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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조세희


조세희의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이하 내 그물)는 중심 플롯이 전개되면서 여러 삽화가 중간에 삽입되어 표현하려는 대상을 중층적으로 조각하는 특징을 지닌다. 여기서 삽화는 사건을 입체적 시각에서 조명하는데 도움을 주며 등장하는 인물의 내면을 형상화하는데 마치 몽타주와 같은 구실을 한다.

'내 그물'의 중심 플롯은 화자의 숙부를 살해한 난장이의 큰 아들이 처벌을 받게 되는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단순해 보이는 이러한 구조는 여러 삽화가 삽입되면서 복잡해져 가는데 우선 사건 자체와 관련해서 보면 범인이 살해하려던 대상은 숙부가 아니었으며 숙부는 화자의 아버지와 닮았다는 이유로 살해된 것일 뿐이다. 화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살해될 수도 있었던 상황에 대해 위협을 느끼며 아버지를 비롯한 부유층의 행동을 합리화해 보려고 하지만 화자가 나름의 논리로 내리는 판단은 일면 타당성이 있어 보이면서도 곧이어 벌어지는 반전을 통해 스스로 오류였음이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재판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화자는 노동자가 단순한 열등감 때문에 부유층을 증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지섭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것은 오히려 아버지의 노동력 착취에 대한 정당한 항변이 되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사촌과의 대화 역시 살인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드러내 준다.

화자의 인물됨을 형상화하는 삽화의 경우를 보면 먼저 화자의 할아버지를 언급할 수 있다. 할아버지는 히틀러식 사상을 지닌 인물로서 󰡐나는 언제나 옳다. 나를 믿고, 복종하고, 싸우라󰡑 라는 문구가 나타내는 것처럼 자기중심적이며 동시에 약육강식의 세계관을 신봉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상에 걸맞게 사냥을 즐기기도 했는데 화자가 죽이려고 했던 늙은 개는 젊은 시절 할아버지의 사냥도구로 사용되었다. 할아버지가 개를 도구로 사용했던 방식을 그 다음 세대인 화자의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를 상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다만, 사업의 규모가 커지고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가 더욱 잔인해지는 것이 발전(?)적인 점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곧 화자에게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부담감으로 인해 화자는 경쟁자인 형들을 두려워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그들을 증오하면서도 쫓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가족 안에 도사리고 있는 父性的 시니피앙으로써의 정신적 억압의 기제가 화자의 세상에 대한 일그러진 시각을 설명해 준다.

형과 관련된 삽화는 화자의 여성에 대한 태도 원인을 짐작하게 한다. 그는 자기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여성에 대해 미숙하면서 동시에 성급한 태도를 보이는데 이것은 형이 교통사고를 당한 사건과 관련해 자신에게도 죽음이 가까이 다가올 것 같은 불안감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화자는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해서든 자기 욕구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고 약육강식의 가족 내에서 느끼는 압박과 스트레스가 이러한 출구를 통해 배설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알몸으로 더러운 정액을 빨아들였던 계집애'와 같은 표현을 통해 알 수 있듯 형의 행동에 대해서는 증오심을 드러내는 모순된 감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러한 갈등과 모순을 통해 자본주의의 욕망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즉, 작품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물로 온 가시고기에 의해 살갗이 찢어지는 것처럼 자본주의의 욕망에 되레 찔리게 되는 부유층을 풍자하는 작가의 비판적 태도를 읽을 수 있다.

화자가 꿈에서 본 요트는 억압된 구조로부터 빠져나가려는 하나의 탈주선인지 모른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밝고 큰 소리로 떠들며 맞이할 준비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이미 세속적인 가족구조 내에서 벗어나기에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은 요트를 탈 꿈마저 버린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자신의 살점을 뜯긴 노동자가 가시고기가 되어 세상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오늘도 나는 어떤 억압에 시야를 가린 채 가시고기가 되어 가는 이웃을 외면하지는 않는지 되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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