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군대를 버린 나라 -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평화 이야기
아다치 리키야 지음, 설배환 옮김 / 검둥소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강정의 저항을 바라보고 있자면 언제나 바라보게 되는 알력의 공식이 있다. 저항의 앞에는 언제나 방패와 보호구로 무장한 경찰력이 서 있고 그 뒤에는 해군과 자본이 위치하는 모습이다. 저항하는 이들과 경찰은 언제나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힘과 권력의 크기도 순서대로 증가하여 가장 힘이 센 사람들은 경찰이라는 공권력의 뒤에 선 이들이다. 경찰이 얼굴을 마주하는 이들은 항상 저항하는 이들이고, 등을 보이는 사람들은 언제나 권력자라는 사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쪽의 누가 부당한가에 상관없이 변함이 없었다.
그 모습이 꼭 강정에서만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4년전의 촛불에서도 경찰은 언제나 저항자들과 얼굴을 마주했다. 가장 약한 이들이 최전방에 서서, 등 뒤에는 조금 더 힘을 가진 상급자나 간부를 두고 있었고 최종적으로는 저항자들의 성토의 대상이었던 최종권력자들을 두고 있었다. 싸움은 그렇게 경찰이라는 공권력과 저항자들 사이의 모습일 뿐이었다. 그 모습은 이제껏 변함없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쌍용차에서 김진숙의 부산 영도에서 유성에서 전북고속에서..
또다른 공권력인 군대역시 마주하는 이는 '적으로 간주된 국외의 세력'이거나 때로는 '체제에 저항하는 내부자'였다. 가장 최전방에는 가장 힘없는 이들이 소총과 수류탄을 꼭 쥐고 사라질지도 모를 자신의 목숨에 두려워하고 있고 그런 그들의 등 뒤에는 상급자들과 권력자들이 서 있었다. 고인이 되신 리영희 선생님의 625와 베트남전쟁의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면 내외적으로 구성된 공권력은 과연 그들의 표면적인 정당한 의미를 실천하고 있을까? 더글러스 러미스가 언급한 사실, 지난 100년간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수는 세계적으로 2억명 정도인데 그 중 절반이 넘는 1억 3천만명은 자국민이었다는 통계는 공권력은 그렇게 정당한 폭력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있게 증명해준다. 우리가 알고 있던 총칼과 제복의 모습은 결국엔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쉽게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적어도, 우리보다는 힘을 가진 권력과 자본에 더욱 가깝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일종의 폭력이라 규정할 수 있는 공권력은 결국 어떠한 형태로든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 그 자체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공권력이 없는 국가, 사회는 상상하기 어렵다. 어찌되었든간에 군대와 경찰이 존재함으로서 유지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 익숙해졌기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국가간의 관계에서 사회내부적인 현상속에서 그들의 역할은 분명 존재하기에 그들의 부재는 쉽게 상상하기도 이해하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인 것일까? 많은 고민과 생각을 이어가면 갈수록 그들을 부정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입장에서도 그것은 쉽게 말할 수 없고 풀 수 없는 난제였다.
군대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가 내가 가진 난제에 대한 답이 되어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호기심에 충만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집어드는 순간부터 알 수 없는 두근거림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은 약간의 막연함과 불안감이 든다. 지리적 위치와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부담을 가지고 있기도 하거니와 군대없는 민주자립적인 중립국이라는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능수능란한 외교력과 분명한 정세파악력을 요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또다른 긴장감이기 때문이다. 내부적 긴장도 만만치 않은 나라에서 군사력을 포기하고 세계적인 민주정의 표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정말 높이 살만하고 교훈적이지만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존하는 불안감은 평화와 공존에 대한 완전한 답을 주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남겨준다.
하지만 폭력을 배제하고 스스로의 자립적인 민주주의를 위해 내부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 부럽고 높이 살만하다. 평화를 하나의 안정적인 상태로 규정하지 않고 어떠한 상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시스템과 사람들의 의식에 온전히 녹아있어야 한다는 생각, 선거는 단순한 표를 행사하는 일이 아닌 모든 이들의 축제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민주주의의 진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제시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선거는 특정나이 이상의 어른들만 추구하는 것이 아닌, 청소년들도 함께 행사하고 참여하는 축제이자, 아주 어린아이들의 모의투표결과까지 정치에 반영하는 성실함은 정말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학교는 민주주의와 평화가 무엇인지를 실천과 토론을 통해 스스로 체득하게 하고, 교도소는 자유를 억압하는 곳이 아닌 인권이 무엇인지를 알게하는 장소인 나라, 이에 연관하여 환경, 발전, 경제가 그들이 공존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이루어지고 그보다도 공존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은 정말 부럽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자는 직접 코스타리카에 거주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세세히 관찰하며 이 책을 집필했다. 그러면서 시선을 긍정과 부정의 사이에서 최대한 중립을 유지하려 노력한 흔적들이 역력하지만, 그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사회문제, 국가간 역학의 문제에 있어 긍정의 모습보다 구체적이지 못했다는 사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일말의 불안감을 남겨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코스타리카의 평화와 중립은 여전히 진행중인 상황이고 수많은 난제들 속에서 끊임없는 노력은 언제나 불가피하겠지만 그들이 진정한 평화와 민주주의는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실제적 대안으로서 보여주는 모습이 좀 더 분명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들이 보여준 이상에 가까운 민주주의의 실제는 정말 감동적이다. 쉽지않은 세월에의 설득을 통해 이룩해낸 그들의 민주주의와 동시에 총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어 낸 그들의 평화가 언제까지나 온전하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내 바램은 단지 나만의 바램이 아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