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나는 천재다! - 어느 천재의 일기 다빈치 art
살바도르 달리 지음, 최지영 옮김 / 다빈치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미술에 문외한인 내가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에게 관심을 가질 확률이란 장동건이 내게 안부전화를 하는 것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왜 어떤 계기로 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확률의 당첨자가 되고 말았을까? 그것은 바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 사랑을 하지요. 프랑스인도 하지요. 이란인도 하지요. 굴들도 하지요.

심지어 게으른 해파리도 하지요." ' Let's fall in love' 를 부르는 콜 포터.

말도 안 되게 유치한 그 노래의 가사가 낭만적으로 들리는 것도 '파리' 라는 도시의 힘이다.

예술가들뿐 아니라 민간인의 가슴속에서도 춤추듯 역동적으로 다가오는 이 도시는 도대체

무엇을 품었기에 이런 동경을 불러들이나.

 

“브라제리립에서 점심 먹기로 했잖아, 아는 교수가 거기서 저녁을 먹었는데 제임스 조이스를 보았대."

“(황당하다는 듯이) 기일~ 그게 다야?”

그 카페에 가보아야하기 때문에 다른 약속을 잡을 수 없다는 소설가지망생 길의 대답에

어처구니 없어하는 약혼녀와 친구들.

파리를 유흥과 관광으로만 대하는 약혼자 이네즈는 파리에 대한 길의 열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2010년에서 1920년대의 골든 에이지로 건너가게 된 길 펜더는 피카소의 여인 아드리아나를 사랑하게 되고 아드리아나 또한 그의 순박함에 끌리게 되는데, 그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순간 냉담해진다. 집에 바래다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한 채 카페를 나서는 아드리아나를 바라보는 허망한 길(오웬 윌슨).

그의 얼굴 위로 이상한 조각이 달린 지팡이가 스윽 나타난다.

강한 엑센트와 함께 합석을 권하는 달리는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슬픈 운명을 묵묵히 통과해나가던

스필만 役의 애드리언 브로디가 아닌가. 장난기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타나 도대체 저 사람이 연기하는 인물이 누구인거지, 하며 강하게 끌리고 말았다.

다른 사람이 달리의 역할을 맡았다면, 피아니스트라는 영화를 추천해 준 친구가 없었다면,

비디오를 빌려다놓고 혹 아이들이 아파서 영화를 보지도 못한 채 반납해야했다면,

달리와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으니 무엇과의 인연이란 한 순간의 우연한 교차가 아닌 누적된 교차점들의 새로운 교차라는 생각이 든다.

 

살바도르 펠리뻬 하신또 달리 도메네끄.

살바도르는 ‘구원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름이다. 1901년에 죽은 그의 형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름 때문에 언제나 형의 죽음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녀야했기에 불안정한 정서를 갖게 되었지만 어찌 보면 현실과 환상이라는 두 개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1952년부터 1963년까지 드문드문 적은 일기이다.

그는 신문을 읽을 때 거꾸로 읽는 버릇이 있었고 아침식사 후 귀 뒤에 자스민꽃을 하나 꽂고

변기에 앉아 우아하게 볼일을 보았으며 거대한 영감이 떠오를 때는 침을 흘려 입술이 갈라져

텄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잠이 안 올 때 수면제를 먹지만 그는 깨어나지 못할 것처럼 완벽한 잠을 예감할 때 수면제를 먹는다. 그러면 다음 날 매우 감동적인 생각이 물밀 듯 밀려온다나.

위대한 감성이 목구멍을 뚫고 튀어나올 때 그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키키리키스”

그의 엽기적 행각, 아니 천재적 창조성이 번뜩이는 행각은 책에 그득하다.

 

그가 날아다니는 파리를 보는 시각은 정말 남달랐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파리는 발렌시아가제製 의상으로 치장한, 올리브잎이나 약간 썩어가는 성게주변을 탐하는 고결한 파리. 그가 파리를 불러들이기 위해 정어리가 담겨있던 접시에 고인 기름을 머리에 부으면 파리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파리들이 웽웽거리는 소리야말로 그의 정신의 속력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이제 그의 유니크한 콧수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1920년대의 달리는 정상적인(?) 콧수염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3일 만에 완전히 독파하고 그의 사상을 넘어설 수 있다고 확신했으나 그의 콧수염만큼은 넘어설 수 판단.

그를 능가함과 동시에 그의 비극적인 분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날렵하고 초합리주의적인 그래서 그는 하늘로 치솟은 형상의 수염‘을 갖게 된다. 1952년 즈음에는 사진사 필립 할스먼과 함께 <달리의 콧수염>을 기획했다. 1956년 움베르토 폐하가 그를 만나러 온다는 소식을 들은 후, 폐하가 그의 수염 끝에 자스민 꽃 두 송이를 꽂아주는 꿈을 꾼다. 바로 표지에 쓰인 사진이다.

 

특이한 것은 아내 갈라와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를 한 것이 그의 연보에 올라와있다.

결혼하면 혼인신고 하는 것이 당연한데 뭐 이런 것까지?

사연인즉 갈라는 당대 프랑스 최고 시인이었던 폴 엘뤼아르의 아내였다. 엘뤼아르 부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을 때 달리는 첫눈에 그녀를 자신의 뮤즈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달리만 그리 여겼으면 그냥 흠모하는 것으로 끝나버렸을 텐데 갈라 또한 달리에게 매료되어 달리와 동거를 시작한다. 연보에 보면 28-29년에 그녀를 보았다고 하니 당시 달리는 25살 청년, 갈라는 36살의 원숙미를 뽐내고 있는 세뇨라(어디서 많이 들은 ㅋㅋ)였겠다. 둘이 함께 한 이후로 그녀는 달리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었고 또 최고의 모델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녀의 초상화 한 장 감상한다.

 

(좀 줄여서 올렸다. 원래는 한 쪽 가슴을 드러내고 있다.)

 

달리는 베르메르를 최고의 화가로 쳤다. 그가 어렸을 때 그의 작품 <레이스 뜨는 소녀>를 빼꼼 열린 아버지의 서재의 벽에서 보았고 그 강렬함은 그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했고 루브르박물관으로부터 어렵게 모사를 허락받는다.

그가 <레이스 뜨는 소녀>를 코앞에 두고 그린 그림은 바로 코뿔소! 아뿔싸!

후일 자신의 방법으로 재해석한, 얼굴만 남기고 코뿔소의 뿔이 난무하는 <레이스 뜨는 소녀>가 탄생한다.

그가 그토록 코뿔소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인간처럼 미세한 곡선을 가진 모든 생물체는 원추형으로 되어있다는 그의 발견에 따라 그는 코뿔소의 뿔을 하늘이나 대지를 향해 솟구치는 극단적 형상으로 찬양하게 된다.

절대적 완전무결함으로 쏜살같이 미끄러져가는, 천사처럼 순수한 영감체인 코뿔소의 뿔이여!

 

 

      (오른쪽 그림은 <베르메르의 '레이스 뜨는 소녀'를 편집증적 비평 방법으로 그리기>1955 )

 

1953년 5월 9일 일기에 적힌 석 줄의 문장을 들여다본다.

자네가 만일 해부학, 데생, 원근법과 미학, 수학 및 색채 과학등을 익히길 거부한다면,

네게 이렇게 말하는 것만은 허락해주겠는가?

“자넨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게을러 터졌기 때문일세.”

 

실제로 그는 회화, 삽화, 오페라, 의상 디자인, 무대 장식, 영화, 조각, 보석, 가구 등 다방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실제로 홀로그램을 이용한 3차원적 공간에 몰입하여 1971-73년에는

3차원적 작품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의 콧수염 변주곡은 다양도 하다.)

 

세간에서 달리는 ‘Avida Dollars'라는 빈정거림을 받기도 했는데 그것은 ‘달러에 굶주린’이라는 뜻.

사회적 측면에서 노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성스러운 자유를 누리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꿈이다. - 프란세스끄 푸졸스

돈에 관해서는 저 까딸루냐 출신 철학자의 말을 신봉했나보다. 자유를 통해서만이 인간의 영웅다움이 드러난다고 일기에 쓰고 있다.

달리는 여왕으로 만들어주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내 갈라에게 푸볼 성을 선물했고 구입할 때 볼품없었던 그 성을 여왕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손수 고쳐주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적절한 시기에 성스러운 자유를 누렸던 행복한 화가가 아닌가.

그 성에서 그녀는 1982년 89세의 일기로 숨을 거두었고, 그가 1989년 1월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혼자 생활하는 동안 그녀의 공백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어서 혼자 남아있는 동안 극도로 불안정한

정신세계를 보였다고 한다. 다른 남자의 아내를 보쌈해왔으니 그 정도의 애정은 보여주어야했으려나.

 

<접시 없는 접시 위의 달걀프라이> <기억의 지속>

 

책 한 권으로, 영화의 몇 장면으로 내가 달리를 알 수는 없겠지만 그가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 보여준 것은 분명 꾸밈이 없는 내면과 그의 천재성에 대한 기꺼운 증명들이었다.

소설이 그렇듯 그림 또한 해석의 자유가 내게 온전히 허락된다면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달리의 그림은 그의 섬뜩한 천재적 직관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다.

그림을 지배하는 황량함과 분열이 재앙 후 혹은 혼돈 이 전의 모습 같은 곤혹스러움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림을 천천히 응시하는 동안 불편함은 소멸되고 삶에 대한 그의 직관의 한 부분을 느끼게 된다.'

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가야 하겠는가 하는 의지를 몸속에서 그러모으게 된다고나 할까.

아름다움보다는 기괴함에 닿아있어 그 기괴함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 원시성을 생각케 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길 펜더가 작가로써 보여주던 열정의 눈빛과 어감은 단순한 연기의 힘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벌써 여러 편의 대본에 참여하여 성과를 거둔 경험이 있는 작가였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소설가를 희망하는 극중의 직업은 논픽션이었던 것이다. 화가로써 해부학, 데생, 원근법과 미학, 수학 및 색채 과학을 익히지 않는 것이 게으른 일이라는 것을 이 배우도 알고 배우로써 그 삶을 실천하고 있었던 걸까.

 

예술가의 일은 절망에 굴복하는 게 아니라 존재의 허망함에 치료약을 주는 것,

확신에 차고 생동적이라야 되지요. 패배주의자가 되면 안돼요.

길의 소설을 읽고 조언해주는 거트루스타인의 예술에 대한 철학은 얼마나 큰 울림인가.

그녀의 방법은 얼마나 정확한가.

 

실제로 초현실주의자들의 그림은 어떤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기보다는 자신에게 떠오른 이미지들을 배열한 것으로 화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한다.

과연 그들은 환상을 보는 예지자이며 우주의 대언자인가.

예술가들이여, 더 많은 약을 달라, 약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