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의 백합 을유세계문학전집 4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정예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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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요즘 길게 붙들고 읽었던 사랑이야기 하나 들려드릴께요.

이 책이 서간체이기 때문일까요?

저도 긴 편지를 쓰듯 이야기 하고 싶어져서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있어요.

노래하듯 미끄러지는 예쁜 접미사를 가져보고 싶어서요.

그럼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게 된 젊은이의 사랑얘기를 시작해볼게요.

 

주인공 펠릭스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유년기를 거친 스무 살의 청년이예요.

게다가 발육도 부진해서 나이보다 훨씬 어리고 약해보입니다.

다른 형제들에게는 골고루 나누어지는 사랑이 왜 나에게는 흐르지 못할까,

혼자 울어도 보고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애도 써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인색함과 냉랭한 눈초리뿐.

그러던 그가 한 무도회에 참가하게 돼요.

이 무도회는 앙굴렘 공작이 루이 18세를 만나러 파리로 상경하는 도중 통과하는 도시마다 개최되는 환영식 중의 하나랍니다. 거기에서 펠릭스는 평생 사랑하게 될 여인 모르소프 백작부인을 만나게 되는 거지요.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 옆으로 빛과 향기를 동시에 가진 여인이 와서 앉습니다.

 

자신의 안에 그런 본능이 숨어있는 줄 몰랐을 그는 홍조를 띤 희고 관능적인 어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지요.

요즘 같았으면 전자발찌 찰 행동일텐데 부인은 다행히(?) '별 거지같은 놈 다 보겠네' 하는 분노가 섞인 눈길만 주고는 사라져버리는데 그 부인은 아름다운 등 뿐만 아니라 그 등에 걸맞은 가슴과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그를 더욱 들뜨게 했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맞닥뜨렸을 때 백작부인은 이렇게 얘기했지요.

“제가 최초로, 마지막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당한 치욕이었어요.

그 무도회에 대해 다시는 언급하지 마세요!“

그러나 먼 후일 백작부인은 이 날의 일을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해요.

‘비록 두 아이의 어머니였지만 사랑이 허락하는 쾌락을 경험한 적이 없었어요.(...)

당신의 입맞춤은 내 삶을 지배했고, 내 영혼에 긴 자국을 냈습니다.

당신의 열정적인 피는 내 핏속에 열정을 깨웠고,

당신의 젊음은 내 젊음 속으로 침투하였으며, 당신의 욕망은 내 가슴속에 파고 들었지요.’

여인의 진심이란 당시엔 깨닫지 못하는 것일는지, 아니면 변하는 것일는지.

 

언뜻 그렇고그런 불륜이야기가 전개 되겠구나 생각하시겠지만

오늘 아침 전 눈물과 콧물을 닦은 휴지로 산 하나를 만들었더랬습니다.

발자크씨의 부드럽고도 시적인 묘사, 죽음을 꿰뚫는 웅장한 진리에 말이지요.

아이고, 내 정신.

더러운 콧물이야기는 그만 두고 계속 이야기를 할께요.

 

무도회가 끝난 후 사랑의 열병에 사로잡힌 펠릭스는 그녀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하지요.

그렇게 그녀를 위한 순례를 하던 중 한 골짜기를 발견해요. 그리고는 생각합니다.

‘모든 여성 중의 꽃인 그 여인이 세상 어디선가 살고 있다면 바로 이곳일 테지!’

정말 그 곳 <클로슈구르드>라고 불리는 집에 그녀가 살고 있었고 이 무모한 청년의 방문에

그녀는 놀랐지만 예를 갖추어 손님으로 맞습니다.

그녀의 남편 모르소프백작은 나름 명문가문의 사람이었지만 펠릭스가 보기엔 그저 노인에 가까웠습니다. 망명의 고약한 세월을 보낸 사람답게 지치고 집착이 있었지요.

그리고 그녀에겐 생명의 위협을 받을만큼 약한 딸 마들렌과 허약한 아들 자크가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나름 뼈대있는 집안의 청년 펠릭스를 별 경계심없이 받아들여줍니다.

 

오로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서 이 골짜기에 찾아든 청년 펠릭스와

그 사랑을 알면서도 거부하지는 않는,

오히려 아들처럼 여기겠다며 펠릭스를 더욱 깊이 사랑한 모르소프백작부인.

그들이 거니는 정원, 근교의 산책길은 영혼에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삶의 충고와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사랑의 암시적 고백들로 가득찹니다. 그러다 아들 셋을 연달아 잃고 태어났던 백작부인의 외로웠던 유년시절과 펠릭스의 우울했던 유년이 조우합니다.

"우리는 똑같은 유아기를 거쳤군요"

그리고 백작부인은 그녀에게 유일하게 따뜻한 사랑을 부어주었던 숙모가 불렀던 이름,

앙리에트를 펠릭스에게만 허락하지요.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면 됩니까?”

“숙모가 나를 사랑했듯이요.”

믿을 수 없지만 그들에게는 모성에의 그리움이 서로를 향해 깊은 사랑의 골짜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나봐요. 아니면 모성으로 포장한 욕망이었을까요.

하지만 그녀는 펠릭스에게 그녀를 흔드는 열정적인 말투를 철저히 금했고

내가 손을 내밀 때만 잡으라는 등 엄격한 선과 규칙으로 거리를 둡니다.

 

정신착란증을 앓고 있는 백작은 오랜 시간 어르고 달래야 수그러들며

사소한 잘못도 핑계삼아 부인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지요.

더구나 허약한 아이들은 교대로 뼈가 녹는 간호를 필요로 했어요.

그녀의 고단하고 희생적인 삶을 엿본 펠릭스는 그녀를 더욱 숭상합니다.

 

달이 밝은 밤, 펠릭스는 그녀의 눈물을 영성체로 받아 마심으로 그녀에 대한 사랑을 맹세합니다.

"저는 지금 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성혈을 마심으로써 그리스도와 교감하듯이 부인의 영혼과 결합했습니다. 가망없는 사랑도 행복입니다."

(흠, 세상에! 입술에 바른 꿀이여, 정신에 바른 아편이여!)

하지만 그녀는 그를 파리로 보내 그 곳에서 출세해야한다고 합니다.

파리로 떠나는 그에게 쓴 그녀의 편지는 얼마나 지혜의 말로 가득 차있던지.

 

예절은 진정한 자비처럼, 실제로 자신을 희생하는 데 있습니다.(...)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은 헛된 희망을 전혀 주지 말고 단호하게 거절하세요. (...)

세련된 예절과 아름다운 매너는 마음속에서, 개인적인 자존심에서 우러나는 것이니까요.

사회는 어머니라기보다는 계모이기 때문에, 자기의 허영심을 만족시켜주는 자식들을 편애합니다. (...)

당신은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엇을 받지 말아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말고,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요. (...)

젊은 여자들을 비웃고 하찮게 여겨도 됩니다. 그녀들은 진지한 생각을 할 능력이 없으니까요.

 

아마도 다음은 자신을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을까요.

 

아, 당신을 사랑할 여인은 고독할 것입니다. 그녀에게 가장 화려한 축제는 당신의 시선일 것이고, 또 그녀는 당신의 말들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겠지요. 그 여인은 당신에게 세상 전체가 되어야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녀의 모든 것일 테니까요. 그녀를 많이 사랑해줘요.

 

파리로 진출한 펠릭스는 자신의 숭고한 사랑을 시기하는 영국후작부인 아라벨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내가 모르소프 부인처럼 사랑받는다면, 당신에게 모든 것을 희생하겠어요.(...)

항상 당신의 친구로 남을게요. 그리고 당신이 원할 때 연인이 되어 드리겠어요.’

 

하지만 그녀는 사교계에서 그들의 사랑을 이렇게 비웃었다지요.

“한 쌍의 어린 비둘기처럼 한숨짓는 저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지겹군요.”

 

아라벨과 앙리에트를 비교하자면 동양과 서양의 차이.

하나는 아주 작은 물기도 먹이로 삼기 위해 빨아 들이려하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마음을 내뿜고 측근들을 빛으로 감씨준다.

한 명은 날렵하고 가늘고, 다른 한 명은 느리고 풍만하다.

 

이것은 영국과 프랑스의 여인을 비교하며 영국의 경박스러움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요.

물질의 모든 부분을 개량하여 아름답게 장식함으로써 물질의 쾌락 속으로 빠져드는 정신의 세계를,

기계로 빠져드는 그들의 삶을 비난합니다.

사랑을 맹세하며 자신을 버린다면 곧 죽어버리겠다고 펠릭스의 목을 교묘히 조르던 그녀였지만

앙리에트의 장례를 치르고 온 그가 그들이 생활하던 거실에서 대면한 것은 더들리 백작과 자녀들.

그가 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어느 것을 배신이라고 말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배신 당한 것이지요.

그것이 영국식 사랑의 종말일까요.

정열과 가면, 두 개를 번갈아 쓰던 여인, 더들리와는 그렇게 끝나게 되지요.

 

聖을 선택한 여인의 사랑의 방식은 자신에게 너무 가혹했던지

금욕의 고단한 내적 싸움으로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질 만큼의 고통을 지나

레이디 더들리와의 염문을 듣고는 질투심으로 몸과 마음과 영혼이 상하여

죽음의 길로 들어서야했던 여인 앙리에트.

性을 선택하여 펠릭스의 육체를 화려하게 정복했으나 다만 물질의 형태로 남은 여인 아라벨.

누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 누가 더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라벨식 사랑과 앙리에트식 사랑사이에서 오늘도 많은 여인들이 죽은 사랑을 위하여는 애도를,

탄생하는 사랑을 위해서는 기도를 하고 있겠지요.

 

아라벨과 욕정과 환희의 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엔 성녀 앙리에트를 위하여 울 수 밖에 없었던 펠릭스. 이것도 가지고 저것도 가졌지만 그 어느 것도 가질 수 없었던 그의 사랑은 울면서도 웃었던 것인지. 그래서 펠릭스는 이기심을 발휘하여 이 편지의 수취인인 나탈리에게 앙리에트와 아라벨을 겸비한 또 하나의 여인상을 주문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앙리에트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펠릭스는 한 걸음에 클로슈구드르로 달려갑니다.

마지막까지 여인의 모습이고 싶어서 그를 기다리게 한 후 하인들에게 꽃으로 벽난로를 장식하게 하고 흰드레스로 갈아입고는 소파에 앉아서 펠릭스를 맞아요.

꽃향기가 너무 그녀의 사랑의 꿈을 자극했는지 죽음 앞에 선 사람답지 않게 앙리에트는 말해요.

 

나는 행복을 경험하고 싶어요. 꿈같은 계획을 세웠죠.

저 사람들은 클로슈구르드에 남겨놓고 우리는 함께 이탈리아로 떠납시다.(...)

거짓이 아닌 실제의 삶을 살고 싶어요. 여태껏 내 삶에서 모든 것이 거짓이었어요. (...)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내가 죽다니, 말이 되나요?

애인을 들판으로 마중 나가본 적이 없는 내가 어떻게 죽나요?“

 

정말 사랑해보고 싶어서 살고 싶다던 그녀의 삶 앞에 정말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돼요.

사랑은 삶의 수단인지, 목적인지.

 

얼마 후 종부성사를 마친 그녀는 다시 평정을 되찾게 돼요.

마땅히 쏟아야 할 정성을 다른 데로 쏟아 소홀히 했던 것에 대해 백작에게 용서를 구해요.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고, 순종적인 아내였고, 순결을 더럽히지 않았어요.

사랑하는 딸아, 나는 네 속에서 살 거란다.

화해와 용서를 구하는 앙리에트의 고귀한 영혼이 얼마나 아름답고 우아하던지요.

그녀가 죽음을 맞이한 후,

장례식을 준비하며 모두 지쳐 잠들어 보는 사람이 없을 때,

펠릭스는 그녀가 생전에 표현하지 못하게 했던 사랑 전부를 담아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추어요.

 

그녀의 죽음은 온 골짜기가 애도를 했지요.

근방에서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베풀었던 선행으로 그녀의 장례식은 소박했지만 성대했어요. 그녀가 죽음을 대면하는 장면을 읽는 것만으로 영성이 깊어졌다고 하면 지나칠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 장면은 내 주변의 한 뼘을 위하는 기도보다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나만이 이 무명의 위대한 여인의 삶을 알고, 오직 나만이 그녀의 감정들을 기억하고,

오직 나만이 그녀의 영혼의 전역을 돌아다녔다.

그녀의 어머니도, 아버지도, 남편도, 자녀들도 그녀를 완전히 알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다!

 

정혜윤은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이라는 책에서 앙리에트와 펠릭스의 사랑을 <

골짜기식 사랑>이라고 부르며 ‘한 사람만을 위한 역사가’라는 제목을 통해 소개했어요.

'한 사람만을 위한 역사가'는 꽤나 구미가 당기는 타이틀이었는데 그것을 얻기 위한 댓가가 죽음이라면 그 역사가는 애시당초 포기해야하겠지요.

이 골짜기식 사랑을 수용할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한 번 헤아려 보았네요.

없으니까 문학의 이름으로 버젓이 여태 살아있는 것이겠지요?

 

문득 창밖을 보았어요.

삼일 내내 비가 오고 있잖아요.

같이 울어준 하늘이 고마우면서도 이런 날에는 비가 아닌 눈이 와야 하리라 생각하고 있네요.

백합 같은 눈송이가 마음의 골짜기로 한없이 쌓여야 하리라, 하고.

절규에 가까웠던 펠릭스의 외침이 생각나요.

“잘려버린 이 아름다운 백합이 천상에서 다시 피어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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