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 전4권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십대의 딸과 팔십대의 엄마, 보통의 모녀 사이로 딸이 엄마의 삶을 만화로 그려낸 이 책은 만화라기보다는 장편의 대서사시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우리네 삶이라는 게 저마다 이야기로 풀어내면 책 몇 권은 된다는 게 흔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은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딸이 만화로 그려냄으로써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삶을, 엄마의 삶을, 그리고 우리 모두 어머니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어머니. 말만으로도 든든해지는 것은 가늠할 수조차 없이 큰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지는 삶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는 자신에 얼굴이 홧홧해진다. 쉰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노모를 찾는 발걸음이 잦아지고 어린아이처럼 주절거리며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도 나의 위안을 찾고자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손에 쥐고는 반가움이 앞섰다. 이복동녀씨의 고향이 황해도인 것처럼 내 노모의 고향도 황해도 연백으로 많이 닮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책 속에 실려 있는 이야기는 이복동녀씨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이복동녀씨의 자식들로 이어지는 3대의 모습이다. 나에게는 내가 잘 모르고 있는 노모의 삶,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대부분 여자의 삶, 어머니로서의 삶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호된 시집살이를 하며 자식을 낳고, 키우며 살아가고 자신보다는 남편과 자식을 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아내는, 정말이지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바로 어머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황해도 북청군의 한 마을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복동녀씨는 위로는 언니 넷, 오빠 하나, 밑으로는 여동생 한명이 있었다. 4대독자인 천세오빠는 말 그대로 집안의 기둥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아내면서 힘들어진 집안을 일으켰고 예순도 안 되는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복동녀씨를 알뜰하게 챙겨주었다. 그리고 이복동녀씨는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거지로 남편 김시득씨에게 시집을 와야 했고 첫아들 동훈을 먼저 떠나보낸 후 4남 2녀의 엄마로서 살고 있다. 남편은 돈을 벌기보다는 노는 걸 더 좋아하는, 가장으로서 역할을 해내지 못해 모든 것을 떠안아야 했다. 동주를 낳고서 6. 25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피난을 왔는데 그 때 동구 밖에 서서 손을 흔들어주던 어머니의 모습은 아픔으로 남아있다. 남한에서의 생활은 말 그대로 하루 세끼 끼니조차 해결할 수 없어 돈이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해야 했고 남의 집 신세를 져야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동주의 까만 눈동자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주가 어른이 되어 사우디로 떠나 돈을 벌면서부터 생활이 점차 나아지고 꿈에 그리던 집을 사게 되었을 때의 뿌듯함은 행복으로, 자식 키운 보람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부터 이복동녀씨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는데 이 또한 스스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교회를 다니면서 나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식들 모두 장성해 각자의 길을 걷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는데 이복동녀씨는 딸과 함께 지내고 있다. 물론 자식들이 가끔씩 찾아와 어르고 달래주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헛헛함이 느껴진다. 요즘은 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게 예전과 같지 않아 따로 사는 경우도 많지만 평생 자식을 위해 희생한 우리 윗세대, 이복동녀씨를 비롯한 나의 노모에게는 만족감 보다는 헛헛함이 크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굳이 내색하지 않고 자식을 이해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세세한 부분이 많아 더욱 좋다. 집을 짓는 과정에 돼지를 잡거나 마지막 지붕을 올릴 때는 남다른 의식을 치루고, 사람이 죽으면 나가는 상여의 모습, 그리고 황해도를 비롯한 이북음식인 명태식해, 가자미식해. 명태순대를 만드는 방법은 무심하게 먹었던 맛을 일깨워주었다. 거기에 자세한 설명과 만드는 법은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한다. 이복동녀씨의 손맛이 좋았던 것처럼 내 노모도 그랬다. 무엇이든 척척, 음식 맛도 좋아서 한 번 맛 본 사람은 누구나 칭찬할 만큼, 또 손이 커서 무언가 음식을 하면 동네를 돌며 음식을 돌리곤 했었다.
어머님은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 방앗간집의 무남독녀 외동딸로 곱게 자라 열여덟 나이에 큰 키와 훤칠한 외모의 새신랑을 만나 새색시가 되었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일어나 두 분은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고 서대문 아현동에 자리를 잡고 3남 2녀의 자식을 낳아 기르며 사셨다. 바지런하고 손끝이 야무진 탓에 아이들 옷은 물론 어지간한 것들은 재봉틀로 손수 만들고, 아담하고 통통한 손맛은 어떤 음식이든 척척, 재빠르게 해내는, 거기에 무엇이든 넉넉하게 해서 이웃들과 나누는 정이 많아 동네에서는 칭찬이 자자했다고 한다. 김장을 할 때도 양념으로 고수는 꼭 넣고, 기본적인 것 이외에 코다리를 넣은 보쌈김치에 백김치까지 담고, 계절용 밑반찬으로 여름에는 오이지. 겨울에는 된장, 찹쌀가루, 멸치가루를 이용한 된장떡을.......
그래서 집에 가면 늘 먹을 것들이 많았다. 이제 퇴행성 관절염으로 바깥 출입을 거의 못하시는 대신 요즘 나는 툭하면 거리 풍경을 사진에 담아 노모에게 보내드린다. 답답함을 달래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그 양반, 참 말이 없는 분이셨지. 뭐라 물어도 이렇다 저렇다 답이 없
어 몇 번을 물어야 마지못해 답을 하는 형국이니, 원 답답해서. 그리고
마음 씀씀이는 또 왜 그렇게 곱살 맞은지. 퇴근하고 집에 올 때면 길 가
에서 사과를 사면 오는 길에 노인 분을 만나면 잡수라고 주다보면 빈 봉
지만 가져 오는 게 다반사였어. 하긴 그 양반이 공무원이었으니 우리 집은 먹는 걱정은 없었으니까. 참, 단정한 분이셨다. 그래서 집밖을 나서면 여기 저기 인사를 받느라 면구스러웠는데. 그런 양반이 뭐가 그리 급해서 일찍 가버렸는지.......“
소녀처럼 발그레한 웃음으로 4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던 어머님은 진한 그리움으로 금새 눈시울이 빨개지시곤 했다. 그 후로 어머님은 혼자 힘으로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 솜씨 좋은 바느질로 한복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맛깔 나는 음식솜씨로 잔칫집 음식을 도맡아 하기도 하고, 그렇게 자식들을 키워내고 이제는 자신의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몸이 원망스럽기 보다는 오히려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괜찮다는 말씀으로대신하고 계신다. 하얗게 센 머리, 넉넉한 풍채, 소녀 같은 웃음의 어머님을 찾아뵐 때면 늘 죄송스럽다.
이복동녀씨는 가끔씩 정신이 희미해지는 날을 보낸다고 한다. 그래도 늘 곁을 지켜주는 저자가 있어 마음이 놓인다. 당신의 기억 속에서 삶의 부분 부분을 딸에게 들려주고, 딸은 그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 그렇게 10여년의 세월을 보내며 모녀는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이복동녀씨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을 되찾는 시간을, 딸은 어머니의 삶을 그려냄으로써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찾는 시간으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슴 벅찬 울림으로,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리라는 것도.
개인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지지 쉬운데 이렇게 책으로 남겨놓음으로써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우리 어머니의 사랑을 곁으로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번 주에는 이 책을 들고 노모를 찾아뵈어야겠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노모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겠다. 이복동녀씨와의 만남으로 노모의 삶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노모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환한 웃음을 볼 수 있기를.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에 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