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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관두는 최고의 순간
이주영 지음 / 헤이북스 / 2020년 9월
평점 :
회사를 관두는 순간이 최고의 순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럽기만 하다. 각설하고, 퇴사가 최고의 순간이 되려면, 우선 넉넉한 통장잔고가 함께해야 할 것이며 피곤에 쩔어 불가피하게 하는 퇴사가 아닌 인생2막을 꿈꾸는 당당한 퇴사가 전제가 되어야 하니 말이다.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나와는 거리가 먼 넉넉한 통장잔고와 퇴사 후 할 수 있는 일 - 창업이든, 새로운 직업이든 백수가 되지 않기 위한 - 이 준비되지 않은 나에게 퇴사는 절대 최고의 순간이 될 수 없다. 아쉽게도 퇴사는 나에게 재앙으로 여겨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읽게되는 퇴사 관련 글들은 나에게 충분한 대리만족을 안겨준다. 그들의 퇴사가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젖은 낙엽처럼 직장에 딱 버티고 있는 내가 대견스럽게 여겨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무작정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가, 몇번의 실패 끝에 아나운서가 되기를 포기하고 외국계 은행에 취업했다고 한다. 아나운서가 되는데 실패하긴 했지만, 외국계 은행 취업도 굉장한 성공이라 여겨지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항공사 승무원으로 재취업한다. 충분히 어려운 준비과정을 거쳐 취업에 성공했겠지만, 저자의 재취업 성공기는 너무나도 신나게,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나라면 은행이라는 안정되고 만족스러운 직장을 뒤로하고, 승무원이라는 새로운 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나올 수 있었을까? 대답은 아마도 99.9% 'No!'가 아닐까 싶다.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았고 막연한 동경에서의 출발을 받아들이기란 쉽지않은 일이니 말이다.
"나는 서른이다. 이미 벌써 어느덧 서른이기도 하고, 이제 겨우 고작 서른이기도 한 나는 그렇게 서른 살이 되었다. 20대 중반 무렵 고등학교 동창이 "서른 살 이전까지 하는모 든 일은 삽질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시 외국계금융권에 입사해 빛 좋은 개살구임에도그 영롱한 빛에 취해 있던 나는 속으로 '너만 삽질하는 거겠지. 난 아니란다'라며 나는 부류의 사람임을 과시하고 싶었다." (p.37)
승무원으로 일하면서도 자신이 목표한 회계사 자격 취득에 게으르지 않고, 제과제빵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녀의 열정이 부럽다. 여행을 함께하듯 써내려간 그녀의 승무원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책읽기는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불규칙적인 비행스켸줄을 불편해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가끔 찾아오는 어려운 일들은 당당하게 맞서며 그녀만의 세상을 쌓아간다. 자신에게 당당해지기 위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취업하기 위해 아둥바둥 하다가 막상 취업에 성공하고 나서는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석고상이 되어버린다고나 할까. 이런 보통의 모습들과 비교돼서 그녀의 에너지가 더욱 부러워지는 걸까. 책을 읽는 내내 '나라면' '나였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카타르항공에서의 10여년간의 승무원 생활과 함께 그녀가 쌓아 온 내공을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글이었다. 멋지게 착륙한 비행기를 떠나, 30대의 푸릇푸릇한 에너지와는 다르지만, 농익은 40대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그녀의 멋진 출발을 응원한다.
"혹서의 아프리카 밀림에서 혹한의 시베리아 툰드라까지 전 세계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 그래, 이게 진정한 크루의 슈트케이스지. 실패의 경험과 학습 덕분에 평범한 크루의 비범한 슈트케이스가 완성되어가고 있다." (p.106)
"문화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