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
고요한 지음 / &(앤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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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잔을 들고 살짝 비뚤어진(?) 미소를 짓고 있는 백발의 뉴요커 할머니의 세 번째 결혼 이야기를 담은 고요한 작가의 '결혼은 세 번쯤 하는 게 좋아'... 나이 많은 할머니와 젊은 남자의 가벼운 연애담을 예상하고 책을 펴들었던 나에게 예기치 못한 반전을 선사한다.

뉴욕의 도도한 할머니 마거릿이 달콤한 와인에 취하듯 했던 첫 번째 결혼은 사랑해 마지않던 남편의 배신으로 끝나고, 총 맞은 것처럼 영혼의 끌림으로 했던 두 번째 결혼은 사별로 아픔을 남겼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결혼은 달콤한 와인도, 총 맞은 것 같은 영혼의 끌림도 아닌 서로의 필요에 의한 거래에 의한 결혼이였다...

"이 책에서 이 부분이 가장 좋아요. '결혼이란 막다른 골목길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겠다는 결심일 수밖에 없다. 나도 이제 그 정도는 아는 것 같다. 운명을 시험 하지 말고 완전히 무시해 버려라.' 이 구절을 읽고 나서 마거릿에게 프러포즈를 결심했죠." (p.85)

하늘 아래 가장 자유로울 것 같은 도시 뉴욕. 그러나 그곳은 선택 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철저하게 양분한다. 백인과 유색인종, 부자와 가난한 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온 장인수. 취업사기로 말미암아 어긋난 출발을 하게 된 그는 급기야 불법체류자로 내몰린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듯 살아내고 있다. 자존심을 버리고 살기위해 외로운 이들을 안아주는 스너글러로 살고 있는 그에게 화려한 꿈의 도시 뉴욕은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 수시로 찾아드는 경찰의 사이렌 소리로 점철된 악몽이 되어간다. 지독한 악몽을 벗어나기 위해 그는 조금의 후회도 없이 장인수도 장도 데이비드도 아닌 다른 이가 되기를 선택 한다.

"내 생각엔 나이가 중요한 것 같진않아. 여긴 뉴욕이잖아. 나이도 필요 없고 국적도 필요 없고 인종도 필요 없는 뉴욕이 잖아." (p.63)

폴로의 산책을 핑계 삼아서라도 젊은 데이비드의 온기를 느끼고 싶은 고독한 할머니 마거릿과 참을 수 없는 노년의 냄새와 고독을 참고서라도 불법체류자의 삶을 벗어나고 싶은 데이비드. 그들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주변의 반대를 무릎쓰고 마거릿의 세 번째 결혼을 감행한다. 외롭지 않은 죽음을 위해, 쫓기지 않는 뉴요커의 삶을 위해... 사랑 따위는 필요하지 않은 줄 알았다.

"젊었을 땐 밤이 낭만적이었지만 늙으니까 두려워. 죽음의 전조단계 같아. 밤을 걸어가면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그러니 잠이 올 턱이 있나. 밤을 지내고 나면 또 하루를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p.168)

영주권을 얻고자 하는 데이비드의 사악한 목적으로 마거릿의 세 번째 결혼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고독힌 죽음을 두려워한 마거릿의 계획으로 데이비드가 끌려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마거릿은 시작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이 바뀌었어요. 밤에 누워 있으면 내가 죽어 있는 것만 같았어요. 그럴때면 살아있다는 게 너무 외로웠어요.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아서······. 유령이 되어가는 것만 같아서······" (p.92)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빈부도 가리지 않고 그저 체온만을 나눠주는 스너글러 - 물론, 한국 정서에는 맞지 않지만 - 는 생면부지의 사람의 온기라도 끌어안고 싶은 뉴요커들의 외로움을 대변하고 있지 않나 싶다. 비단 뉴요커들만 타인의 온기를 그리워 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가려진 오늘날의 외로움을 이야기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가벼움을 기대하고 시작한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도시가 삭막해질수록 사람들은 외로워지고 고독해진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고, 혼자 노래방에 가고, 혼자 여행을 가고, 혼자 잠을 자고, 그리고 혼자 죽어간다." (p.6)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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