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프라는 단어에서 우리 미래의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 언어로 님프라는 말에는 그냥 여신만이 아니라 신부라는 뜻도 담겨 있었다.
남자라면 신이건 인간이건 어떻게든 자기 핏줄을 남기려고 안간힘을 썼고, 아버지의 보물창고는 이미 으뜸 신과도 맞먹을 정도였다. 그는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했다. "적당한 배필을 만날 거야." 그가 말했다. "얼마나 적당한 배필을요?" 어머니는 알고 싶어했다. 나를 좀더 나은 상대와 맞바꿀 수 있다면 위로가 될지도 몰랐다.
"이리 와요." 그녀가 말했다. "우리 좀더 괜찮은 아이를 만들어요."
아버지는 자신이 없는 세상을 절대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없는 동안 나는 뭐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영광이 극에 달했을 때 인간이 아버지를 보면 어떻게 돼요?" 내가 물었다. "단박에 타서 재만 남을 거다." "인간이 저를 보면요?" 아버지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체커 말이 움직이며 내는, 대리석이 나무에 쓸리는 그 익숙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재수가 좋은 하루라고 생각하겠지."
그 시절의 내가 그랬다. 줄곧 거기에서 벗어날 기회를 엿보았다고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그 무지근한 고통이 전부라고 믿으며 마지막까지 그냥 부유浮游했던 것 같다.
대담한 짓을 저지른다고 해서 속까지 대담한 건 아니구나.
"모든 신이 똑같을 필요는 없어." 그가 말했다.
내가 없다는 걸 알아주는 이가 있길 바랐지만 아무도 몰랐다. 어느 누구도 나는 안중에 없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돌멩이였다. 수천 곱하기 수천의 어린 님프 가운데 한 명일 뿐이었다.
내 인생 자체가 뿌연 심연이었지만 내가 그 어두컴컴한 바다의 일부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안에 사는 생명체였다.
나는 그들과 달랐다. 다르다고? 낮고 우렁찬 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생각을 해야 한다, 키르케. 그들이라면 어떻게 하지 않겠는지.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거야, 키르케. 나는 아버지에게 마법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얘기하고, 아버지는 내 말을 믿는 척하고, 제우스는 아버지의 말을 믿는 척하고, 그렇게 세상은 균형을 유지하지. 실토한 누나가 잘못했어. 왜 그랬는지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야." 그렇다,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채찍질을 당했을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내가 그들과 보냈던 그 오랜 시간은 연못에 던져진 돌멩이와 같았다. 벌써부터 물결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게 내 유배의 조건이었다. 철저하게 혼자 지내는 것. 다른 누군가를 박탈하는 것보다 더 심한 형벌이 어디 있겠느냐고, 우리 가족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여태껏 나는 실이 없는 직녀, 바다가 없는 배였다. 그런데 보라, 이제는 어딜 항해하고 있는지.
이제는 그림자가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림자가 보인다는 건 아버지의 시선이 하늘에서 사라지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찾아왔다는 뜻이었다. 아무도 없는 것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아무도 용기가 없나? 어느 누구도 감히 나를 상대하지 못하겠단 것인가?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닥칠 일들을 나름대로 열심히 기다렸던 셈이다.
공포와 경외라면, 하늘을 쳐다보며 무슨 허락이 내려질지 궁금해하는 거라면 지긋지긋한 마음도 있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건, 아마 그들도 몰라서 그랬을 거야.
나는 엎질러진 물을 두고 우는 여자일까 아니면 심장이 돌로 이루어진 매정한 여자일까? 중간은 없었다. 그 두 개가 아닌 다른 반응은 그가 좋아하는 재미난 이야기에 들어맞지 않았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냈다. 누가 물으면 행복하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잊지 않았다. 내 이름이 찍힌 싸늘한 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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