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모모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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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에 쓰인 작품인 만큼 군데군데 거슬리는 서술이 있지만….. 일단 완독.

연약한 새에게 눈길을 기울이는 상냥함과 어둠 속에서 발톱을 세우는 고양이의 공격성을 아끼는 심리는 전혀 모순이 아니라고 린타로는 생각했다. 17세 소녀의 내면에는 그 두 가지가 어엿이 공존할 수 있다.

아무리 남의 괴로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친절한 사람이라도 동정에는 한도가 있기 마련이라고. 니시무라가 내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내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 아닐까요.

"처음부터 그리 말씀하셨으면 얼마나 좋아요." 데니스 호퍼가 말했다. 이 남자는 게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니 그제야 공중전화박스가 어깨에서 손을 뗐다.

내가 작정했다면 내 인맥을 이용해 자네 아버지에게 압력을 가할 수도 있었지. 허나 그러지 않고 자네와 직접 대면하는 쪽을 택한 이유는 서로 간에 신뢰를 쌓아두고 싶어서였네. 불시에 허를 찔러서 압력을 가하는 건 매스컴이나 하는 방식이니까." 신음소리를 토한 후 덧붙였다. "……어쨌든 매스컴의 장단에 놀아나지 않길 바라네."
"이 사건과 관련된 취재 신청은 모두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게 가장 현명하지. 무엇보다 나는 매스컴이란 족속을 절대 믿지 않네. 그놈들은 기생충이랑 똑같아. 자기 손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니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참나. 평소라면 자네 같은 작자는 말도 못 붙이는 거물이야. 잘도 뻔뻔한 소리를 지껄이더군."
"그런가요." 린타로도 지지 않고 말했다. "일본 낭만파는 전전戰前 천황제 파시즘의 온상에서 형성된 사상 아닌가요. 맨정신으로 그런 말을 내뱉는 인물에게 국정을 맡겨놓았다니 일본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정말로 처음 읽으면 이 수기의 내용은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어. 그게 당연한 반응이고 니시무라 씨의 목적도 그랬어. 우리는 죽음을 각오한 사람의 말은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리는 데다가, 자신의 살인을 숨김없이 고백하는 인간이 설마 이면에 다른 살인을 은닉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지.

가장 교묘한 거짓은 진실의 가면을 쓴 거짓말이야.

유지의 눈에는 어린 요리코가 아내를 차 앞으로 끌어당긴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까요. 유지에게는,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의 몸을 그렇게 만들고 탄생을 기다리던 8개월 된 아들을 죽인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요리코였던 거예요……."

"잘도 그런 짓을 저질렀군요." 요시오카 의사가 말했다. "당신이 배신할 줄이야. 인명을 뭘로 보는 거요? 우리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소. 절대 용서할 수 없소."

"남편분은 죽기 직전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첫 번째는 요리코를 위해 죽었고, 두 번째는 당신을 위해 죽는다, 라고요."
"남편은 자신을 위해 죽은 거예요."
마치 승자라도 된 듯 거만한 말투라 린타로는 온몸에 긴장이 서렸다.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반신불수의 여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만족감에 몸을 내맡긴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회로를 통해 그녀의 내면이 끊임없이 충전되는 듯한 기운마저 풍겼다.
그렇다, 당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순간 린타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당신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당신은 요리코가 임신했다는 걸 분명 알고 있었다. 남편이 딸을 죽이고 말았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이 당신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아낌없이 버리리라는 사실도 분명 알고 있었다.
당신은 알고 있었다. 모든 걸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 그리고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당신은 이가라시라는 이름도 기억하고 있었다. 남편이 딸을 미워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5월 밤에 아버지와 딸 사이에 벌어진 일도 알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의 남편이 모리무라 다에코와 관계를 가지려 했다는 사실도 분명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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