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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생활기록부 ㅣ 케이 미스터리 k_mystery
나혁진 지음 / 몽실북스 / 2021년 11월
평점 :
유령생활기록부는 연일 n번방 사건으로 시끄러울 즈음 몽실북스 신간으로 읽었던 ‘상처’를 통해 처음 만난 나혁진 작가의 신작이다. 편집자에서 작가로 변신한 이력을 소유한 나혁진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문학적이면서 재미있는 책으로 추리소설 꼽았다. 그래서일까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나혁진 작가의 소설은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묵직한 메시지와는 별개로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작가님 중 한 분이 되었다.
유령생활기록부 또한 인생을 대충대충 살다가 연쇄살인범의 피해자가 되어 갑자기 유령으로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있는 주인공 허영풍의 유령생활기를 묵직하지만 맛깔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자고로 유령이라 함은 살아생전 원한이나 미련이 남아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한 맺힌 귀신들을 이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활은 바른 생활이라기보다는 원한과 미련을 떨쳐내기 위한 만행에 가까울 터이니 ‘유령으로서의 생활을 기록한다’라는 표현이 맞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색다른 유령을 만나겠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한다.
일정한 직업도 없이 사설 스포츠토토의 한방을 노리며 폐인처럼 살고 있는 영풍은 마지막 남은 돈을 사설 복권에 쏟아 넣었지만, 노력 없이 요행을 바라는 그에게 꿈같은 행운은 멀기만 하다. 안 그래도 어수선한 집구석에 담배꽁초가 가득 든 재떨이를 집어던지는 것으로 화풀이를 하지만,,, 재떨이를 집어던질 때만 해도 구제불능의 폐인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허수아비의 얼굴이 있는 곳에 내 얼굴이 겹쳐져 있었고, 꺼병하게 크기만 한 허수아비의 눈에서 홀러내리는 빗물은 꼭 허수아비가 흘리는 눈물처럼 보였다. 그리고 허수아비의 눈 뒤에 있는 내 눈에서 흘리는 눈물처럼 보였다. 비가 그칠 때까지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p.149)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사설 스포츠 복권이 어긋난 화풀이를 아주 조금 했을 뿐인데, 죽은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유령이 되어버렸다. 왜 유령이 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은 기본이고 막연하게 상상하던 기본적인 능력이 없는 건 옵션이다. 졸지에 팔자에도 없었던 유령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저 그런 외로운 유령 생활을 이어가던 영풍은 살아생전 미련이 남아있던 지인들을 찾기 시작한다. 영풍의 불성실함으로 말미암아 이별하게 된 전 여자친구를 찾아 유령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녀의 행복을 찾아주기도 하고, 우연히 만난 친구의 불운을 목도하기도 한다.
짧은 인생 그와 이어졌던 세상의 인연이 하나 둘 사라지고,,, 홀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운 영풍은 스스로의 삶을 뒤돌아 보고, 비록 스스로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령이 되었지만 영풍은 자신의 짧은 인생을 반추하며 진정한 어른이 되어간다. 노오력으로 모든 걸 이룰 수 없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형편에 맞춰진 일상을 살아내야하는 오늘 날의 청춘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어야하는 성적표처럼,,,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주던 생활기록부의 한자락처럼 말이다. 전작 상처보다는 가볍게 읽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툭 던져주고 사라지는 이야기였다.
"바로 그 이유가 나를 유령으로 만들었다.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죽음을 피하지 않았다. 어쩌면 해방감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레인 킬러가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절망에서 나를 구원해줄 구세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중략)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레인 킬러라는 걸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깨달았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피하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하거나 발버둥을 치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여기서 죽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던 거야. 어쩌면 제발 나를 죽여주기를, 삶의 고통을 여기서 끝내주기를 간절히 빌었는지도 모르지.'" (p.350)
[ 네이버카페 몽실북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