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 김이설 소설집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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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파리채를 샀다.

마침 모기를 발견하고 채를 들이댄 순간, 퍽, 퍼퍽 불꽃이 튀었고 나는 그 진동에 한동안 멍해졌다. 공감각적으로 남은 충격에 눈과 귀와 손이 얼얼했다.

무언가의 숨통을 끊은 이 느낌. 손바닥을 부딪쳐서 잡았을 때와는 다른 이 전율.

 

잠자리에 들려는데 왜엥 소리가 나자 남편이 전자채를 퍼뜩 가져오란다.

'전율'에 대해 유심히 들었던 남편은 자기가 한 번 해보겠단다.

"나도 손맛을 느껴보고 싶어."

손도 식탐을 느낀다.

 

계형 매춘, 그럼에도 줄어들지 않는 빚,

벗어날 길 없는 가난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이 있는 환경에서 비인간적인 삶을 수용해야하는

여인들이 있다. 비루하고 출구없는 현실에서 어떤 여자는 칼을 들고, 어떤 여자는 또 다시 몸을 들고 나간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수치심이나 모욕감은 개나 줘버리라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전혀 달콤하지 않은, 하지만 마치 전자채를 쥐고 모기를 기다리는 심정이 되게하는 김이설의 소설집을 꿩의 가슴에 칼을 꽂는 한 여인의 말로부터 시작해본다.

 

살아있는 것의 마지막 몸부림은 감정을 북받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그 긴장감은 칼을 들이대자마자 급작스럽게 사라졌다.

움직임이 가라앉아 내 몸이 고요해지면 갑작스러운 공허가 달콤하게 스며들었다.

                                                                  - <순애보> 중

 

* 순애보

 

증거를 대봐, 증거를!

늦게 들어온 엄마는 아빠에게 바락바락 대들었고 아빠는 얼마 후 집을 나갔다.

엄마의 배가 난데없이 불러왔고 어느 날, 엄마와 나는 짐을 챙겨 큰 트럭을 몰고 온 아저씨의 차에 올라탔다. 엄마는 그 아저씨에게 연신 몸을 기댔고 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버려졌다.

 

나는 젖몽오리가 서는 소녀였다.

갓길에 서서 아픈 가슴을 주무르고 있을 때, 한 트럭이 멈췄다.

애야, 거기서 뭐하니.

엄마가 나를 버렸어요.

 

나는 트럭에 올라탔고 아저씨가 건네주는 만두 열 개를 먹었다.

아저씨가 내 허벅지를 지그시 눌렀다. 나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고 이내 만두값을 지불해야하다는 것을.

 

아빠라 부르라고 했다. 나이 차이를 보면 그게 맞았다.

그 후, 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저씨가 싣고 다니는 꿩고기를 앞장서서 팔았다.

장사는 잘 됐고 나는 가슴이 커졌고 아빠는 점점 더 많이 나를 좋아했다.

 

꿩농장을 샀다. 아빠의 바람대로 아이를 가졌다.

아빠는 여태 해오던 꿩 죽이는 일을 하지 말라고 했다.

내대신 말더듬이 청년 치우가 일을 도와주러 농장에 왔다.

 

나는 밤이면 고속도로 갓길을 자주 걸었다. 항구에 가고 싶었다.

휴게소에서 갈길이 멀다며 오줌을 누고 오라던 엄마가, 오줌을 누고 나오자 찾을 수 없던 엄마가 향하던 곳이 항구였다. 항구에는 도대체 뭐가 있길래.

트럭이 와서 멈춰섰다. 얼마야? 하고 물었다. 대답은 늘 똑같았다.

항구로 데려다줘요. 그러면 원하는 대로 해줄께요.

 

나름 고속도로에서 유명한 여자가 되어있을 무렵,

갓길에 한 트럭이 섰고 그 안엔 치우가 타고 있었다. 서로 무척 놀랐지만 나는 평상시와 같이 말했다.

항구로 데려다 줘.

 

치우는 같이 도망가자고 했다. 아빠도 치우와의 밀회를 눈치해고 있었다.

딸을 낳고 몸이 회복되자 아빠는 말했다.

성실한 아이야. 치우를 따라가.

빨리 어른이 되어 아빠를 떠나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그렇지만 이제 와서 환갑이 다 된 아빠를 떠날 수 없었다.

아니 떠날 이유가 없었다.

 

치우는 보챘다. 좀 야멸차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요, 지,금, 나,랑,같,이,가,요, 사,랑, 한, 다, 구,요, 아,이,도, 예, 뻐, 할, 께,요.

너같은 병신아빠를 두느니 차라리 혼자 키우겠어.

나,를,미.치.게.하.지.말.아.요.

 

진짜 아빠도 나를 버렸고 가짜 아빠도 나를 버리려 한다.

또 내쫓기고 내동댕이 쳐지려한다. 버림 받는 건 한 번이면 족하다.

아빠를 죽이겠어. 칼을 들었다.

쪼그리고 앉아있는 아빠의 등을 향해 돌진했다.

아빠의 팔이 스쳤다. 아빠는 울고 있었다.

 

어디선가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담긴 비명이었다.

이내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아이에게 가보니 아이가 사지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온통 피범벅이었다.

아이의 머리맡, 고인 핏물 속에 아이의 잘린 혀가 놓여있었다.

치우는 보이지 않았다.

 

* 환상통

 

서른, 칠년 연애 끝에 동갑내기 그 이와 결혼했다.

늦은 나이였기에 양쪽 집안에서는 아이를 보챘다. 하지만 나는 그리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 가보라는 시어머니의 권고를 못이겨 검진을 해본 결과 자궁암이 발견됐다.

 

첫 항암 치료를 앞둔 며칠 전, 남편 생일 선물로 구두를 선물해주었다.

결코 견딜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열 세 번의 항암치료를 조용히 묵묵히 받아들였다.

마지막 치료를 마친 퇴원 전 날, 시어머니가 오셨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 말 없이 손을 오래 잡았다가 가셨다.

아들 하나 밖에 없는 어머니의 등이 아팠다. 남편과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남편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치료 받는 동안 나는 내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고 남편을 볼 면목이 없어졌다.

나는 단호했다. 그는 계속 찾아왔다.

 

완치 판정을 받은 후 혹시나 싶어 친정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갔다.

자궁암 3기였다.

내 병간호를 하느라 치료시기를 놓쳐버렸다. 후회할 시간이 없었다.

엄마는 빠르게 피폐해져 갔다.

남편은 엄마의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지켜줬다.

 

삼우제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찻잔을 두고  앉았을 때 정적을 깨고 남편 전화기가 울렸다.

고개를 돌렸지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여인의 목소리.

나는 말했다.

나 괜찮아, 어서 가봐.

 

몇 년 후,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간 날, 남편을 보았다.

반가워서 손을 들 뻔 했는데 그 옆에는 만삭의 여인이 있었다.

불룩한 배가 햇빛에 반짝였다. 눈이 부셔서 시큰했다.

남편과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빠져 나와 암병동으로 들어섰다.

어디선가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에 배가 아팠다.

 

 

름처럼 그녀는 좀 다른 이야기(異說)를 하고 싶었을까.

한 편의 이야기들이 끝날 때마다 땀이 조금씩 솟아올랐고, 딸칵, 몸 어디선가 주차브레이크를 올려지는 듯 했고 그래서 멈췄고 선풍기의 도움을 받아서 땀을 식힐 생각은 나지 않았다.

얘기가 충분히 서늘했으므로.

 

닭집 여자. 늙은 조연 뮤지컬 배우, 노숙하는 소녀, 대리모, 삶을 관리 하는 여자, 자발적 백수(유일한 남자주인공) 이야기가 있지만 이쯤 하련다. 전자채를 남편에게 쥐어준 것처럼 김이설의 '손맛'을 제대로 느껴보시라 남겨둔다.

(어쩌다 이 부분만 보신 분에게 한마디. 이거 맛집소개 아닙니다!)

그녀가 자신만의 행복추구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도 느껴보기 바란다.

 

행복을 추구하려해도 길이 막혀버린 사람들,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불행해지는 사람들,

어렸을 때 어른들은 번듯하지 못한 직업의 사람들을 보면 작고 은밀하게 이렇게 말했다.

공부 안하면 저렇게 된다,

도대체 어떤 공부를 안했기 때문이라는 걸까.

자신들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댓가를 요구하는 공부?

성폭력과 존엄성이 묵살되는 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공부?

자본에 복종하며 실패에 젖어있는 삶에 대해 우리도 그 옛날의 어른들처럼 똑같이 말할 수 밖에 없을까.

 

어느 새 매미소리는 그치지 않는 효과음으로 집안을 파고든다.

눈을 들면 잠자리떼들이 여지없이 출몰한다.

잠자리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자 그 움직임이 커진다.

우두커니가 된다. 

당신, 이게 단지 소설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니?

과연 당신은 이런 삶에서 얼마나 멀리 있니?

 

타인의 행복추구가 보장될 때 나의 행복도 추구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을 실천하려면 얼마나 더 성숙해져야 하는 걸까. 다만 이 책을 읽는 당신들은 비루한 삶 위에 군림하며 그 삶을 등쳐먹는 야비한 '손맛'을 부디 모르는 사람이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렇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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