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당신의 추천 도서는?


<바람의 넋>이라는 제목은 우선 자유로운 느낌이 든다. 더군다나 여성작가가 썼으니 아무래도 여성 해방에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하고 짐작하며 읽으니 긴장이 되기도 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아등바등하며 자기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여성의 이미지는 투사처럼 위협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작품을 읽고 난 뒤 작가가 남성과 여성의 구도를 단순한 정과 반의 입장에 세우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성의 시각에서 볼 때 은수는 위협적이기 보다는 넋이 나간 여자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과연 그녀는 어디에서 불어와 어디로 갈지 모를 바람일 뿐일까? 이제 그녀와 그녀의 주변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부모를 잃은 은수의 행동은 위에서 언급했듯 무계획적이고 불안정하다. 작가는 표지판을 잃은 은수의 방황을 그녀 자신만의 폐쇄적시점이 아닌, 아내를 기다리는 세중의 시점과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을 교차함으로써 다소 진부한 소재가 될 수도 있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주제를 호소력 짙게 표현하고 있다. 만일 여성의 입장에서 작품이 전개되었다면 일방적이고 고집스런 이야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집 밖을 헤매는 여성의 입장에서 구차한 변명을 해야 했을 테고 어떻게든 독자를 설득시키려 애쓰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반면, 세중은 가식 없는 남성의 입장에서 객관적이고 솔직하게 자신의 불만을 표출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중은 끝내 그의 아내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남성과 여성이라는 태생적 근본의 차이 때문인지 모른다.

메를로 퐁티는 신체가 공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출현시킨다고 했다. 가족의 구성원은 집이라는 공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세중은 내 손으로 일군 가정만은 새의 보금자리처럼 포근하고, 호두껍질처럼 견실하고, 안전해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바슐라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새의 둥지는 작은 공간임에도 그 내밀함이 우주와 같다. 세중은 몸으로 벽을 밀어 둥근 공간을 만드는 수컷 새처럼 자신만의 아늑한 집을 꿈꾸었던 것이다. 자신의 체온과 살이 맞부딪혀 생성되는 공간은 단지 기하학적 수치나 재료의 성분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에게 인식되는 현상의 뼈대만으로 그것이 대상의 전부라고 파악하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고 지칠 때 쉴 수 있는 공간, 따뜻한 웃음소리와 서러운 눈물이 배인 집안의 곳곳은 이제 인간의 몸과 분리될 수 없는 일부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 상황에서 세중의 집은 호두껍질처럼 견실함을 기대하기 어려운 ‘도시의 집’이다.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손바닥처럼 빤해서 싫다고 말을 하는데 이는 그가 사는 집이 내밀한 공간, 즉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를 안에 감추고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중은 ‘화가 나거나 뭔가 마음에 차지 않을 때 들어가 숨어 있을 수 있는, 아무도 찾아내지 못할 장소’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런 공간을 만드는 데에 있어 아내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구성원에 비해 더욱 절실하다. 세중은 자신이 머무는 집에 본인 혼자가 아닌 아내를 비롯한 가족의 땀과 체온이 섞이길 기대했던 것이다. 따라서 아내의 손때와 숨결을 잃어버린 집은 더 이상 온전한 보금자리로써 존재하지 못하고 세중은 아내 역시 그 사실을 알면서 밖으로 나갔다고 믿고 있기에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세중은 은수를 원망하면서도 그녀가 집을 나간 이유에 대해 이성적으로 추리해보려고 하지만 정답을 찾지 못한다. 왜냐하면, 은수의 행동은 이성적으로 내린 판단에 의한 것이기 이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내용 중 다리가 잘린 환자가 자신의 다리가 잘린 후에도 그 부위에 마치 다리가 있는 것처럼 감각을 느끼는 ‘虛體現像’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메를로 퐁티가 몸 철학을 진척시키는 과정에 있어 주요 근거로 내세우는 요소 중 하나다. 즉, 몸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지으며 이성은 몸의 행로를 쫓아가기에 바쁘다는 말이다. 인간은 때로 본능적으로 움직일 때가 있다. 물론 이것은 신경의 단순한 반사적 반응일 수도 있고 호르몬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마음으로부터 온다. 은수는 마음이 갇혀 있기에 몸은 그 보상을 받으려고 바람처럼 헤맨다.

은수가 이처럼 ‘몸의 시대’를 체험하는 반면 세중은 아직 맹신적 이성주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근대적 인물이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이뤄진 것이 현실화되어야만 한다고 믿는 그는 아내의 충동적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처럼 세중은 삶에서 별다른 선택 사항 없이 그저 주어진 대로 걸어야 하는 대다수 한국 가장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관료적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위에서 명령을 내리면 밑에서는 그 명령에 따라 로봇처럼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때로는 그 명령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문제는 주어진 명령에 따라 얼마나 일을 반듯하게 수행해 내느냐에 달려있었다. 세중은 어쩌면 이러한 사회구조에 길들여진 탓에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나 더욱 당황하게 되는 것인지 모른다. 나름대로 이런저런 가정을 세우고 추리를 해보지만 결과에 다다라서는 역시 아내를 원망하면서 초조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가 근대적 유형의 인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도, 아내를 이해할 여력을 남겨두지 못하는 것도 아들인 승일이에 대한 걱정이 큰 몫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고 해서 자기 생활이 당장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승일이에게 있어서는 어머니의 부재가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남게 될 것이다.

글 전체 내용 안에서 승일의 시점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아이는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일 수 있다. 어린이에게 어머니가 없는 집에서 살도록 한다는 것은 가혹행위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집이라는 공간 안에 어머니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클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곧 집이고 휴식처인 것이다. 승일이는 그런 면에서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어린 새와 같다. 자기 둥지를 스스로 짓지도 못하고 언제나 어미 새가 날아와 주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그래서인지 어머니의 부재에 지친 승일은 치마가 찢어지도록 은수를 붙잡는다. 이러한 모습은 어머니의 품에 대한 아이의 절실한 심정을 드러내 주는데, 방황하는 은수에게도 아들의 품이 되어야할 어머니로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가장 큰 아픔이었을 것이다. 주부가 된 은수가 바람처럼 날아가 자신의 밑바닥을 들추어 음미해볼 시간조차 없는 이유는 바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아이 때문이다.

은수는 산에 갔다가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난 후 卽自的 과거의 세계로 빠져든다. 의식이 약화되면서 ‘불현듯 기억의 맨 밑바닥에서 물에 잠긴 사금파리 조각처럼 빛나는 최초의 기억, 튀어 오를 듯 강한 햇빛과 나뒹굴어 진 두 짝의 고무신'을 떠올리게 된다.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지워지지 않고 내면 깊숙한 곳으로 주름져 있다가 인식적 폭력을 당하는 순간 트라우마로 펼쳐지는 것이다. 뚜렷이 인식되지 않으면서 결코 쉽게 지워지지 않는 과거는 언제나 현재와 맞닿아있다. 인간은 언제나 현재라는 공간 안에서 살지만 과거라는 씨앗은 우리 몸 안에서 언제나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봉우리를 열지 않은 과거는 제 본 모습을 펼쳐 보이지 않으면서도 현재를 사는 우리를 기웃거리도록 만든다. 은수는 접혀있는 봉우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남편과 자식,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는다.

우리도 가슴에 감춰두었던 상처를 언제든 다시 꺼내어 볼 날이 있지 않을까? 마치 바람에 숨겨진 넋이 다시 숨을 쉬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숨결을 따라 정처 없이 방황하는 시간이 올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세상이 아니다. 이미 지나쳐 왔지만 놓쳐버린 삶의 흔적일 뿐이다. 잃어버린 흔적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아무도 없는 사막 위를 홀로 걸어가야만 한다. 나를 붙잡는 이들의 외침을 뒤로한 채 은수는 힘겹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과연 은수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어머니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고독과 함께 가족이 지니는 소중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은수 역시 자신의 넋을 찾게 되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돌아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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