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멍때리기
웁쓰양 지음 / 살림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멍 때리기 대회는 2014년 예술가 웁쓰양에 의해 개최되기 시작한 대회다. 여기서 멍 때리기는 아무런 생각 없이 넋을 놓고 있는 상태를 뜻하며, 대회의 규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대회 참가자들은 심박측정기를 지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야 한다. 대회가 진행되는 3시간 동안 참가자들은 ▷휴대전화 확인 ▷졸거나 잠자기 ▷시간 확인 ▷잡담 나누기 ▷주최 측 음료 외의 음식물 섭취(껌 씹기 제외) ▷노래 부르기 또는 춤추기 ▷독서 ▷웃음 등이 금지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멍 때리기 대회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멍 때리기는 시간 낭비가 아니다. 그저 커피값 정도의 작은 사치일 뿐." (p.130)

책을 받고 포장을 풀면서, 책의 앞면이 아닌 뒷면을 먼저 보고 - 농담이다 - 다소 선정(?) 적으로 늘씬하게 보이는 다리에 우선 감탄 한번 날려주고 뒤집으니~ 뒷면의 늘씬한 다리의 주인공은 고양이에게 얼굴을 내어준 채 무아지경으로 늘어져 있다. 아놔~ 의도하진 않았지만 웃픈 전경에 책을 쫘악~ 펼치며 웃음 한번 날려주고 진정한 멍 때리기의 모습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구나 하며 책을 읽기 시작한다.

긍정적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멍 때리기'에 대한 아름다운 해석,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해석이다. 예술가 웁쓰양의 '내일은 멍 때리기'에 대한 나의 한 줄 평이다. 대부분 야단맞을 때나 열공모드에 있어야 할 때 '멍 때리다' 혼나는 일이 빈번했으니 나에게 '멍 때리기'는 주로 바보 같은 나의 행동을 지적당할 때 듣던 말이었으니 '나를 위한 커피값 정도의 작은 사치 '로 해석되는 웁쓰양의 멍 때리기 해석이 반갑기까지 하다.

"'다 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되는 거네. 나 말고 다 바빠 보이니까 괜히 더 불안한 거였어. 그래서 쉬면서도 늘 마음이 편치 않았던 거야. 아주 잠시라도 모두가 다 멈춰 쉴 수는 없을까? 내가 한번 그렇게 해봐야지.' 카페에서 멍 때리며 앉아 있다가 나도 모르게 수첩에 이렇게 끼적였다." (p.192)

웁쓰양이 20살이 될 때까지 굳게 의지했던 외계인이라는 믿음. 극한의 사춘기를 겪을 때 내가 외계인이라는 생각보다는 엄마가 외계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차라리 스스로를 외계인이라 믿으며 떠날 날을 기다리는 일이 외계인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지구인 코스프레보다는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만화 같은 생각을 해본다.

요즘도 종종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면 입을 꾹 닫아 버리곤 한다. 갈등을 풀기위해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스스로 풀릴 때까지 또는 상대방이 먼저 양해를 구할 때까지 생각을 밖으로 들어내지 않는다. 화가 났음을 상대방과 다름을 온몸으로 뿜어내면서 나만의 세계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세상과 단절하는 방법을 택한다. 잘못된 방법인 것을 알지만 고치기 어렵다. 고집스럽게 택한 세상과의 단절은 상처받고 싶지 않은 소심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갈등이 생기면 입을 닫아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상대가 답답해 죽을 지경이 되어도 입을 꾹 닫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저 눈으로만 상대의 질문에 대답했다. 머릿속에서는 얼마든지 날카롭고잔인한 대답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남들에게는 그저 정적을 유지하고 싶은 고집 센 사람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갈등의 한복판에서 얼마든지 이야기를 시궁창으로 밀어넣을 수 있는 낯설고 날카로운 내 목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었다." (p.82)

아들들의 사춘기 시절, 잠시 외계로 놀러 갔던 아들이 외유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끼리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멍 때리며 혼나던 그 시절에 나 또한 지구 탈출을 꿈꾸던 외계인이었었나 보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바쁘게 살아낸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 일어날 것처럼 조금의 쉼도 허락하지 않는 일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아닌 살아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웁쓰양의 작은 위로가 잠시만이라도 내 몸의 장기가 되어버린 핸드폰을 내려놓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수면의 늪이 아닌 평온함 속에서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평화를 기대하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쫓기듯 바쁜 삶에 사로 잡혀 이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용기가 되어버린 나에게 작지만 행복해질 수 있는 용기를 내어보라고 어깨를 두드린다. '멍 때려도 괜찮은 시간' 나에게 주는 선물같은 시간을 말이다. 웁쓰양의 거침없는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듯한 문체가 편안함을 주는 글이다. 돌아오는 주말 나에게 짧지만 긴 멍 때리기 시간을 선물해야겠다.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

#내일은멍때리기, #웁쓰양, #살림,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멍때리기대회, #평화, #나를위한딴짓의시간, #딴짓, #그래도괜찮아, #쉬어도괜찮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