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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연대기
기에르 굴릭센 지음, 정윤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11월
평점 :
"내 곁에 있던 여자, 그때의 티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옆에 있던 남자, 그때의 나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부부'로 함께 살을 맞대며 살았던 '우리'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부부로서 우리 인생은 끝났고 티미는 오래전 우리의 모습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p.33)
불륜으로 시작된 사랑 그리고 불륜으로 막을 내린 사랑... 오직 부부만이 느낄 수 있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남편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숨김없이 모든 것을 공유하던 부부, 서로의 사랑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심지어 서로의 외도에도 쿨할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서로에게 자신이 지워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보통의 평범한 부부의 모습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보통의 만남이 아니여서 였을까, 서로의 몸을 탐닉하며, 아이를 낳고, 관심을 갈구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삶이 이어진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는 이상 아무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의미없는 자신감으로 아내와의 잠자리에서 그녀의 외도 현장을 상상하는 남편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어렵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다른 사람을 갈구하며, 한편으로는 서로의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사랑하는 아내가, 내 아이의 엄마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을 향한 마음을 키워가더라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남자 존은 그녀의 아내 티미의 눈길이 그가 아닌 다른 남자 군나르를 향하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모든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에게는 조금의 비밀도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차가운 기운과 비밀이 몸집을 부풀리기 시작한다. 의미없는 잠자리와 서로를 그리워하지 않는 일상은 평온했던 삶을 지옥으로 몰고간다. 극도의 괴로움을 느꼈던 순간조차 그녀의 기억을 차지할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서로에게 전부였던 부부는 이렇게 조금씩 남이 되어 간다. 전부라 여겼던 사랑이 커다란 분노로 변해간다.
“언젠가 당신도 나처럼 똑같이 버림받기를 기도할게. 나를 무참히 버리고 떠난 것처럼 당신도 똑같이 버림받기를, 내 온 마음을 다해서 간절기 기도하고 기도할 거야.” (p.81)
남편의 시선으로 변해가는 아내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탓에 남편의 감정이 굉장히 섬세하게 그려진다. 개인적으로 너무도 자신만만하게 아내에게 자유를 부여한 존도, 그런 자유를 당당하게 누리는 티미도 공감하기 어렵다. 부부만이 알 수 있는 감정이지만, 기혼자인 나도 어려운 감정이었다. 부부간의 신뢰는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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