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 기억을 지우는 자
김다인 지음 / 스윙테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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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말하길, 무지와 망각이 인간에게 주어진 최후의 행운이라고 했던가. 남자의 사소한 오판은 그를 기이한 인연으로부터 멀찍이 떼어냈다. 더는 그가 관여할 일은 없었다. 그는 이 근처에 사는 평범한 시민이고, 앞으로도 평온한 일상을 보낼 것이다. 그러니 그가 우연히 구해낸 한 소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없었다." (p.6)

어두컴컴하고 한적한 낚시터. 악마가 환생한 듯한 소녀의 시체 아니 시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소녀가 떠오르고,,, 이어진 장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싸움터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지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한 남자의 머리통을 화끈하게 날려버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암전.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을 담은 화면의 전환은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갈 ‘나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카카오페이지와 CJ ENM, 스튜디오드래곤이 주최한 제4회 추미스 소설 공모전의 우수상 수상작 김다인 작가의 ‘나비 기억을 지우는 자’는 끔찍한 기억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인간의 내면을 탐사하는 특별한 심리상담사 ‘나비’를 소재로 하고 있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 타인의 심연을 파고들어 잊고 싶은 기억을 지우고, 트라우마를 사냥한다. 미지의 영역은 대가없는 침범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듯 트라우마를 사냥한 대가로 출구를 찾지 못한 나비는 스스로의 목숨을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내담자의 기억 속 끔찍한 성범죄의 머리통을 시원하게 날려버린 최고의 나비 고유진은 정일구 형사로부터 어마어마한 수임료가 걸린 위험한 사냥을 제안 받는다. 지옥으로부터 탈출한 소녀의 내면으로 들어가 지옥이 있음을 증명해 달라는 - 소녀의 트라우마 치료 보다는 박재영 목사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여겨지는 - 석연치 않은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고유진은 그날 밤 마치 지옥을 다녀온 것 같은 불가사의한 일을 겪게 되고, 악마의 도전에 응하듯 박재영 목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지옥으로부터 탈출한 소녀를 만난 유진. 그녀는 소녀에게서 나비 고유진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동생의 모습을 발견하고, 영진을 닮은 소녀를 구하기 위해 깊고 어두운 지옥의 밑바닥으로 위험한 사냥을 떠난다. 그녀는 영진을 닮은 소녀를 구하고, 그녀 또한 영진을 떠나 보낸 상처를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 서로를 서로에게 내어준 나비 고유진과 지옥으로부터 환생한 소녀의 믿음 그리고 반전.

"내가······."

마침내 좀더 확실하게 해둬야 할 시간이 온 모양이다.

"내가 널 나가게 해줄게. 아니, 자유롭게 만들어줄게."

"정말요?"

"정말이야."

내 동생 유영이가 죽어서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 난 정확히 모 른다. 지옥이란 곳이 경험을 통해 직접 감각되었을 뿐 천국의 혼적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옥에서 빠져 나가기를 바라지 못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p.133)

나비의 사냥을 통해 마음의 상처가 쉽게 치유될 수 없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망각의 동물 인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어쩔 수 없이 망각을 선택한 채 잊고 싶은 기억을 깊은 심연으로 밀어넣고 살아내고 있지만 기억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로 말이다. 불연 듯 떠오르는 상처받은 기억을 깨끗하게 씻어내줄 수 있는 나비가 실제했으면 좋겠다는 웃픈 생각과 함께 책장을 덮는다.

"트라우마란 것도, '소녀'도, 적어도 네 마음속에서는 비슷한 존재일 거야. 그렇기에 내가 직접 가서 그걸 없애버리려는 거지. 즉 네 괴로운 기억을 떼어낸 다음 지울 거야. 파일로는 남기겠지만, 네 기억 속에서는 트라우마가 희석되고 결국엔 사라지도록." (p.119)

[ 네이버카페 책과콩나무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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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정진영 지음 / 무블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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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소재로 하는 스토리들과 사뭇 다른, 13년 전 세상을 떠난 엄마를 AI로 다시 만나기까지 아들의 심리를 촘촘하게 그려낸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는 전직 기자 출신 원작자의 현장감 있는 기자 이야기로 호평을 받았던 황정민과 윤아 주연의 JTBC 드라마 허쉬의 원작자 정진영 작가의 신작 소설이다. 허쉬의 원작 침묵 주의보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후속작 젠가와 다시, 밸런타인데이를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번 책 또한 기대감을 품고 읽기 시작한다. 뭐랄까, 세련된 문체라기보다는 살짝 투박한 느낌의 문체가 빠른 속도감으로 부담감 없이 읽힌다.

고되고 팍팍한 현실을 핑계 삼아 도망치듯 본가를 나와 기나긴 고시생으로 생활 끝에 오래된 연인과의 이별을 잊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로 지금껏 비켜간 행운을 한꺼번에 잡아챈 것처럼 첫 장편소설로 1억 원의 상금과 함께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 주인공 범우. 화려한 데뷔가 무색할 정도로 이후의 작품 활동은 쉽지 않다. 마치 한여름 밤의 신기루 같은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아지지 않는 고된 삶이 이어진다.

가난에 지쳐 선택한 대필 작가로의 삶은 그럭저럭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하지만 작가로서의 자괴감에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간으로서의 생계와 작가로서의 자존감 사이에서 갈등하며 대필을 이어가던 중 전략적 이미지 변화가 필요했던 HT 나재필 회장의 자서전을 대필하게 되고, 그로 인해 범우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자서전 대필의 인연을 귀하게 여긴 HT 나재필 회장은 대필 작가로의 암울한 삶을 살던 범우에게 홍보실 영입을 제안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입사서류 제출을 위해 신체검사를 받던 중 범우는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게 된다. 삶을 포기하고 싶던 범우는 13년 전 투신자살한 엄마를 떠올리고, 외로운 생을 살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엄마를 따뜻하게 보듬지 못한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 떠나는 모습이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자살을 꿈꾸지만,,,

"입관 전에 마주한 어머니의 얼굴은 마치 다른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어머니의 이마에 손을 대자 음습한 냉기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숨이 막혔다. 너무나도 폭력적인 이별 방식이었다." (p.37)

마치 긴 꿈에서 깨어나듯 미수에 그친 자살에서 벗어나고 HT 나재필 회장은 대장암 환자인 범우에게 인공지능 연구실의 책임연구원을 제안하며 다시 한번 기회를 선물한다. 자신보다 어렸던 나이에 세상을 등진 엄마가 이끈 것처럼 잃어버린 아들을 모델로 만들어낸 인공지능 아이 은총과 대화를 나누는 경선을 만나게 되고 범우는 마지막 숙제를 풀어내듯 어머니의 흔적을 쫓는다. 지금껏 원망하기만 했던, 자신보다 어렸던 엄마를 이해하고 비로소 이별할 수 있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엄마로 태어난 엄마는 없어요.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엄마는 처음엔 미숙해요. 엄마를 연습할 시간이 없었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미숙한 엄마라도 자식을 원망하지는 않아요. 범우씨 어머니도 마찬가지셨을 거예요. 제 생각은 그래요." (p.101)

벼랑 끝으로 내몰린 대장암 4기의 대필 작가 범우가 엄마와 비로소 제대로 된 이별을 끝내고 새로운 인생을 앞두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무심코 보아 넘긴 목차가 끝으로부터 시작해 시작으로 끝난다. 그가 헤쳐나가야 할 고난이 결코 가볍지 않겠지만 멋진 시작을 기원해 본다.

"살아보니까 미워하는 감정이 남아 있으면 이별해도 이별한 게 아니더라. 이별한 이유를 몰라도 제대로 이별한 게 아니고." (중략) "만남만큼 중요한 게 이별이야. 이별을 소홀히 하지마." (p.268)

나보다 어렸던 엄마... 엄마라는 이유로 포기한 그녀의 꿈과 삶을 이해하려고조차 하지 않은 보통의 자식이었던 범우가 엄마의 흔적을 쫓으며 어린 엄마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진정으로 이별할 수 있는 마음이 되기까지의 여정이 먹먹하다. 나 또한 엄마에게 무조건적인 희생만을 요구하며, 엄마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거의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리 엄마의 어릴 적 꿈이 뭐였는지, 엄마는 어떻게 살고 싶었는지,,, 내 아이들에게는 끊임없이 묻고 있는 사소한 궁금증을 엄마에게는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철없음이...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 시간이다.

"저는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어요. 어머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렸을 때 무엇을 꿈꿨는지, 어떻게 아버지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했는지, 그리고 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정 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제가 어머니를 미워했던 이유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이었어요. 모르니까 용감했던 거죠."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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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의 기억, 시네마 명언 1000 - 영화로 보는 인문학 여행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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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극장을 찾지 못하지만, 때때로 남편과 영화관 데이트를 즐겨 하는 하는 편이다. 무리하게 일정을 만들지 않아도, 멀리 가지 않아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는 짧은 시간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에 좋은 활동이다. 로맨틱 코미디를 선호하지만 공포영화 이외의 장르는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원작 소설을 찾아 읽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스크린으로 흘러간 영상을 떠올리며 촘촘하게 구성된 원작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새 영화 속 주인공인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아무튼 영화와 소설은 심심하고 지루한 나의 일상에 단비 같은 존재들이다.

무려 200편의 영화에서 선별된 주옥같은 명대사 1,000개로 구성된 '스크린의 기억, 시네마 명언 1000' 찬찬히 읽다 보니, 자전거를 타고 달을 향해 떠오르던 ET를 비롯해 최근 소녀들을 열광하게 했던 겨울 왕국까지... 지금의 극장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 당시 - 허름한 재개봉관에 비해 - 위풍당당했던 시내 중심가의 피카디리 극장에서부터 요즘의 멀티플렉스 영화관까지 섭렵하고 다니던 시간이 꿈처럼 스쳐간다. 팝콘과 콜라를 마시며 영화를 보던 시절로 얼른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꿈과 자유를 찾아주는 명대사를 시작으로 내 안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명대사까지 모두 8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파트는 다시 25편의 영화로, 각각의 영화에서 선별된 5가지의 명대사로 구성되어 있다. 때문에 꼭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지 않고 목차 중 끌리는 영화의 페이지를 찾아 명대사를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 시절 학생들의 폭발적인 호응과 한목소리로 존 키팅 쌤의 카르페 디엠을 외치게 했던 '죽은 시인의 사회' 요즘처럼 SNS가 활발한 시절이었다면 모든 여고생들의 프사가 '카르페 디엠'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카르페 디엠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 말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감독 피터 위어, 1989)
카르페 디엠. 매 순간 즐기며 살아라. 너희만의 특별한 삶을 살아라.
Carpe Diem. Seize the day.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오롯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팝콘과 함께 홀연히 사라져 버린 감동적인 장면과 명대사를 떠올리려고 기억을 헤집곤 했다. 다행스럽게도 곧바로 기억이 나거나 웹서핑으로 한 줄을 찾기도 했지만 입안에서 뱅뱅 돌면서 생각이 안 날 때는 한동안 답답해하곤 했었는데, 200편의 영화 속 대사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책이라니 상당히 괜찮다. 감동도 감동이지만 - 사악하지만 - 왠지 잘난척하고 싶을 때 한 줄씩 척척 꺼내 써보면 어떨까 싶다.

라라랜드(감독 데이미언 셔젤, 2016)
꿈이란 그런 거야! 갈등하고, 타협하고, 그리고 아주 신나게 하지!
This is the dream! It's conflict and it's compromise, and it's very, very exciting!

다만, 명대사라 하면 영화 속에서도 따로 떼어놔도 본연의 감동이 필요하다는 좁은 편견으로 보자면 한편의 영화에서 5가지의 명대사를 추려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지,,, 프란시스 하를 보지 않은 나는 왜 이 문장이 명대사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하는 '27살이면 늙었지' , 영화를 보긴 했지만 명대사라 하기엔 살짝 아쉬운 아메리칸 뷰티의 '나도 한때는 앞길이 구만 리였지' 등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굳이 포함시키지 않아도(?)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문장이 간혹 눈에 띈다. 200편 1,000개의 명문장에게 구속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구성도 의미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아주 살짝 든다.

이미 봤던 영화의 추억과 명대사에 끌려 보고 싶은 영화의 기대감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첫 장부터 끝장까지 완독도 좋겠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찾거나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한 편 한 편의 영화를 찾듯 대사를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스크린의기억_시네마명언1000#김태현#리텍콘텐츠#서평#명대사#200개영화_1000개의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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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타 1~2 세트 - 전2권 사람 3부작
d몬 지음 / 푸른숲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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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기심으로 멸망을 맞은 지구. 마지막 남은 인간 에리타와 그녀를 지키는 인공지능 가온 그리고 인간의 정신을 가진 기계인간 김가온. d몬 작가의 사람3부작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에리타는 멸망한 지구에서 인간의 정의를 찾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라 하겠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과학기술의 발달은 이미 인간 보다 더 인간 같은 기계문명을 속속 등장시키고 있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미 오래전 인류는 그들에게 주도권을 내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바둑계 최고라 여겨지는 이세돌 9단의 수 조차 인공지능 알파고를 이길 수 없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 되었고, 챗봇의 상담은 같은 사람과의 상담보다 편안하고 정확한 상담 시스템이 되어 인간 보다 더 인간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압박한다.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인간을 닮은 그들에게 잠식되어 간다.


스스로의 힘을 과신하며 돈에 눈이 먼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포루딘'으로 인해 지구는 멸망에 이른다. 인류를 구원할 것 같았던 포루딘은 재앙이 되어 욕심으로 채워진 인간 세계를 점령하고, 포루딘이 만들어낸 돌연변이 이외에는 어떤 생명체도 지구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불의의 사고를 겪은 딸 - 마지막 인류 - 을 지키기 위해 에드먼이 만든 쉘터에 살고 있는 에리타와 그녀를 지키는 인공지능 가온 그리고 전쟁터에서 사지를 잃고 살아남아 움직이기 위해 기꺼이 프로그램된 기계의 삶을 선택한 김가온만이 위태롭게 지구에 머물고 있다. 그들보다 더 나은 선택을 했으리라 믿음을 가진 누군가에게 끊임없는 구조요청을 보내며...


자신의 정체를 알게된 에리타의 선택과 에리타의 선택을 존중하는 인공지능 가온. 그들은 결국 프로그래밍된 결과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새로운 날들을 만들어 간다. 형태로서의 인간이 아닌 에리타와 김, 가온은 진정한 인간이 되고, 가족이 되어 서로를 지켜낸다. 서로를 자신 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랑으로 끝까지 지켜낸 희망으로 미래를 만들어 간다. '사람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는 사람일까, 아닐까'에서 출발한 에리타는 프로그래밍에 의한 선택이 아닌,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주도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서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한다.


이 책에서 인간에서 로봇이 되어버린 김가온과 에리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 가온의 이름으로 쓰인 '가온'은 중간의 가운데라는 의미와 온도를 더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온전하게 인간 일수도 기계 일수도 없는 그들의 중간적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d몬 작가는 이들의 선택이 기계가 아닌 사람이 되어 서로에게 온기를 더하는 가온(加溫)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싶다.


#에리타 #d몬 #푸른숲 #몽실북클럽 #몽실서평단 #경계 #선택 #웹툰원작 #사람3부작_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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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
고요한 지음 / &(앤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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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잔을 들고 살짝 비뚤어진(?) 미소를 짓고 있는 백발의 뉴요커 할머니의 세 번째 결혼 이야기를 담은 고요한 작가의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 나이 많은 할머니와 젊은 남자의 가벼운 연애담을 예상하고 책을 펴들었던 나에게 예기치 못한 반전을 선사한다.

뉴욕의 도도한 할머니 마거릿이 달콤한 와인에 취하듯 했던 첫 번째 결혼은 사랑해 마지않던 남편의 배신으로 끝나고, 총 맞은 것처럼 영혼의 끌림으로 했던 두 번째 결혼은 사별로 아픔을 남겼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결혼은 달콤한 와인도, 총 맞은 것 같은 영혼의 끌림도 아닌 서로의 필요에 의한 거래에 의한 결혼이였다...

"이 책에서 이 부분이 가장 좋아요. '결혼이란 막다른 골목길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겠다는 결심일 수밖에 없다. 나도 이제 그 정도는 아는 것 같다. 운명을 시험 하지 말고 완전히 무시해 버려라.' 이 구절을 읽고 나서 마거릿에게 프러포즈를 결심했죠." (p.85)

하늘 아래 가장 자유로울 것 같은 도시 뉴욕. 그러나 그곳은 선택 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철저하게 양분한다. 백인과 유색인종, 부자와 가난한 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온 장인수. 취업사기로 말미암아 어긋난 출발을 하게 된 그는 급기야 불법체류자로 내몰린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듯 살아내고 있다. 자존심을 버리고 살기위해 외로운 이들을 안아주는 스너글러로 살고 있는 그에게 화려한 꿈의 도시 뉴욕은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 수시로 찾아드는 경찰의 사이렌 소리로 점철된 악몽이 되어간다. 지독한 악몽을 벗어나기 위해 그는 조금의 후회도 없이 장인수도 장도 데이비드도 아닌 다른 이가 되기를 선택 한다.

"내 생각엔 나이가 중요한 것 같진않아. 여긴 뉴욕이잖아. 나이도 필요 없고 국적도 필요 없고 인종도 필요 없는 뉴욕이 잖아." (p.63)

폴로의 산책을 핑계 삼아서라도 젊은 데이비드의 온기를 느끼고 싶은 고독한 할머니 마거릿과 참을 수 없는 노년의 냄새와 고독을 참고서라도 불법체류자의 삶을 벗어나고 싶은 데이비드. 그들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주변의 반대를 무릎쓰고 마거릿의 세 번째 결혼을 감행한다. 외롭지 않은 죽음을 위해, 쫓기지 않는 뉴요커의 삶을 위해... 사랑 따위는 필요하지 않은 줄 알았다.

"젊었을 땐 밤이 낭만적이었지만 늙으니까 두려워. 죽음의 전조단계 같아. 밤을 걸어가면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그러니 잠이 올 턱이 있나. 밤을 지내고 나면 또 하루를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p.168)

영주권을 얻고자 하는 데이비드의 사악한 목적으로 마거릿의 세 번째 결혼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고독힌 죽음을 두려워한 마거릿의 계획으로 데이비드가 끌려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마거릿은 시작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이 바뀌었어요. 밤에 누워 있으면 내가 죽어 있는 것만 같았어요. 그럴때면 살아있다는 게 너무 외로웠어요.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아서······. 유령이 되어가는 것만 같아서······" (p.92)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빈부도 가리지 않고 그저 체온만을 나눠주는 스너글러 - 물론,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지만 - 는 생면부지의 사람의 온기라도 끌어안고 싶은 뉴요커들의 외로움을 대변하고 있지 않나 싶다. 비단 뉴요커들만 타인의 온기를 그리워 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가려진 오늘날의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가벼움을 기대하고 시작한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도시가 삭막해질수록 사람들은 외로워지고 고독해진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노래방에 가고, 혼자 여행을 가고, 혼자 잠을 자고, 그리고 혼자 죽어간다." (p.6)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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