 미국이라는 거대한 쇼윈도를 마주한 한 중년 여인의 일기다.

그녀는 유쾌하지만 시니컬하게,
남편 R.의 실없는 발언을 견디고,
무례한 외교적 관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텔 로비에서의 사소한 난처함조차 우아하게 조롱한다.

그 조용한 투쟁은 스칼렛의 강렬한 몸짓과는 다르지만,
그 안의 뿌리 같은 생존력은 결코 덜하지 않다.

책 속 한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진심은 커피보다 진했고, 침묵은 스카치보다 강했다.”
이 문장은, 여성의 감정이 어떻게 억눌리고
여과되었는지를 단숨에 보여준다.

스칼렛이 남부의 황폐한 농장에서 살아남은 것처럼,
이 영국 여인도 뾰족한 모자와 얇은 장갑 너머로 시대와 맞선다. 남성 중심의 질서 속에서 웃음을 무기로 삼고,
일기라는 은밀한 틈에서 목소리를 지킨다.

다정하지만 우직하게 삶을 비틀며
걸어간 그 여인들의 기록은 오늘도 조용히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지키며 버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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