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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진실 - 갤브레이스에게 듣는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지음, 이해준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갤브레이스에 붙은 양심적 경제학자라는 말에서 나는 자본주의의 어떤 대안을 기대했던 것 같다. 마치 우리나라의 장하준이나 김상조와 같은, 미쳐 돌아가는 신자유주의 자본에 대해 착한 자본주의로 돌아설 수 있는 소소하거나 거창한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을 기대한 것이다. 책을 들었을 때, 생각외로 무척 얇은 분량을 보며, 얼마나 명쾌한 대안을 제시하였길래 이렇게 분량이 적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실 이것은 나의 갤브레이스에 대한 철저한 무지때문이다. 갤브레이스는 자본주의의 행보에 이런저런 땜빵식의 대안을 제시하는 그런 경제학자는 아니었다. 경제학의 엘리트이자 미국의 수뇌부와 학계에서 중요한 일들을 모두 경험하고 지휘하고나서 늘그막의 말년에서야 이런 분명한 에세이를 써내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얄밉고 허탈하기도 하지만, 그는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본주의는 사기라고 말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자본주의는 용어의 선택에서부터 자본의 운용까지 치밀하게도 소수의 경제권력을 거머쥔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고, 이들이 다수의 인민에게 행사하는 모든 행위는 명백한 사기이지만 현실적으로 법적인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 '처벌받지 않는 사기'라 설명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야기되는 '권력은 자본에게로 넘어갔음'과 일맥상통한다. 기업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반 소비자로 표현되는 다수 인민을 현혹하고 조종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정부의 공적영역에까지 마수를 뻗침으로서 정부의 정책까지도 옆에서 간섭하고 조종하기까지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실제로 효율성이라는 명목아래 정부가 통제해야 할 공적영역을 민영화라는 미명아래 민간기업에게 넘겨 위험한 자본의 본능아래 국가시스템의 근간까지 맡겨두려 한다. 방식이야 어찌되었든 이런 현상은 결국 자본의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국가시스템의 대부분을 포함한 인간의 삶 전반을 지배하게 만든다. 그것은 법적으로도 제지가 불가능한 방법으로 즉, 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결론적으로는 전체 인간의 삶을 파국으로 치닫게한다는 명백함때문에 '처벌받지 않는 사기'라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말년의 갤브레이스의 축적된 경험은 사기극일 뿐인 현대의 경제시스템에 대해 명백하고 명쾌한 고발과 비판을 날린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는 데 크게 어렵지 않은 내용이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소수를 위한 다수의 피해가 극심하며, 지구전체의 계 안에서 인간의 파괴행위가 극대화된다는 점에서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있고, 자본과 국가를 넘어선 대안에 대한 일말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한가지 좀 더 새롭게 받아들인 것이 있다면, 갤브레이스가 이 책에서 언급한 기업의 국방에 대한 간섭인데, 국민의 간섭이 비교적 적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국방사업에 기업이 관여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정부의 국방정책과 군수산업에 간섭과 투자를 함으로서 정부가 명분을 세운 전쟁행위에 기업의 이윤추구행위가 덧붙여진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이라크 공습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이 미국의 전쟁물자와 기업이 고용하고 훈련시킨 용병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면에서 자본의 이윤추구는 이제 인간의 생명보다도 더욱 중요한 사안이 되어가고 있으며, 이는 결국 자본주의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지구 어디에선가는 반드시 전쟁이 일어나야만 한다는 논리가 성립이 된다. 세상의 미래는 알 수 없음이 자명하지만, 그 방향은 분명 친인류적이거나 평화적인 것은 아님 역시 자명한 일이다.
갤브레이스의 마지막 저서인 이 책은 명쾌한 고발과 비판은 분명하나 아쉽게도 대안은 없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저자가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았거나 하나의 숙제로 남겨두었을 수도 있지만, 저자의 비판의 대상이 현대의 큰 기둥의 하나인 자본이라는 점에서 언급된 대안은 없지만서도 대안은 분명해보인다. 그것은 자본을 거부하는 것이다. 물론 막연하다. 개인적으로는 녹색평론을 읽으며 반자본적 대안에 대한 힌트와 접근법을 하나의 시선으로서 받아들이고 있어 자본거부라는 막연함은 조금 덜한 느낌이다. 조금 돌려 말하자면 갤브레이스는 우리에게 숙제를 하나 내 준 셈인데, 그것은 자본의 반인간성과 패악을 깨달은 사람들이라면 조금씩이라도 시작해야하는 당위가 아닐까? 이 역시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권해보는 고민의 시작은 '불필요한 편리'를 깨닫고 지양하는 일, 그리고 삶에 '실질적 필요'는 얼마만큼인가를 생각해보는 일이다. 작은 고민의 시작이지만 커다란 의미를 지닐 것이라 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