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의 함정 - 똑똑한 당신이 어리석은 실수를 하는 이유와 지혜의 기술
데이비드 롭슨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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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잡힌 사고와 합리적인 판단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부분이다. 반면 자신이 내린 결정을 후회하고, 다시 또 그런 일을 반복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원인을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있어 반가움이 앞선다. 우리가 잘못알고 있는 똑똑함과 어리석음의 모습을 확실하게 알고 그런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알아야 하는 지혜의 기술을 전수받는 은근한 즐거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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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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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손에 쥐는 순간부터 마음이 저릿해졌다. 아직 나는 어머니의 영원한 외출을 배웅해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손에 쥐게 된 것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저릿한 슬픔을 감내하고 있다는 동질의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이다.

책 속에 담겨 있는 저자의 슬픔은 극적이거나 놀라움 보다는 담담함으로 스며들게 해주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영원히 볼 수 없는 슬픔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저릿함을 함께 함으로써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시간은 선물해준다.

영원한 외출을 떠난 저자의 아버지는 80세의 나이로 병원에서 암말기로 판정받은 후 집으로 돌아와 삶을 마무리한다. 그 과정을 함께 하는 맏이인 저자는 남겨져야 할 자리에서 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찾기도 하고 좀 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던 아쉬움과 후회를 갖게 된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만들어 선물하는 것이다.

느닷없는 죽음보다는 정해져 있는 죽음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 또한 어줍잖은 생각이었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환자는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씩 야위어 가고, 먹지도 못하며 생명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을 모두 숨 한 번 크게 내쉬지 못할 것이다. 다만 떠나야 하는 아버지와 남겨져야 하는 저자와 엄마가 더 마음의 준비를 하며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뿐.

건축 일을 하며 평생을 보낸 아버지. 어렸을 때의 기억은 온통 가난함으로 종결되고 있었다. 지독한 가난으로 체육복을 살 수 없어 체육시간마다 곤혹스러웠고, 쌀밥 도시락을 들고 일하러 가는 형이 부러워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치기어린 결심을 하고. 한창 일을 할 대는 제대로 된 방이 없어 늘 텔레비전이 있는 거실에서 잠을 자고, 그나마 제대로 된 방을 갖게 되어 지내다가 임종을 맞이하는.

발끈 성을 잘 내고 말수도 적고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들어야 몸을 움직이고, 그래서 아버지보다 엄마와 더 많은 것을 함께 했으리라. 부보님들의 모습은, 마음은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당신의 손목에는 싸구려 시계를 차고 있으면서도 딸에게는 비싼 시계를 선뜻 채워주고, 어색한 웃음으로 가게에 들어가 딸의 생일선물로 스웨터를 사고, 몸이 아파도 딸이 먹고 싶어 하는 어묵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가고 딸과 함께 길을 걸으면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모습은 아직도 먹고 사는 게 급급한 막내인 나를 안쓰러워하는 내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두 딸의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내 마음이기도 했다.

하얗게 센 머리에 넉넉한 풍채의 어머니는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 방앗간집의 무남독녀 외동딸로 곱게 자라 열여덟 나이에 큰키와 훤칠한 외모의 새신랑을 만나 새색시가 되었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일어나 두 분은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고 서대문 아현동에 자리를 잡고 32녀의 자식을 낳아 기르며 사셨다. 바지런하고 손끝이 야무진 탓에 아이들 옷은 물론 어지간한 것들은 재봉틀로 손수 만들고, 아담하고 통통한 손맛은 어떤 음식이든 척척, 재빠르게 해내는, 거기에 무엇이든 넉넉하게 해서 이웃들과 나누는 정이 많아 동네에서는 칭찬이 자자했다. 김장을 할 때도 양념으로 고수는 꼭 넣고, 기본적인 것 이외에 코다리를 넣은 보쌈김치에 백김치까지 담고, 계절용 밑반찬으로 여름에는 오이지. 겨울에는 된장, 찹쌀가루, 멸치가루를 이용한 된장떡을.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진다.

본가에서 아버지와 지내다가 도쿄의 집으로 돌아올 때면 맛있는 것들로 자신을 다독이는 저자는 그만큼 예견된 아버지의 죽음으로 허기졌을 마음이었으리라. 그 일은 어긋남 없이 현실로 다가왔고 먼저 세상을 떠난 삼촌이 선물해준 스웨터를 입고 누워있는 아버지를 만나야했다. 거기에 엄마 손을 잡고 주무시다 돌아가셨다는. 여든의 나이로 충분한 삶이었다는 말을 위안으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잠시 마음을 추슬러본다. 간단한 시술이라던 스텐실 시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기다리던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문병가기 위해 식구들과 집을 나섰고. 가던 중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신없이 도착한 중환자실에서 만난 어머님은 치렁치렁한 링거 줄이 무색하게 두 눈을 감은 채 누워계셨다. 곁으로는 줄지어 서 있는 인턴들이 차례대로 돌아가며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지만 싸늘한 촉감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과다출혈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자식들과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서 혼자서 급하게. 남겨진 자식들의 황망함은 복받치는 울음으로. 넋 나간 혼절로 지속되었고, 어머니는 장례식장 단상 위에 놓여진 사진 속에서 미소 짓고 계셨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저자와 엄마는 49제를 지내기 위해 아버지가 좋아했던 물건을 단상에 올리고, 유품을 정리하고, 서류 정리를 함으로써 현실적으로 아버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을 뿐. 그것도 처음에는 실감나지 않아 주변에 알리지 않았는데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은 지속되고 저자는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버지를 다시 불러내어 함께 했고 아버지의 추억을 더듬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낸 후에야 아버지를 떠올리는 날일 줄었다고 하니 그만큼 슬픔의 강약이 조절되어가나 보다.

슬픔에도 강약이 있었다. 마치 피아노 리듬처럼. 내 속에서 커졌다가 작아졌다는 저자의 말처럼. 지금 나는 강한 슬픔으로 툭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나도 일 년 후에는 저자의 말처럼 슬픔의 강도가 약해질 것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럴수록 더 마음이 저릿해진다. 아쉬움과 후회투성이인 못난 막내아들로 차마 보내지 못하는 연연함으로.

 

법당 안으로 들어서자 발밑으로 느껴지는 마루의 차가운 느낌은 곧바로 가슴에 아릿함으로 전해져 왔다. 법당 안에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와 스님의 경 읽는 소리는 어수선한 마음을 한 순간에 가라앉히고, 조심스러운 눈길이 머문 곳에는 시어머님이 환한 웃음이 나를 맞이해주셨다. 다시 또 왈칵 눈물이 난다.

오늘은 어머님의 49제를 치르는 날이다. 49일이라는 시간이 주는 어감과는 달리 한 순간처럼 느껴진다. 마치 어제처럼. 4일장을 치르고, 3.5제를 지내고, 자그마한 절에 모신 후 49제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제를 지내왔고 오늘이 마지막 7제로 49제를 지내는 날이다.

나는 매주 그래왔던 것처럼 어머님이 평소에 좋아하시던 모카 케이크를 상에 올리고 약소하지만 노잣돈도 올렸다. 이제는 이렇게라도 어머님을 만나 뵐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법당 안에서 제를 끝내고 밖으로 나와 절 한 쪽에 있는 소각장 앞에서 간단히 제를 올리고 우리는 어머님을 보내 드려야했다. 어머님의 옷과 하얀 고무신은 불꽃을 피우더니 어느새 하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솟아오르며 먼 길을 떠나셨다. 복받쳐 오르는 울음이 잦아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어머님이 떠나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립다. 그리워진다. 어버이날이나 생신 때 용돈을 드리면 어머님께서는 손사래를 치며 내 주머니에 도로 넣어주시던 어머님의 다정한 손길이. 경제적으로 힘들어 하는 나를 달래느라 당신이 드실 것을 바리바리 싸주시던 따뜻한 마음이. 성적장학금을 받은 아이를 품에 안고 어깨를 토닥여주시던 환한 웃음이.

엄마, 아버지 만나셔서 좋으시죠? 40여년 만에 만나셨으니 하실 이야기도 많으실 거예요. 아버지와 함께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 야기 나누세요.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은 아버지 손을 잡고 여기 있는 자식 들 보러 오세요. 봄이면 엄마가 좋아하시던 솜사탕 같은 목련꽃으로, 여름이 면 반가운 손님 같다던, 느닷없이 쏟아지는 소나기로, 가을이면 소중한 보물 처럼 지니고 계셨던 책갈피 속 은행잎의 고운 빛으로, 겨울이면 저의 허물을 덮어주시던 부드러운 웃음 같은 하얀 눈으로. 훗날, 제가 엄마 곁으로 갈 때면 환한 웃음으로 마중 나와 주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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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 기시미 이치로의 사랑과 망설임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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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우리 삶과 함께 하는 힘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랑을 배우고, 어른이 된 후로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의 사랑을 하고, 정신이 피폐해질 정도의 이별을 한 잔 술로 잊고, 그런 과정을 몇 번 치르고 나서 사랑의 완성인 듯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어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이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이고 보니 사랑에 대한 배움이 새삼스럽다. 이 나이쯤 되고 보면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사랑에 대한 조언을 해줄법한데 막상 입을 열면 두리뭉실한, 으레 들어왔던 말들이 전부이다.

당신의 사랑은 지금 행복한가요?’ 저자의 질문에 선뜻 답을 하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행복하다는 답을 미리 정해버린 자신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랑은 젊은 사람들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도 오랫동안 함께 살아가는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랑을 위해 배워보고 싶은 요량으로 책을 펼쳐본다.

이 책은 사랑에 대한 개념에서부터 사랑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와 그 답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거기에 아들러 심리학의 1인자로 불리는 만큼 철학적 의미를 더해 더 깊고 넓게 사고할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연애, 결혼의 사랑으로 인한 문제와 답으로 해결해주고 사랑에 대해 기본적인 개념도 짚어주었다.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사랑의 기술로 보다 좋은 사랑을 쌓을 수 있는 힘을 갖게 한다.

사랑은 관계 속에 머물러야 비로소 살아가는 기쁨도 행복도 느낄 수 있는데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서 갖게 되는용기가 필요하고, 프롬의 생각처럼 사랑은 능력의 문제이고 나아가서는 기술로 그만큼의 지식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쌓아올리는 것이다. 결혼은 두 사람의 새로운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결혼한 두 사람은 평생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을 굳게 결심하고 풀기 힘든 매듭을 함께 묶은 사이이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내용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얼굴이 홧홧해졌다. 숱하게 회자되는 말처럼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앞세워 내가 우선인 사랑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와 다름을 인정하기 낳고 무조건 나에게 맞추기를 강요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부분에도 내가 우선으로 지배하고, 보수적이라는 권위를 내세워 역할을 정해놓고 은근한 압력을 넣고, 오래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사랑 역시 당연한 것으로 일관해왔었다. 반대로 아내의 자리에서 보면 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불편한 관계였을지. 어쩌면 아내는 사랑이라기보다는 생활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의, 우리의 사랑이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에. 늦은 감은 있지만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먼저 지금 나의 사랑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여유를 갖고 살펴보고, 나는 혼자였을 때의 내가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살아가는 나라는 것을, 사랑은 오직 사랑하는 것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성숙한 사랑을 위해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관계에서 비로소 성립한다는, 구속은 사랑의 모습이 아니고 사랑의 모습은 자유라는 것도.

하나로 뭉뚱그려있던 사랑은 저자의 섬세한 손길로 하나씩 자리를 잡고 나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다른 무엇보다 자기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시작으로 나의 사랑을 쌓아올리는 사랑의 기술을 습득해본다. 아내는 나와 대등한 관계로. 아내에게 관심을 갖고, 아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고, 나와 생각이 다를 때는 대화를 통해 나에게 맞추기 보다는 다름을 받아들이며 해결해나가고. 각자의 시간이 아니라 체험된 시간을 만들어 둘 만의 시간을 느끼며 지금, 여기.’사랑할 수 있도록 손을 잡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야겠다.

책을 다 읽고 내가 해야 할 것들로 마음이 바빠졌다. 내 사랑이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동하는 것을 보면 사랑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내를 위한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다. 아이들 엄마가 아닌, 아내를 위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화사한 블라우스와 아내가 좋아하는 장미꽃 한 다발도, 그리고 오랜만에 예전처럼 마음을 담은 편지도. 이 나이에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아내라는 이름은 하루쯤 내려 놓고 나의 사랑하는 그녀로서 가슴 설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아내의 환한 웃음을 그리며.

물론 지금까지 습관처럼 몸에 베어있는 잘못된 사랑의 방법을 고쳐나가려면 시간도 걸리고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좋다. 그 모든 것들은 행복한 사랑을 위한 기쁨이기 때문이다. 한 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금 이 시간을 사랑으로 채울 수 있기를, 아내와 영원한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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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 전4권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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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대의 딸과 팔십대의 엄마, 보통의 모녀 사이로 딸이 엄마의 삶을 만화로 그려낸 이 책은 만화라기보다는 장편의 대서사시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우리네 삶이라는 게 저마다 이야기로 풀어내면 책 몇 권은 된다는 게 흔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은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딸이 만화로 그려냄으로써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삶을, 엄마의 삶을, 그리고 우리 모두 어머니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어머니. 말만으로도 든든해지는 것은 가늠할 수조차 없이 큰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지는 삶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는 자신에 얼굴이 홧홧해진다. 쉰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노모를 찾는 발걸음이 잦아지고 어린아이처럼 주절거리며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도 나의 위안을 찾고자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 책을 손에 쥐고는 반가움이 앞섰다. 이복동녀씨의 고향이 황해도인 것처럼 내 노모의 고향도 황해도 연백으로 많이 닮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책 속에 실려 있는 이야기는 이복동녀씨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이복동녀씨의 자식들로 이어지는 3대의 모습이다. 나에게는 내가 잘 모르고 있는 노모의 삶, 이전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대부분 여자의 삶, 어머니로서의 삶이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호된 시집살이를 하며 자식을 낳고, 키우며 살아가고 자신보다는 남편과 자식을 우선으로 하는 삶을 살아내는, 정말이지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바로 어머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황해도 북청군의 한 마을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복동녀씨는 위로는 언니 넷, 오빠 하나, 밑으로는 여동생 한명이 있었다. 4대독자인 천세오빠는 말 그대로 집안의 기둥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아내면서 힘들어진 집안을 일으켰고 예순도 안 되는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복동녀씨를 알뜰하게 챙겨주었다. 그리고 이복동녀씨는 정신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거지로 남편 김시득씨에게 시집을 와야 했고 첫아들 동훈을 먼저 떠나보낸 후 42녀의 엄마로서 살고 있다. 남편은 돈을 벌기보다는 노는 걸 더 좋아하는, 가장으로서 역할을 해내지 못해 모든 것을 떠안아야 했다. 동주를 낳고서 6. 25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남한으로 피난을 왔는데 그 때 동구 밖에 서서 손을 흔들어주던 어머니의 모습은 아픔으로 남아있다. 남한에서의 생활은 말 그대로 하루 세끼 끼니조차 해결할 수 없어 돈이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해야 했고 남의 집 신세를 져야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동주의 까만 눈동자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주가 어른이 되어 사우디로 떠나 돈을 벌면서부터 생활이 점차 나아지고 꿈에 그리던 집을 사게 되었을 때의 뿌듯함은 행복으로, 자식 키운 보람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부터 이복동녀씨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는데 이 또한 스스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교회를 다니면서 나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식들 모두 장성해 각자의 길을 걷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는데 이복동녀씨는 딸과 함께 지내고 있다. 물론 자식들이 가끔씩 찾아와 어르고 달래주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헛헛함이 느껴진다. 요즘은 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게 예전과 같지 않아 따로 사는 경우도 많지만 평생 자식을 위해 희생한 우리 윗세대, 이복동녀씨를 비롯한 나의 노모에게는 만족감 보다는 헛헛함이 크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굳이 내색하지 않고 자식을 이해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세세한 부분이 많아 더욱 좋다. 집을 짓는 과정에 돼지를 잡거나 마지막 지붕을 올릴 때는 남다른 의식을 치루고, 사람이 죽으면 나가는 상여의 모습, 그리고 황해도를 비롯한 이북음식인 명태식해, 가자미식해. 명태순대를 만드는 방법은 무심하게 먹었던 맛을 일깨워주었다. 거기에 자세한 설명과 만드는 법은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을 갖게 한다. 이복동녀씨의 손맛이 좋았던 것처럼 내 노모도 그랬다. 무엇이든 척척, 음식 맛도 좋아서 한 번 맛 본 사람은 누구나 칭찬할 만큼, 또 손이 커서 무언가 음식을 하면 동네를 돌며 음식을 돌리곤 했었다.

어머님은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 방앗간집의 무남독녀 외동딸로 곱게 자라 열여덟 나이에 큰 키와 훤칠한 외모의 새신랑을 만나 새색시가 되었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일어나 두 분은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고 서대문 아현동에 자리를 잡고 32녀의 자식을 낳아 기르며 사셨다. 바지런하고 손끝이 야무진 탓에 아이들 옷은 물론 어지간한 것들은 재봉틀로 손수 만들고, 아담하고 통통한 손맛은 어떤 음식이든 척척, 재빠르게 해내는, 거기에 무엇이든 넉넉하게 해서 이웃들과 나누는 정이 많아 동네에서는 칭찬이 자자했다고 한다. 김장을 할 때도 양념으로 고수는 꼭 넣고, 기본적인 것 이외에 코다리를 넣은 보쌈김치에 백김치까지 담고, 계절용 밑반찬으로 여름에는 오이지. 겨울에는 된장, 찹쌀가루, 멸치가루를 이용한 된장떡을.......

 그래서 집에 가면 늘 먹을 것들이 많았다. 이제 퇴행성 관절염으로 바깥 출입을 거의 못하시는 대신 요즘 나는 툭하면 거리 풍경을 사진에 담아 노모에게 보내드린다. 답답함을 달래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그 양반, 참 말이 없는 분이셨지. 뭐라 물어도 이렇다 저렇다 답이 없

어 몇 번을 물어야 마지못해 답을 하는 형국이니, 원 답답해서. 그리고

마음 씀씀이는 또 왜 그렇게 곱살 맞은지. 퇴근하고 집에 올 때면 길 가

에서 사과를 사면 오는 길에 노인 분을 만나면 잡수라고 주다보면 빈 봉

지만 가져 오는 게 다반사였어. 하긴 그 양반이 공무원이었으니 우리 집은 먹는 걱정은 없었으니까. , 단정한 분이셨다. 그래서 집밖을 나서면 여기 저기 인사를 받느라 면구스러웠는데. 그런 양반이 뭐가 그리 급해서 일찍 가버렸는지.......“

소녀처럼 발그레한 웃음으로 4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던 어머님은 진한 그리움으로 금새 눈시울이 빨개지시곤 했다. 그 후로 어머님은 혼자 힘으로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 솜씨 좋은 바느질로 한복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맛깔 나는 음식솜씨로 잔칫집 음식을 도맡아 하기도 하고, 그렇게 자식들을 키워내고 이제는 자신의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몸이 원망스럽기 보다는 오히려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괜찮다는 말씀으로대신하고 계신다. 하얗게 센 머리, 넉넉한 풍채, 소녀 같은 웃음의 어머님을 찾아뵐 때면 늘 죄송스럽다.

이복동녀씨는 가끔씩 정신이 희미해지는 날을 보낸다고 한다. 그래도 늘 곁을 지켜주는 저자가 있어 마음이 놓인다. 당신의 기억 속에서 삶의 부분 부분을 딸에게 들려주고, 딸은 그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 그렇게 10여년의 세월을 보내며 모녀는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이복동녀씨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을 되찾는 시간을, 딸은 어머니의 삶을 그려냄으로써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찾는 시간으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슴 벅찬 울림으로,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리라는 것도.

개인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지지 쉬운데 이렇게 책으로 남겨놓음으로써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우리 어머니의 사랑을 곁으로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번 주에는 이 책을 들고 노모를 찾아뵈어야겠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노모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겠다. 이복동녀씨와의 만남으로 노모의 삶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노모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 환한 웃음을 볼 수 있기를.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에 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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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힘 - 평범한 순간을 결정적 기회로 바꾸는 경험 설계의 기술
칩 히스.댄 히스 지음, 박슬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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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순간을 맞기 위해서는 특별함을 즐겨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된다. 결정적 순간은 기다리지 말고 당장 실천하는 것으로, 저자가 알려주는 결정적 순간을 창조하는 4자기 요소로 특별한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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