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어찌나 절묘하게 역사의 빈 칸을 채워넣었던지 읽으면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흡입력 때문에 하마터면 깜빡 이게 논픽션 이라고 생각할 뻔 했다.

강조해두지만, 픽션이다.

까딱 잘못하면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착각하고 싶을 만큼 역사적 인물을 굉장히 생생하게 그려낸다. 유명한 수학자들을 마치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이다. 동시에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우리가 거의 진리와 동일시하는 과학, 수학. 그러나 사실 이들도 많은 오류와 수정을 거쳐 변화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리와 이들을 동일시해서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을까?

언젠가 잘 아는 컴퓨터 공학자이자 수학자와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때도 느꼈지만 묘하게 종교인이 신을 대하는 태도와 수학 과학 전문가들이 주류로 인정되는 이론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하게 보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인공지능로봇 개발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고 (우리 인간이 과학과 수학으로 세계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다면) 많은 소설가들이 그려내는 매트릭스 같은 디스토피아는 절대 생겨날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이야기 였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런 얘길 한다는 게 주된 바탕이기도 했다). 내가 물었다. 나도 데이터 저널리스트라 수학을 무서워하거나 하는 타입도 아니고, 기술 개발 반대자 뭐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느 과목보다 역사를 좋아하던 이로써 문득 떠오른 질문이 있어서였다. ˝그 로봇을 프로그램화 하는 것도, 그 개발의 바탕이 되는 이론들도 다 인간이 만든 것이고, 인간은 이제까지 어쨌든 한 두 가지 실수를 하기 마련이었는데... 과연 정말로 인공지능로봇 개발도 완벽히 안전할 거라 장담할 수 있을까요?˝

돌아온 답은 이랬다. 수학과 과학은 답이 정해져 있어서 틀릴 수가 없다고. 과연 그런가? 이 책은 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게 만드는 책이 몇 없는데 이 책은 그런 희귀한 책 중 하나였다. 종이책이 가지고 싶어졌다.




밤의 정원사는 레몬나무가 어떻게 죽는지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늙은 나무는 만일 벌목되지 않거나 가뭄, 질병, 무수한 해충, 균류, 역병의 공격에서 살아남으면 열매를 너무많이 맺는 바람에 쓰러진다고 한다. - P198

나무는 사뭇 다른 생명체이며 이런 과숙의 과시는 식물보다는 인류의 마구잡이식 파괴적 성장과 더 가까워 보인다. 내 레몬나무를 얼마나 살려두어야겠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베어서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이지, 누가 그러고 싶겠는가? - P199

이 책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허구다. 뒤로 갈수록 허구의 비중이 커진다. 프러시안블루」에는 허구적 부분이 한 군데밖에 없는 반면에 뒤에서는 더 자유분방하게 쓰되 각 작품에서 다루는 과학 개념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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