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붕괴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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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섬에서 마지막 나무를 베어내던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좁은 섬에서 각 세력간의 권위다툼으로 무차별적으로 석상을 세우고 나무를 베어낼 때,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멸망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을까?  인간이라는 고등생명체의 특성이랄 수도 있는 욕망의 경쟁과 그 분위기속에 미래에 대한 모든 예측이 망각된 상황은 마지막의 나무 한그루까지 스스럼없이 베어내어 경쟁의 도구로 사용하게끔 만들었겠지만, 혹시 미래를 예견하던 사람들은 쓰러진 마지막 나무의 모습에서 무슨 말을 되뇌었을지 궁금해진다.  거대한 석상으로 상징되는 이스터 섬의 몰락은 이미 5-600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 우리는 역사적 연구와 추론을 통하여 그들의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을 뿐, 마지막 나무에 스며든 사람들의 되뇌임은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인간은 위대하지가 않았다.  아집때문에 멍청했거나 자연앞에서 한없이 연약하기만 했던 존재였다.  또는 힘의 우월함으로 서로를 지배하고 또 지배당하면서 한쪽을 완벽히 소멸시키기도 했다.  그린란드에서의 유럽인은 그들의 자존심때문에 이누이트족의 훌륭한 생존법을 배우지 않아 소멸했고, 이스터 섬이나 핏케언 섬에서는 자연의 한계와 세력간의 대립으로 결국 자멸을 초래했고 마야문명은 스페인 군대의 막강한 힘과 새로운 전염병 앞에서 한없이 연약하기만 하였다.  문명이라 이야기되는 인간의 사회는 그렇게 수많은 지리적 환경적 조건과 인위적인 요건 속에서 번성과 소멸을 반복한 역사의 흔적들이다.  마치 땅속 개미굴이 여기생겼다 사라지고 저기 생겼다 사라지듯이 말이다.   

 

  저자는 방대한 지식과 관점을 제시하며 인류의 역사 안에서 이루어졌던 문명의 번성과 소멸을 분석하고 설명한다.  저자가 설명하는 문명의 모습들은 상당히 다양하며 지리적 위치나 그에 따른 삶의 모습, 환경사회적 요건들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안에서의 그들의 모습은 시간적 차이도 있고 교류가 원활치 않던 오래된 과거의 환경에서 지협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모습은 다양할 수 밖에 없다.  그 다양성에서 추출되는 인류사의 교훈 역시 다양하다.  하지만, 폭발적인 산업화에 따른 인류문명의 발전은 이제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가능케 되었을 정도로 획일화되어가고 있고, 이제 우리는 각자의 문명이 아닌 우리가 속한 지구의 운명을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저자는, 역사적 교훈을 통한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조망하고 미래를 예측해보며 과연 우리가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자멸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를 돌아보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당장의 생존때문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마지막 나무를 베러 가는 길에 있지는 않은지, 자존심때문에 혹한의 생존기술을 거부한 그린란드의 유럽인들과 같은 모양인지, 아니면 호주의 정착자들같이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보겠다고 덤벼들다가 더 큰 문제만 만들어 악순환만 초래하고 있는 것인지 심도있는 고민과 분석을 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미래에 대한 신중한 낙관주의자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이제 한정된 환경과 지식의 소유가 아닌 폭넓고 치밀하고 분석적인 지식의 동물이 되어있기에 과거의 실수를 쉽사리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이다.  그리고 실수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낙관은 우리에게 늦둥이로 불릴만한 50이 넘어서의 출산을 결정했을 정도이다.  나는 물론 저자의 낙관에 많은 부분을 동의하지는 않지만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분석과 관점은 세상의 역사적 흐름에 따른 미래의 모습을 다시금 살펴보게 만들어 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마냥의 비관, 당장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식의 부정적 사고는 옳지 않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클라이브 폰팅이 쓴 녹색세계사를 떠올렸다.  이스터섬의 비극은 이 책의 내용과 일치하지만 제래드 다이아몬드의 분석과 설명이 좀 더 깊고 체계적이다.  녹색세계사는 환경론의 입장에서 지구의 역사적 흐름과 이에 따른 미래의 위기를 이야기하여 사뭇 부정적인 느낌도 들게 하지만, 이 책은 인류사적, 지리학적, 환경적, 사회론적 등등의 다양한 시각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의 탄탄한 구성을 바탕으로 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한다.  따라서 환경론적인 미래의 고민에 체계를 덧붙여 고민과 성찰을 좀 더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다양하지만 저마다의 목소리가 단편적이고 그래서 제각각인 고민과 지식의 세상에서 이런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을 제공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저자가 펴내는 책들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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