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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해서
아리(임현경) 지음 / 북튼 / 2020년 10월
평점 :
"아무도 '여자니까' '엄마니까' '어른이니까'라며 나를 제한하지 않았다. 대신 내 삶을 찾으라 했고, 꿈꾸라 했다. 무엇보다 네 행복이 우선이라 했다." (p.51)
'결혼' 이라는 단어는 반짝이는 설레임과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라는 극단적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풋풋한 연인으로 시작해서 한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결혼이라는 제도안에 안착하지만, 제도안에 발을 내딪는 순간 수많은 의무와 함께 나 보다 우선되도록 강요되는 것들은 많아진다. 특히나 가부장적인 유교사상이 뿌리 깊게 내려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결혼이라는 제도안의 대부분의 의무를 '여자'에게 지운다. 태어나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심지어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르라는 어이없는 '삼종지도'라는 설레발과 함께 말이다.
돈버는 일과 집안 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하더라도, 아직도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 가사 또한 노동의 대가가 필요한 일이다. 하물로 대다수가 맞벌이를 하고 있는 요즘에야 가사를 여성의 몫으로 남겨두는 관습은 반드시 없어져야 하는 잘못된 관습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에도 휴가가 필요해서"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여전히 여성의 입장에서 다뤄지고 있지만, 결혼의 주체가 되는 양 당사자에게 모두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하물며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과도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한데, 적어도 20년 이상, 길게는 30~40년을 따로 살아오던 타인이 각자의 영역을 합하는 일인데 아무일도 없이 순탄할수는 없는게 당연한 일인듯 하다.
너무나 부러웠던 용기 있는 저자의 4년간의 결혼 휴가지는 발리의 우붓이다. 디지털노마드가 가능한 번역일과 용기가 결합되어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그녀의 직업 또한 부러워진다. 꼬박꼬박 출근 전쟁을 치뤄야하는 나에게는 퇴사와 함께 아니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더 많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화려한 휴양지로 알고 있던 발리의 고즈넉한 우붓은 예술인의 마을로 불리는 곳이다. 잘모르는 나조차도 휴가지로 우붓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만큼 매력적인 곳이다. '그럼, 쉬세요~'로 마무리하는 대화와 카우치 쇼퍼들의 성지로 여겨지는 개방감 등 훌쩍 떠나온 이방인도 너른 마음으로 품어줄것 같은 곳이랄까... 우붓은 나에게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럼, 쉬세요.' 처음 우붓에 살기 시작했을 때 가장 신선했던 말이었다. 쉬란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열심히 노력하라고, 시간 낭비 하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노느니 뭐라도 하라는 말도, 지금 놀면 나중에 고생한다는 말도 없었다." (p.135)
꼭 우붓이 아니더라도, 긴 시간이 아니더라도, 스스로에게 인색한 나에게 결혼과 일상으로의 휴가를 주고 싶어지는 시간이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서, 나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선물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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