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의 아이
시게마쓰 기요시 지음, 권일영 옮김 / 크로스로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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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생명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나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인지,,, 타인에 의해 언제라도 나의 생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인지... 어떤 상황이 나에게 더 많은 두려움을 안길 것인가... 인체에 치명적인 독을 이용해 동급생 9명의 삶을 한 순간에 앗아간 괴물같은 아이 우에다 유타로가 돌아왔다.

동급생의 제거를 자랑스럽게 알리듯 붉은 색의 X가 새겨진 교복을 입은 아이의 모습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아사히가오카라는 한적한 뉴타운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우에다는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댁에 보관되어 있던 바키라를 손에 넣게 되고 특별한 이유없이 같은 반 아이들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이제 곧 많은 학생이 죽을 겁니다. 모두 목요일의 아이입니다.” 우에다와 같은 반 친구들은 급식으로 제공된 스프를 먹고 9명이 생명을 잃고, 21명이 중태에 빠져 병원에 실려간다. 그러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우에다는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실명과 얼굴이 공개되지 않은 채 소년원에 수감되고,,, 7년이 지난 지금 우에다의 출소 소식과 함께 아사히가오카는 다시금 목요일의 공포에 휘말린다. 한편,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으로 쉽지 않은 생활을 하며 엄마와 단둘이 살던 하루히코는 엄마의 재혼과 함께 평온한 생활을 기대하며 아사히가오카로 이사한다. 단 하나 엄마의 행복만을 바라는 착한아이 하루히코에게 세상은 잔인하기만 하다.

"시미즈 씨가 소중하게 여기는 하루히코는 세계의 끝의 마지막에 이를 수 있을까요? 혹시 세계의 끝의 마지막 직전에 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을 지켜볼 수도 있을까요? 죽으면 성자예요. 살아남으면 신이죠." (p.396)​

7년전 평화로운 아사히가오카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사라진 우에다와 하루히코가 닮았다는 이유로 엄마의 행복만을 바라던 하루히코에게 인간의 삶을 가벼이 여기는 우에다의 검은 손길이 뻗쳐오고, 하루히코는 평범한 중학생이 아닌 본심을 알 수 없는 모습을 한 채 점점 더 수령으로 빠져든다..

내가 죽이고 싶은 누군가를 누가 대신 처형해 준다면,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나를 죽이고 싶다면,,, 우에다를 신격화한 아이들은 그를 중심으로 ‘세계의 끝’에 도달하기 위한 범죄를 이어간다. 스스로의 목숨을 담보로 내놓는 일 조차 서슴없다. 우에다의 헛된 망상에 휘둘리는 이들에게 ‘목숨’은 그저 유희에 불과할 뿐이다. 하루히코의 새아버지가 된 시미즈는 과연 그에게 행복한 세계를 돌려줄 수 있을 것인가,,, 우에다 일당과 그에게서 아들을 구하고 진짜 가족이 되고 싶은 아버지의 숨막히는 전쟁이 이어진다. ​

"쓰러질 수는 없다. 도망칠 수도 없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다. 나는 이제 사건 당사자가 되었다. 7년 뒤의 러시안룰렛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p.203)​

9명의 독살하는 것으로 시작한 우에다의 첫 범죄도 가볍지 않았으나, 하루히코를 비롯한 주변의 아이들을 포섭하고 자신을 신격화 시키며 범죄를 확장시켜 간다.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은 인간의 심리를 평범하지 않은 사람의 그릇된 행동을 매개로 상상 그 이상의 공포와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목요일의아이#시게마쓰기요시#권일영#크로스로드#미스터리소설#파격미스터리#몽실북클럽#몽실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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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멍때리기
웁쓰양 지음 / 살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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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기 대회는 2014년 예술가 웁쓰양에 의해 개최되기 시작한 대회다. 여기서 멍 때리기는 아무런 생각 없이 넋을 놓고 있는 상태를 뜻하며, 대회의 규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대회 참가자들은 심박측정기를 지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야 한다. 대회가 진행되는 3시간 동안 참가자들은 ▷휴대전화 확인 ▷졸거나 잠자기 ▷시간 확인 ▷잡담 나누기 ▷주최 측 음료 외의 음식물 섭취(껌 씹기 제외) ▷노래 부르기 또는 춤추기 ▷독서 ▷웃음 등이 금지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멍 때리기 대회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멍 때리기는 시간 낭비가 아니다. 그저 커피값 정도의 작은 사치일 뿐." (p.130)

책을 받고 포장을 풀면서, 책의 앞면이 아닌 뒷면을 먼저 보고 - 농담이다 - 다소 선정(?) 적으로 늘씬하게 보이는 다리에 우선 감탄 한번 날려주고 뒤집으니~ 뒷면의 늘씬한 다리의 주인공은 고양이에게 얼굴을 내어준 채 무아지경으로 늘어져 있다. 아놔~ 의도하진 않았지만 웃픈 전경에 책을 쫘악~ 펼치며 웃음 한번 날려주고 진정한 멍 때리기의 모습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구나 하며 책을 읽기 시작한다.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멍 때리기'에 대한 아름다운 해석,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해석이다. 예술가 웁쓰양의 '내일은 멍 때리기'에 대한 나의 한 줄 평이다. 대부분 야단맞을 때나 열공모드에 있어야 할 때 '멍 때리다' 혼나는 일이 빈번했으니 나에게 '멍 때리기'는 주로 바보 같은 나의 행동을 지적당할 때 듣던 말이었으니 '나를 위한 커피값 정도의 작은 사치 '로 해석되는 웁쓰양의 멍 때리기 해석이 반갑기까지 하다.

"'다 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는 거네. 나 말고 다 바빠 보이니까 괜히 더 불안한 거였어. 그래서 쉬면서도 늘 마음이 편치 않았던 거야. 아주 잠시라도 모두가 다 멈춰 쉴 수는 없을까? 내가 한번 그렇게 해봐야지.' 카페에서 멍 때리며 앉아 있다가 나도 모르게 수첩에 이렇게 끼적였다." (p.192)

웁쓰양이 20살이 될 때까지 굳게 의지했던 외계인이라는 믿음. 극한의 사춘기를 겪을 때 내가 외계인이라는 생각보다는 엄마가 외계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차라리 스스로를 외계인이라 믿으며 떠날 날을 기다리는 일이 외계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지구인 코스프레보다는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만화 같은 생각을 해본다.

요즘도 종종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면 입을 꾹 닫아 버리곤 한다. 갈등을 풀기위해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스스로 풀릴 때까지 또는 상대방이 먼저 양해를 구할 때까지 생각을 밖으로 들어내지 않는다. 화가 났음을 상대방과 다름을 온몸으로 뿜어내면서 나만의 세계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세상과 단절하는 방법을 택한다. 잘못된 방법인 것을 알지만 고치기 어렵다. 고집스럽게 택한 세상과의 단절은 상처받고 싶지 않은 소심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갈등이 생기면 입을 닫아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상대가 답답해 죽을 지경이 되어도 입을 꾹 닫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저 눈으로만 상대의 질문에 대답했다. 머릿속에서는 얼마든지 날카롭고잔인한 대답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남들에게는 그저 정적을 유지하고 싶은 고집 센 사람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갈등의 한복판에서 얼마든지 이야기를 시궁창으로 밀어넣을 수 있는 낯설고 날카로운 내 목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었다." (p.82)

아들들의 사춘기 시절, 잠시 외계로 놀러 갔던 아들이 외유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끼리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멍 때리며 혼나던 그 시절에 나 또한 지구 탈출을 꿈꾸던 외계인이었었나 보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바쁘게 살아낸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 일어날 것처럼 조금의 쉼도 허락하지 않는 일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닌 살아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웁쓰양의 작은 위로가 잠시만이라도 내 몸의 장기가 되어버린 핸드폰을 내려놓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수면의 늪이 아닌 평온함 속에서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평화를 기대하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쫓기듯 바쁜 삶에 사로 잡혀 이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용기가 되어버린 나에게 작지만 행복해질 수 있는 용기를 내어보라고 어깨를 두드린다. '멍 때려도 괜찮은 시간' 나에게 주는 선물같은 시간을 말이다. 웁쓰양의 거침없는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듯한 문체가 편안함을 주는 글이다. 돌아오는 주말 나에게 짧지만 긴 멍 때리기 시간을 선물해야겠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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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행복의 시간, 3분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조영주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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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고 그나 나다‘ 두개인 듯 하나인, 하나인 듯 두개인 미스터리 시점이 할러윈 데이를 배경으로 서울과 홍콩을 오가며 펼쳐지는 건가요~ 몽실북스 K미스터리 조영주작가님 신작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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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대세이 - 7090 사이에 껴 버린 80세대 젊은 꼰대, 낀대를 위한 에세이
김정훈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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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대갈등의 정점을 이루던 90년대말 사회생활을 시작한 70대생 X세대다. 우리세대는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변되는 한마디로 외계인 같은 New Generation이었다.  그럼에도  90년대 MZ 세대를 만난 70년대 X세대들은 꼰대와 낀대의 그 어디쯤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급발진은 교통사고에만 있는 게 아니다. 소통에도 있다. 얌전히 길을 걷고 있는 보행자에게 달려드는 자동차처럼, 관계를 유지하는데도 급발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개팅을 하고 나서 하루 만에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오허세 님처럼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며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p.238)
 
이런 줄 알았는데,,, 80년대 후배들의 눈에 우리는 완전 꼰대였나보다. 7090 사이에 껴 버린 80년대 젊은 꼰대의 이야기를 담은 ‘낀대세이’를 읽으면 완전 좌절하고야 만다. 아직은 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기성세대로 취급될 만큼 늙어버렸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 대체 언제 이렇게 늙어 버린걸까...  ㅜㅜ
 
사실 중간관리자가 되고 난 이후 신입들의 나이가 급격하게 어려진 탓에 그들과 나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해 그져, 마음을 내려놓고 도 닦듯이 남은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그들보다는 나와 가깝다고 생각하던 직속 후배 (80년대생)들에게도 세대갈등을 유발하는 꼰대로 느껴진다니... 세상이 모두 내 맘같지는 않은가 보다.
 
70년대생 X세대는 공중전화가 당연히 자리잡고 있던 그 시절 혜성처럼 등장한 신문물이었던 삐삐와 시티폰을 사용한 신세대 였고, 작은 USB만도 못한 메모리룰 가진 컴퓨터를 신주단지 모시듯 영접한 세대이자 – 나처럼 결혼이 살짝 이른 경우에는 -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외계인 같은 MZ세대의 부모다.
 
이런 내가 80년대생들의 애환(?)을 담은 낀대세이를 읽으면서  ‘어머머! 이랬었구나!’를 여러번 상기하게 된다. 스스로 낀세대라 여기는 80년대 후배님들은 내가 어설픈 매스게임으로 동원되었던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  – 88 올림픽에 굴렁쇠 소년이 7살이었으니 당연히 80년대 생이었겠군 - 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국민학교가 아닌 초등학교를 다닌 세대다. 소소한 사실들을 하나씩 되짚다 보니 결코 만만치 않은 70년대와 80년대 사이의 벽을 알아차리게 된다.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시간은 70년대생과 80년대생을 가르고, 80년대생과 90년대생을 가른다.  스마트폰에서 더 이상 진척이 없는 나 - 70년대생 - 의 디지털 라이프와 달리 80년대생 후배님들은 90년대생 MZ세대들의 놀이터인 메타버스를 숙명처럼 받아들여야하니 그들의 멀고먼 여정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메타버스 제페토 아바타를 만들어야하나하는 고민을 하지만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아마도 80년대생들과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
 
Cool함은 개나 줘버리고, 사람은 그저 적당한 관계 속에서 살아야한다고 여기는 X세대 – 나도 처음엔 회식도 싫고 팀장님이 나의 주말을 묻는 것도 싫었다 – 와 So Cool로 무장한 MZ세대 사이에서 적정온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고갈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하지만 우리에겐 지옥보다 전쟁터의 괴로움이 더 와닿는다. 지옥은 판타지지만 전쟁터는 현실 다큐멘터리니까. 지옥에선 영혼만 힘들겠지만 전쟁터는 육체와 정신 모두 지치게 하니까." (p.38)

70년대생 꼰대가 아니어도, 80년대생 낀대가 아니어도, 세대를 넘어 겪을 수 있는 인간관계 속의 모습들에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준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모두는 신세대로 등장해 낀대가 되었다가 꼰대로 퇴장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구리 올챙이였던 시절을 새까맣게 잊어버리듯 신세대를 탓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Cool함을 장착한 동지가 되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을 품어본다.

[ 네이버카페 소담북스 꼼꼼평가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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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생활기록부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나혁진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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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생활기록부는 연일 n번방 사건으로 시끄러울 즈음 몽실북스 신간으로 읽었던 ‘상처’를 통해 처음 만난 나혁진 작가의 신작이다. 편집자에서 작가로 변신한 이력을 소유한 나혁진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문학적이면서 재미있는 책으로 추리소설 꼽았다. 그래서일까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나혁진 작가의 소설은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묵직한 메시지와는 별개로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작가님 중 한 분이 되었다.

 

유령생활기록부 또한 인생을 대충대충 살다가 연쇄살인범의 피해자가 되어 갑자기 유령으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있는 주인공 허영풍의 유령생활기를 묵직하지만 맛깔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자고로 유령이라 함은 살아생전 원한이나 미련이 남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한 맺힌 귀신들을 이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은 바른 생활이라기보다는 원한과 미련을 떨쳐내기 위한 만행에 가까울 터이니 ‘유령으로서의 생활을 기록한다’라는 표현이 맞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색다른 유령을 만나겠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한다.

 

일정한 직업도 없이 사설 스포츠토토의 한방을 노리며 폐인처럼 살고 있는 영풍은 마지막 남은 돈을 사설 복권에 쏟아 넣었지만, 노력 없이 요행을 바라는 그에게 꿈같은 행운은 멀기만 하다. 안 그래도 어수선한 집구석에 담배꽁초가 가득 든 재떨이를 집어던지는 것으로 화풀이를 하지만,,, 재떨이를 집어던질 때만 해도 구제불능의 폐인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허수아비의 얼굴이 있는 곳에 내 얼굴이 겹쳐져 있었고, 꺼병하게 크기만 한 허수아비의 눈에서 홀러내리는 빗물은 꼭 허수아비가 흘리는 눈물처럼 보였다. 그리고 허수아비의 눈 뒤에 있는 내 눈에서 흘리는 눈물처럼 보였다. 비가 그칠 때까지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p.149)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사설 스포츠 복권이 어긋난 화풀이를 아주 조금 했을 뿐인데, 죽은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유령이 되어버렸다. 왜 유령이 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은 기본이고 막연하게 상상하던 기본적인 능력이 없는 건 옵션이다. 졸지에 팔자에도 없었던 유령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저 그런 외로운 유령 생활을 이어가던 영풍은 살아생전 미련이 남아있던 지인들을 찾기 시작한다. 영풍의 불성실함으로 말미암아 이별하게 된 전 여자친구를 찾아 유령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녀의 행복을 찾아주기도 하고, 우연히 만난 친구의 불운을 목도하기도 한다.

 

짧은 인생 그와 이어졌던 세상의 인연이 하나 둘 사라지고,,, 홀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운 영풍은 스스로의 삶을 뒤돌아 보고, 비록 스스로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령이 되었지만 영풍은 자신의 짧은 인생을 반추하며 진정한 어른이 되어간다. 노오력으로 모든 걸 이룰 수 없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형편에 맞춰진 일상을 살아내야하는 오늘 날의 청춘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어야하는 성적표처럼,,,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주던 생활기록부의 한자락처럼 말이다. 전작 상처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툭 던져주고 사라지는 이야기였다.

"바로 그 이유가 나를 유령으로 만들었다.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죽음을 피하지 않았다. 어쩌면 해방감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레인 킬러가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절망에서 나를 구원해줄 구세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중략)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레인 킬러라는 걸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깨달았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피하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하거나 발버둥을 치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여기서 죽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던 거야. 어쩌면 제발 나를 죽여주기를, 삶의 고통을 여기서 끝내주기를 간절히 빌었는지도 모르지.'" (p.350)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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