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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침이 고인다
김애란의 글은 밝고 경쾌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작인 ‘달려라 아비’의 경우 내용을 몰랐을 때는 아비가 무슨 만화영화의 주인공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비는 바로 우리의 아버지였다. 그런 점에서 ‘달려라 아비’는 통속적 관념 속에 자리 잡은 아버지의 권위와 근엄한 태도를 단박에 무너뜨리는 제목이었다. 게다가 그 내용을 보더라도 편모슬하에 자란 우울하고 슬픈 소녀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만만한 여성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부재하다는 것은 절대적 권력이나 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던 선장이 사라진 함선을 탄 것과 같다. 배는 풍랑을 만나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개척해 가야하는 나약한 인물은 그저 남들이 보기에 그럴 뿐 실상, 젊고 싱싱한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이번 작품의 경우에도 당찬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중학생들의 논술을 첨삭해 주는 학원 강사다. 당차지만 쉽지 않은 삶, 그녀는 직장까지 택시를 탈지를 고민하고 남들이 내가 일하는 것을 어떻게 볼지 걱정한다. 피곤에 지친 상태로 감기에 시달리며 시간에 쫓기지만 제도화된 사회(어쩌면 남성 중심적 사회)로 진입해 가려고 애쓰고 있다.
이 여성이 싫어하는 것은 집단적인 움직임이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그녀에게 있어서 ‘꼭짓점 댄스’는 일종의 폭력과도 같다. 그래서 그녀는 학원에서 벗어날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경제적 독립을 박탈해 버리는 일이다. 즉, 남에게 간섭받지 않고 떳떳이 살기 위해 집단적 움직임을 따르는 것이다. 그녀가 겪는 삶의 갈등은 바로 이러한 모순에서 비롯된다.
그러던 그녀의 원룸으로 후배가 찾아온다. 자신의 과거를 닮은 후배, 독립적인 삶을 원하던 그녀가 후배를 받아들인 이유를 ‘후배의 목소리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후배는 그녀의 제안에 따라 첨삭 일을 하게 된다. 장당 천 원이면 서빙보다 낫다며 뛸 듯이 좋아하면서. 드디어 그녀에게도 일종의 ‘부하’가 생긴 셈이다.
학원에 갈 때마다 패션에 관해 지적을 당하던 그녀, 여기서 패션은 박 선생이라 불리는 주인공의 관심사가 아니다. 단지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잣대일 뿐이다. 지옥 같은 그들의 시선에 불안을 느끼며 교무실 문을 여는 순간, 부장이 부른다. 부장은 바로 그녀의 ‘상관’이다. 그녀의 상관은 부하(후배)의 잘못에 대해 지적한다. 첨삭지도를 하는 과정에서 ‘예컨대’를 ‘예컨데’로 고쳐놓고, 띄어쓰기마저 틀렸다며 그녀를 나무란다. 그녀는 ‘죄송합니다.’를 반복한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생리통을 겪게 된다. 여기서 그녀는 처음으로 후배에게 짜증을 느낀다.
후배가 맨 처음 하룻밤만 묵자고 찾아온 날 그녀는 목욕물을 데워주고 먹을 것을 챙겨준다. 그것은 ‘거래’에 가까운 교환들이 이뤄지는 사회에서 후배가 일방적이고 순수한 부탁을 했기 때문이었다. 오직 손익계산으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는 사회 안에서 누군가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일방적 신뢰를 보내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것을 낯선 상황에서 갑자기 겪을 경우 사람은 머리보다는 가슴이 먼저 작동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그날 밤 그녀는 후배로부터 꿈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녀와 후배 둘이서 ‘을씨년스러운 벌판’ 위에 서서 별 구경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낭만적이면서도 유치한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리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이 도착지를 정해 놓고 가는 현실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꿈같은 이야기에 이어 후배는 자신의 아픔 상처를 드러내 보인다. 바로 어릴 적 어머니가 도서관에 자신을 버리고 갔다는 이야기였다. 도서관은 책으로 이루어졌다. 책은 곧 언어의 저장고, 언어는 이 사회 제도를 구성하는 뼈대와 같다. 앞서 낭만적인 상황과 대비되는 공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후배의 어머니는 그런 혹독한 곳에 딸을 두고 떠나면서 껌 한 통을 쥐어 준다. 쓰디쓴 기억을 단물로 지워보라는 것이었을까? 아니다. 후배가 내미는 상자 속 껌은 인삼껌이었다. 후배의 어머니는 쓴 맛이 섞인 달콤함으로 쓴 기억을 이겨내라고 했던 것이었나 보다. 놀라운 것은 후배가 그녀 앞에서 인삼껌을 반으로 잘라 그녀에게 내민 것이었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수류탄을 든 채 자살 기도를 하는 탈영병’을 보는 심정으로 그녀는 후배를 바라본다. 그녀는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모를 이야기 탓에 후배마저 허구적으로 느낄 정도다. 허구적이기 때문에, 실제성이 덜한 인물이었기에 그녀만의 공간인 원룸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 모른다.
후배를 받아들인 그녀는 학원 운동회에서 전에 없는 상쾌함을 느낀다. 후배가 어떤 이유로 활력소가 됐는지 뚜렷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집단적 움직임에 소극적이기만 했던 그녀는 약간 적극성을 띄게 되고 자기가 다니는 학원의 조직 규모에 새삼 감탄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후배라는 타인, 즉 낯설고 새로운 대상이 그녀로 하여금 그녀 주위의 것을 순간적으로 새롭게 만든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녀가 후배를 ‘안다’고 여기는 시점부터 그녀는 후배의 습관 중 부정적인 목록을 발견하게 된다. 안다는 것은 곧 진부해지고 식상해 지는 것이다. 처음 타인으로부터 받아들여지던 설렘이나 기대감보다는 주체의 관점에서 타인을 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녀가 학원에 갈 때마다 학원 선생님들이 그녀의 패션을 지적했던 것처럼 그녀는 후배의 일상을 지적한다. 변기 뚜껑을 잘 적신다든지, 화장품을 헤프게 쓴다든지, 드라이할 옷을 세탁기에 넣는다든지 하는 소소한 습관이 밉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러한 후배의 실수들을 기다리다가 발견 즉시, 환호한다. 그리고 인제 행동을 넘어 보다 원초적인 대상인 후배의 외모를 지적하게 된다. 발가락에 투박한 옹이가 있으며 그 때문에 물도 조금 마시고, 야채도 잘 안 먹는다는 이상한 논리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죄가 있어서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해서 죄가 발생하는 상황, 그녀는 자신이 당했던 것과 너무나 흡사한 방식으로 후배의 죄에 대해 판결을 내린다.
그런 것을 모르는 후배는 얄밉게도 와인 동호회에 가입을 한다. 처음 와인을 권했던 그녀보다 후배가 와인에 대해 더 잘 알아가는 것이다. 청출어람이라 기뻐할 여유가 없던 그녀는 이런 이유로 후배에게 경쟁심마저 느끼게 된다. 그녀의 그런 경쟁심은 학원에서 벌어진 운동회로 전이된다. 그래서 달리기 시합에서 수학과 선생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써 보지만 결국 2등, 그녀는 그 순간 목마름을 느낀다. 제목과 대비되는 목마름. 그녀가 후배를 받아들였던 것은 사실 목소리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일종의 우월감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우월감은 사람을 편하게 한다. 부장이라는 상관 밑에서 긴장된 생활을 하던 그녀에게 후배라는 부하는 상대적으로 편안함을 주었다. 그랬던 후배가 차츰 그녀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운동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 다양성을 주제로 한 논술을 첨삭하고 있던 후배는 더 이상 ‘예컨대’를 실수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짜고짜 후배에게 틀렸다고 화를 내면서 부장이 자신에게 했던 방식으로 꾸짖는다. 인제 같은 여자로서의 동질감마저 없다. 생리하는 후배를 유별나게 지적하면서 자기 집에서 그만 나가라고 한다.
혼자가 된 밤, 다시 자신만의 공간에서 ‘다음’을 생각하는 그녀, 드라마를 인터넷으로 전송받다가 후배가 남기고 간 인삼껌을 씹는다. 이때 그녀의 입에 침이 고인다. 침이 고인다는 것은 후배와의 교감을 상징하는 것일까. 아니면 타인이 주는 기대감, 인간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는 것일까. 울상인 듯 그렇지 않은 듯 기괴하다고 표현된 그녀의 표정처럼 모호하고 그래서 더욱 깊은 밤 같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