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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우주 - 우리가 알고 싶은 우주에 대한 모든 것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06년 3월
평점 :
숫자를 가지고 고민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꽤나 골치아픈 일이었다. 흥미로운 동기없이 입시를 위해 파고들었던 수학과의 안타까운 첫만남때문이었겠지만 골치가 아프면서도 나름 이해를 해 나가는 과정에의 재미는 조금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결국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 내가 만난 숫자들은 그저 기계적 해를 위한 문제들이었지 그 의미를 완전히 파악했던 것은 아닌 듯 하다. 수학을 넘어 만났던 대학물리는 좀 더 이질적이었다. 물리적 현상을 숫자의 공식으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그닥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론상으로는 맞을 지 모르나 현실에서 보이는 실험값의 오차들은 숫자로 현상을 설명한다는 일에 대한 불신을 더욱 깊게 만들어 주었다.
숫자의 표현이 현상과 세계를 설명한다는 것을 조금 이해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수학과 물리를 배우지 않게 된 이후였다. 나름의 인문학적 고민을 하게 된 이후로 세계를 설명하는 수많은 방법 중의 하나가 수학과 물리 화학등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 이질감으로 점철되었던 내 젊은날의 씨름, 그리고 그 허무함이여..
다시금 공부하라면 손을 절레절레 흔들겠지만 이 책을 통한 물리와의 다시만남은 정말 가볍고 재미가 있었다. 현대물리의 역사와 이론의 설명, 그리고 진행되는 연구과정을 쉽게 풀어쓴 책인데, 뉴턴부터 시작한 역사 안에서 중요시기들마다 이슈가 된 각 이론들과 공식들을 설명,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실제 현실에 사용되고 증명되었는가, 마지막으로 우주의 역사가 흐르며 인간이 생존을 유지할 수 없게 된 물리적 환경에서 우리는 다른 우주로의 탈출이나 다른 적합한 환경을 가진 행성으로의 이동 등으로 생존을 이어나갈 수 있는가를 고민해본다. 두껍지만 읽어나가기가 물흐르듯 자연스럽다. 물리현상을 이론과 이를 증명하는 공식으로 설명한다지만 이 책에는 숫자공식은 나오지 않고 내용 자체가 소설을 읽듯이 편하고 매끄럽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와 현재에서 일어난 물리학적 사건들을 재미지게 설명하여 흥미마저도 불러일으킨다.
물리학을 통한 우주의 이해는 사실 무모해보인다. 인간이 가진 몇개의 표현력으로 모습과 공간에 대한 상상조차 불가능한 우주를 이해해보겠다는 것은 장님 코끼리만지는 일보다 훨씬 무모해보이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가볍고 재밌게 이해를 해 나가다가도, 허공에 던져진 조약돌의 공허함같은 기분을 종종 느껴야만 했다. 빛의 속도로 팽창하고 수축하고 빛의 속도로 몇억년이라는 시간을 내달리고 하는 등의 그 알 수 없는 공간을, 빛도 삼켜버리는 블랙홀과 순간의 속도로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엄청난 중력의 별들이 존재한다는 무시무시한 것들을, 무한하고 암흑과도 같지만 그 공간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이해못한 우주를 일개 티끌에 불과한 지구라는 별 위에서 아주 작은 생명체에 불과한 인간이 이해를 하려한다는 것은 대단하면서도 허무하다. 동시에, 이 작은 지구위의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벌이는 수많은 일들은 우주의 상상못할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것없고 허무한 일인가.. 결정적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인간을 포함한 지구는 수많은 아귀다툼을 포함하여 한순간 사라져버릴 것을..
한가지 더 의문이 들었던 것은, 인간이 사용하는 숫자의 표현이 과연 사물의 현상을 이해하고 우주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적합한가 하는 것이다. 이전부터 머릿속에 넣고 있었던 고민이 있었는데 그것은 원주율의 이해다. 현실속에서 원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원을 표현하는 방법인 원주율은 실제숫자로는 아직도 소숫점 아래 그 끝을 알 수 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체적으로 불가능한 무한수가 실제 존재하는 사물을 표현한다는 것은 아이러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숫자로 우리는 지금 우주를 제대로 이해하고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물리를 일반인들로 하여금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닌 우리가 현실로 경험했던 것들을 포함하여 아주 쉽고 재밌게 풀어내는 능력자임이 분명하지만 읽다가 문득 한 발을 뒤로 빼고 내용을 바라본 나에게는 아주 조금의 의문을 좀 더 분명하게 만들어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