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외출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손에 쥐는 순간부터 마음이 저릿해졌다. 아직 나는 어머니의 영원한 외출을 배웅해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손에 쥐게 된 것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저릿한 슬픔을 감내하고 있다는 동질의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이다.

책 속에 담겨 있는 저자의 슬픔은 극적이거나 놀라움 보다는 담담함으로 스며들게 해주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영원히 볼 수 없는 슬픔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저릿함을 함께 함으로써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시간은 선물해준다.

영원한 외출을 떠난 저자의 아버지는 80세의 나이로 병원에서 암말기로 판정받은 후 집으로 돌아와 삶을 마무리한다. 그 과정을 함께 하는 맏이인 저자는 남겨져야 할 자리에서 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찾기도 하고 좀 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던 아쉬움과 후회를 갖게 된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고 책으로 만들어 선물하는 것이다.

느닷없는 죽음보다는 정해져 있는 죽음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이 또한 어줍잖은 생각이었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환자는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씩 야위어 가고, 먹지도 못하며 생명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가족을 모두 숨 한 번 크게 내쉬지 못할 것이다. 다만 떠나야 하는 아버지와 남겨져야 하는 저자와 엄마가 더 마음의 준비를 하며 더 많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뿐.

건축 일을 하며 평생을 보낸 아버지. 어렸을 때의 기억은 온통 가난함으로 종결되고 있었다. 지독한 가난으로 체육복을 살 수 없어 체육시간마다 곤혹스러웠고, 쌀밥 도시락을 들고 일하러 가는 형이 부러워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치기어린 결심을 하고. 한창 일을 할 대는 제대로 된 방이 없어 늘 텔레비전이 있는 거실에서 잠을 자고, 그나마 제대로 된 방을 갖게 되어 지내다가 임종을 맞이하는.

발끈 성을 잘 내고 말수도 적고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들어야 몸을 움직이고, 그래서 아버지보다 엄마와 더 많은 것을 함께 했으리라. 부보님들의 모습은, 마음은 많이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당신의 손목에는 싸구려 시계를 차고 있으면서도 딸에게는 비싼 시계를 선뜻 채워주고, 어색한 웃음으로 가게에 들어가 딸의 생일선물로 스웨터를 사고, 몸이 아파도 딸이 먹고 싶어 하는 어묵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가고 딸과 함께 길을 걸으면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모습은 아직도 먹고 사는 게 급급한 막내인 나를 안쓰러워하는 내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두 딸의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내 마음이기도 했다.

하얗게 센 머리에 넉넉한 풍채의 어머니는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 방앗간집의 무남독녀 외동딸로 곱게 자라 열여덟 나이에 큰키와 훤칠한 외모의 새신랑을 만나 새색시가 되었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일어나 두 분은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고 서대문 아현동에 자리를 잡고 32녀의 자식을 낳아 기르며 사셨다. 바지런하고 손끝이 야무진 탓에 아이들 옷은 물론 어지간한 것들은 재봉틀로 손수 만들고, 아담하고 통통한 손맛은 어떤 음식이든 척척, 재빠르게 해내는, 거기에 무엇이든 넉넉하게 해서 이웃들과 나누는 정이 많아 동네에서는 칭찬이 자자했다. 김장을 할 때도 양념으로 고수는 꼭 넣고, 기본적인 것 이외에 코다리를 넣은 보쌈김치에 백김치까지 담고, 계절용 밑반찬으로 여름에는 오이지. 겨울에는 된장, 찹쌀가루, 멸치가루를 이용한 된장떡을.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진다.

본가에서 아버지와 지내다가 도쿄의 집으로 돌아올 때면 맛있는 것들로 자신을 다독이는 저자는 그만큼 예견된 아버지의 죽음으로 허기졌을 마음이었으리라. 그 일은 어긋남 없이 현실로 다가왔고 먼저 세상을 떠난 삼촌이 선물해준 스웨터를 입고 누워있는 아버지를 만나야했다. 거기에 엄마 손을 잡고 주무시다 돌아가셨다는. 여든의 나이로 충분한 삶이었다는 말을 위안으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잠시 마음을 추슬러본다. 간단한 시술이라던 스텐실 시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기다리던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문병가기 위해 식구들과 집을 나섰고. 가던 중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신없이 도착한 중환자실에서 만난 어머님은 치렁치렁한 링거 줄이 무색하게 두 눈을 감은 채 누워계셨다. 곁으로는 줄지어 서 있는 인턴들이 차례대로 돌아가며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지만 싸늘한 촉감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과다출혈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다. 자식들과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서 혼자서 급하게. 남겨진 자식들의 황망함은 복받치는 울음으로. 넋 나간 혼절로 지속되었고, 어머니는 장례식장 단상 위에 놓여진 사진 속에서 미소 짓고 계셨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저자와 엄마는 49제를 지내기 위해 아버지가 좋아했던 물건을 단상에 올리고, 유품을 정리하고, 서류 정리를 함으로써 현실적으로 아버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을 뿐. 그것도 처음에는 실감나지 않아 주변에 알리지 않았는데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은 지속되고 저자는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버지를 다시 불러내어 함께 했고 아버지의 추억을 더듬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낸 후에야 아버지를 떠올리는 날일 줄었다고 하니 그만큼 슬픔의 강약이 조절되어가나 보다.

슬픔에도 강약이 있었다. 마치 피아노 리듬처럼. 내 속에서 커졌다가 작아졌다는 저자의 말처럼. 지금 나는 강한 슬픔으로 툭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나도 일 년 후에는 저자의 말처럼 슬픔의 강도가 약해질 것이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럴수록 더 마음이 저릿해진다. 아쉬움과 후회투성이인 못난 막내아들로 차마 보내지 못하는 연연함으로.

 

법당 안으로 들어서자 발밑으로 느껴지는 마루의 차가운 느낌은 곧바로 가슴에 아릿함으로 전해져 왔다. 법당 안에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와 스님의 경 읽는 소리는 어수선한 마음을 한 순간에 가라앉히고, 조심스러운 눈길이 머문 곳에는 시어머님이 환한 웃음이 나를 맞이해주셨다. 다시 또 왈칵 눈물이 난다.

오늘은 어머님의 49제를 치르는 날이다. 49일이라는 시간이 주는 어감과는 달리 한 순간처럼 느껴진다. 마치 어제처럼. 4일장을 치르고, 3.5제를 지내고, 자그마한 절에 모신 후 49제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제를 지내왔고 오늘이 마지막 7제로 49제를 지내는 날이다.

나는 매주 그래왔던 것처럼 어머님이 평소에 좋아하시던 모카 케이크를 상에 올리고 약소하지만 노잣돈도 올렸다. 이제는 이렇게라도 어머님을 만나 뵐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법당 안에서 제를 끝내고 밖으로 나와 절 한 쪽에 있는 소각장 앞에서 간단히 제를 올리고 우리는 어머님을 보내 드려야했다. 어머님의 옷과 하얀 고무신은 불꽃을 피우더니 어느새 하얀 연기가 되어 하늘로 솟아오르며 먼 길을 떠나셨다. 복받쳐 오르는 울음이 잦아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어머님이 떠나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립다. 그리워진다. 어버이날이나 생신 때 용돈을 드리면 어머님께서는 손사래를 치며 내 주머니에 도로 넣어주시던 어머님의 다정한 손길이. 경제적으로 힘들어 하는 나를 달래느라 당신이 드실 것을 바리바리 싸주시던 따뜻한 마음이. 성적장학금을 받은 아이를 품에 안고 어깨를 토닥여주시던 환한 웃음이.

엄마, 아버지 만나셔서 좋으시죠? 40여년 만에 만나셨으니 하실 이야기도 많으실 거예요. 아버지와 함께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그동안 나누지 못한 이 야기 나누세요.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은 아버지 손을 잡고 여기 있는 자식 들 보러 오세요. 봄이면 엄마가 좋아하시던 솜사탕 같은 목련꽃으로, 여름이 면 반가운 손님 같다던, 느닷없이 쏟아지는 소나기로, 가을이면 소중한 보물 처럼 지니고 계셨던 책갈피 속 은행잎의 고운 빛으로, 겨울이면 저의 허물을 덮어주시던 부드러운 웃음 같은 하얀 눈으로. 훗날, 제가 엄마 곁으로 갈 때면 환한 웃음으로 마중 나와 주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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