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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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펼친 순간부터 내 눈을 수도꼭지로 만들어놓고 마지막 장 덮을 때는 잔잔하게 웃게 만드는 신기한 책이다.
폴의 아내 루시가 책 마지막에 썼듯이, ˝폴에게 일어난 일은 비극이지만, 폴은 비극이 아니었다.˝

˝죽음˝
과연 30대 한창 정신없이 달리고 있던 사람이 스스로의 여명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게 되면 그 심정이 어떨까.
책의 첫 장에는 자신의 폐 사진을 보고 스스로의 앞날을 안 폴의 그 심경이 생생하다.

그도 분명 하루하루 살아내는 게 바빴을 텐데.
몇 년 후에 이루고 싶은 일을 위해서 끊임없이 달리고 있었을텐데.
미래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위해서 지금 힘든 걸 이 악물고 참아내려면 그 미래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교통사고로 죽는 30대 40대가 몇 퍼센트, 그런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은연 중에 믿는 거다. 10년, 20년 후에도 내 삶이 이어지고 있을 거라고.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생기면 죽을 수도 있지, 가볍게 말할 수야 있다.
그러나 당장 삶의 계획에서 이미 10년, 20년 후를 바라보는 태도가 드러난다.
폴은 ˝3개월이 남았으면 가족이랑 보내고, 1년이 남았으면 책을 쓰고, 10년이 남았으면 신경과학을 연구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너무 당연하게 10년 후의 나를 생각하며 지금 할 일을 정한다.

아버지가 서른 둘의 나에게 ˝너 이제 적은 나이 아니다˝ 하실 때마다 그 말에 어이없어 했다.
아직 내 스스로가 한 번도 젊지 않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서른 둘의 내겐 아직 삶이 너무나 친숙하고 죽음이 막연하다.

36살, 신경외과 레지던트 마지막 해를 살던 폴이 폐암 선고를 받은 나이다. 나랑 몇 살 차이도 안 난다.

그도 분명히 젊은 나이였다.
의사로 타인이 생사의 기로에 선 모습을 무수히 봐온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아직 미성숙한 나이다.

그러나 폴은 스스로가 3개월을 살지, 1년을 살지, 10년을 살지 확답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고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간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거야(I can‘t go on. I‘ll go on)˝ 라는 사뮈엘 베케트의 말과 함께.

이 책은 그가 그렇게 계속 나아가는 흔적이다.
죽음에 발목 잡혀놓고 그래도 결국 걸어나가는 그의 발자국이다.

그 발자국을 따라 마지막 페이지까지 놓을 수가 없었다.
읽다보니 그의 기백에 압도되어서 눈물이 나지 않았다. 첫 몇 페이지 넘기고는 분명 울고 있었는데.

죽음 앞에서 끝까지 삶의 의미를 찾아 행동했던 사람.
그런 사람이 남긴 흔적이라서 내가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웃을 수 있었던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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