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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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죽였던 검은 길고양이가 생각났다. 녀석이 죽으면서 똥을 싸는 바람에 어찌나 놀랐던지. 녀석에게 더욱 혐오감이 들어 죽이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지금 내 옆에 있는 브래드 다겟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분수에 맞는 죽음을 맞이했다. 어쩌면 분에 넘치는 죽음일 수도 있다. 이제 그는 죽었고 따라서 누구도 해칠 수 없지만, 내겐 역겨운 시신을 처리하는 일이 남았다. - P821

"이런 희귀종 같으니." 한때 아빠는 날 그렇게 불렀는데 지금 내 기분이 딱 그랬다. 생생하게살아 있고, 생생하게 혼자인 기분. 이 순간 내 유일한 동반자는 어린 나, 쳇을 우물에 밀어 넣은 아이뿐이었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고 우린 서로 말할 필요도 없었다.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의미였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여러모로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표현이었다. - P829

테드에게 시체를 숨기는 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나는 글자 그대로 시체를 숨기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방법은 시체의 진실을 감춰서 실제와 다른 일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 P846

부모님의 말도 안 되는 이 동거가 잘 유지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떨어져 지내는 동안 두 분은 서로에게 점점 더 의미 없는 존재가 되었고, 덕분에 함께 살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 상처를 줄 정도의 애정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 P895

나는 어제 아빠가 했던 말을 생각했다. 그저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말. 어쩌면 나도 그걸 내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할지 모른다. 쳇을 죽인 후에도, 런던에서 에릭을 죽인 후에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에 내가 한 짓을후회하지는 않는다. 미란다와 에릭은 둘 다 내게 상처를 줬다. 쳇은 그러려고 했고, 브래드는직접 상처를 주진 않았지만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 아마도 테드 스버슨을 내 인생에 들여놓은 게 실수였을 것이다. 난 지난 몇 주간 엄청난 위험을 감수했고, 다행히도 무사히 빠져나왔다. 하지만 이젠 끝났다. 완전히 앞으로는 조용히 살면서 다시는 누구도 내게 상처를 입히지못하게 할 것이다. 나는 계속 생존할 것이다. - P897

내가 특별한 사람이고, 남과 다른 도덕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깨달음이었다.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동물, 소나 여우, 올빼미의 도덕성을 - P898

내가 한 짓을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껴서가 아니다. 난 후회하지도,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내가 저지른 살인마다 이유가, 그것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렇게 가슴이 아픈 까닭은 외로움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내가 아는 사실을 공유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외로움. - P929

‘죽어 마땅한‘과 ‘죽여 마땅한‘의 차이는 무엇일까? ‘deserve to die‘가 아닌, 이 책의 원제에도 나오는 ‘worth killing‘은 살인자로서의 정체성과 능동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누군가의죽음을 보고 죽어도 싸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직접 살인을 실행하리라는 의지, 주인공 릴리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 P997

이 세상에는 생명이 너무 많다, 그러니 누군가 권력이나 사랑을 남용한다면 그 사람은 죽여마땅하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는 여자. 릴리는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처럼 추리소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희대의 여성 사이코패스다. 그럼에도 우리가 릴리를 응원하게 되는 이유는 그녀가 살인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고, 우리 마음속에도 죽여 마땅한 사람이 하나쯤 있기 때문이다. 릴리는 우리의 그런 내밀하고 어두운 욕망을 대신 실행하는 인물이다. - P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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