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이 세상을 단 한 순간도 감당 못하겠어.
그럼 아가, 다른 걸 만들려무나.

아이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 형제. 미노타우로스에게 손을 내밀던 아리아드네와 그녀의 목에 남아 있었다는 흉터가 생각났다.
"나도 형제가 있다." 내가 말했다. "내가 그들의 권력을 차지하면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아느냐?"
우리는 아이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예전과 똑같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신과 공포, 신과 공포.

다행이었다. 나는 그가 화를 내길 바랐다. 그래야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컸다.

제 아버지가 원래 그런 분은 아니었다고. 유모는 계속 이 말만 반복하더군요. 그러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하는 듯이.

나와 같이 살던 시절에는 내가 마법과 신의 광휘로 그를 감싸고 이 모든 걸 가라앉혔다. 그가 여기서 그렇게 행복하게 지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목가, 나는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을 그렇게 표현했다. 어쩌면 환상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렸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음모를 꾸미고 버럭 화를 내거나 말거나 제가 그걸 지켜보고 있을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어머니가 하루종일 치즈 한 조각으로 연명하고 눈이 침침해지도록 길쌈만 하거나 말거나 그 역시 지켜보고 있을 필요가 없었고요."

"저를 동정하시는군요. 그러지 마십시오. 아버지가 여러 거짓말을 했지만 저더러 겁쟁이라고 하신 건 맞는 말이었으니까요. 아버지가 몇 년 동안 하인들에게 분통을 터뜨리고 때리고, 어머니에게 고함을 지르고, 우리집을 잿더미로 만들도록 내버려둔 게 저였습니다. 아버지가 구혼자들을 죽일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시기에 도와드렸습니다. 그다음에는 그들에게 동조한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시기에 또 도와드렸고요. 그러자 아버지는 저더러 그들과 한 번이라도 동침한 하녀들을 모아서 피로 흠뻑 젖은 바닥을 청소하게 했고, 청소가 끝나자 그들 역시 죽이라고 하셨죠."

고모가 밤하늘을 가로질렀지만 이제 그쪽은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건 연인들을 감상하는 일이었고 나는 한참 동안 누구의 연인이었던 적이 없었다. 어쩌면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오디세우스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돼지우리를 채웠을까? 그가 나에게 돼지에 대해 물었던 그날 저녁이 생각났다. "얘기해주세요," 그가 말했다. "벌을 받아 마땅한 남자인지 그렇지 않은 남자인지는 어떤 식으로 결정하십니까? 이 심장은 썩었고 다른 심장은 괜찮다는 걸 무슨 수로 확신하십니까? 잘못 판단했으면 어쩌고요?"

"나는 모두를 변신시킨다." 내가 말했다. "그들 쪽에서 내 집을 찾아왔지 않느냐. 내가 왜 그들의 마음속을 신경써야 하느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잔을 들었다. "당신과 저는 생각이 같군요."

그는 아이가 둘이었지만 그 어느 쪽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기 아이를 제대로 아는 부모는 애초에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보면 우리가 저지른 실수만 거울처럼 비쳐 보일 뿐이다.

누가 이 세상의 모든 아들을 놓고 그중에서 오디세우스의 아들을 골라보라고 했다면 나는 그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이 그를 무너뜨린 게 아니었습니다. 그를 좀더 그답게 만들었을 뿐.

그녀는 세상을 잃느니 거기에 불을 질러버리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얗게 소멸되는 것이 나의 가장 오랜 공포였다. 공포의 전율이 나를 관통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긋지긋했다. 마침내 지긋지긋했다.

그는 줄이 하나뿐인 하프였고, 낼 줄 아는 음이라고는 자기 자신뿐이었다.

"저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는데요. 그냥 제 마음대로 살 테니까 앞으로 자식을 꼽을 때 저는 빼주세요."

저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고 제 아버지도 아닙니다. 제가 아테나와 조금도 엮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왜 몰라주십니까.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나를 믿었다.

그녀는 사라졌다, 영영. 몇백 년 만에 처음으로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이 파도처럼 나를 후려치지 않았다. 앞으로는 내 이름의 낙인을 찍고 저승으로 들어가는 영혼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결과가 어찌되든 너에게 진실을 밝히고 싶어서."

"저는 지금까지 당신을 다그치지 않았죠." 그가 말했다.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당신에게는 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는 걸 아니까요. 하지만?" 그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이것만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당신이 이집트에 간다면, 다른 어디든 간다면 저도 동행하고 싶다는 걸요."

그렇게 불행한 운명을 짊어진 채 무슨 수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약초가 있는 곳으로 간다. 뭔가를 만들고 뭔가를 바꾼다. 내 마법은 그 어느 때 못지않게,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이것도 행운이다. 이 정도의 능력과 여유와 방어를 갖춘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텔레마코스가 자다 말고 일어나 나를 찾아온다. 내 손을 잡고 풋풋한 냄새가 나는 어둠 속에 나란히 앉는다. 이제는 세월의 흔적으로 우리 둘 다 얼굴에 주름살이 생겼다.
키르케, 그가 말한다. 괜찮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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