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의 기원 1 한길그레이트북스 83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 박미애 옮김 / 한길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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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사상가의 글들은 거의 이해가 되지 않지만
가끔 이해되는 글을 만나면
생각의 위대함에 매우 감동하게 된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는 수많은 명저들에는
얼마나 값진 보석들이 숨겨져 있을 지
너무나 궁금해 지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을 매우 쉽게 써 준 아렌트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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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혐오 - 공쿠르상 수상 작가 파스칼 키냐르가 말하는 음악의 시원과 본질
파스칼 키냐르 지음, 김유진 옮김 / 프란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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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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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희망 - 절망의 시대에 변화를 꿈꾸는 법, 개정판
리베카 솔닛 지음, 설준규 옮김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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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당시 하벨(바츨라프 하벨, 체코슬로바키아 극작가)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자주 (특히 감옥처럼 유난히 희망 없는 상황에서)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희망은 세계의 상태가 아니고 무엇보다 마음의 상태라고 나는 이해한다. 우리 내부에 희망을 지니고 있거나 지니고 있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인 것이다. 그것은 영혼의 차원에 속하는 것이지, 본질적으로 세계에 관한 어떤 특정한 관측이나 상황 평가에 기대지 않는다. 희망은 예언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지향이자 마음의지향이어서, 직접 경험되는 세계를 초월하며 그 세계의 지평 너머 어느 곳에 닻을 내리고 있다. 이런 깊고 강력한 의미의 희망은 상황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기쁨이나, 머지않아 성공할 것이 분명한 사업에 기꺼이 투자하려는 마음과는 다르다. 그같은 희망은 어떤 일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일이 선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일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 일이 선한 것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거라니... 교육의 목적도 참된 것, 선한 것, 좋은 것을 꿈꾸며 그것을 알고 실천하는 데에 있지 않는가. 교육과 정치와 종교의 궁극적 목적이 동일하다는 것이 이 구절을 읽으며 실감났다. 그리고 그 동안 공부했던 어떠한 논리적 구절보다 가슴을 울렸다.


31쪽 절망하는 사람들은 단 하나의 승리만을, 다시 말해 우리가 쟁취하지 못한 승리, 이라크전쟁을막는 일만을 승리로 인정하려 했다. 

단 하나만의, 구체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사람들의 절망. 우리의 희망은 "마음의 상태"라는 하벨의 말과 반대되는 태도.


33쪽 우리는 자신의 이웃을, 서로를, 이방인들을 두려워하고 감시하고, 나아가 문을 닫아걸고 사적인 영역에 박혀 있으라고 부추겨졌다. 우리의 희망과 저항을 온갖 부류의 이방인들과 더불어 공적 영역에서 실천해냄으로써 우리는 이 두려움의 교리문답을 극복했으며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다.

내향적인 성격으로 태어났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켜가는 내 모습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어쩌면 이러한 사적영역으로의 후퇴는 사회에서 조장한 것이였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공공의 장'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4장. 거짓 희망 혹은 손쉬운 좌절.

이상을 꿈꾸는 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들.



41쪽 개인적인 이유로 절망에 빠졌으면서도 그것을 정치적 분석의 결과로 투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경우는 이전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거나 사람에 따라서는 끔찍했다고 여길수도 있는 시절에 대한 향수와 결합되어 있기 일쑤인데, 그같은 시절은 지금은 망가져 버린 모든 것이 한 때 온전했던 것으로 상상될 수 있는 자리다. 그것은 자기성찰을 회피하는 방법이다.


50쪽 시선을 돌려보라. 어둠 속을 보는 법을 배우라. 그 무대 바깥에서 정치적 힘을 발휘하거나 무대 위 연극의 내용을 바꾸는 창의적인 장에 관심을 기울여보라. 무시하라고 배운 곳, 보지 못하도록 길들여진 곳에서 세상을 바꾸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51쪽 폭력이 국가의 힘이라면 상상력과 비폭력은 시민사회의 힘이다.


91쪽 이 지역, 바로 여기가 세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많은 불만과 욕망의 원천이었던 장기적 전망이 흔들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삶과 의미와 가치 등이 지금 이곳에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지진을 겪은 우리들은 서로의 눈앞에 존재하며 연결되어 있었다.

103

미국 사람들은 어떤 위기상황에 대응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또 다른 위기상황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는 데 능한데, 이것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죽음의 궁극성이 삶에서도 달성될 수 있고 상상하기 때문이고 이런 궁극성은 개인의 삶에서는 그 뒤 오래오래 행복하게’(happily ever after)라는 표현에, 정치와 종교에서는 구원된’(saved)이라는 표현에 담긴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정치적 참여를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그리고 다른 시기의 미국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일상생활의 일부 또는 심지어 즐거움이라고 여기기보다는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구원을 사후의 일로 미뤄두는 것 니체가 비판한 바울의 논리 happily ever after에서 찾아 낸 것을 보고 레베카 솔닛에 반해버렸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도 느꼈지만, 솔닛은 기독교 복음의 메시지를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작가이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길을 현재에 그의 삶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 역시 그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논리적이지만 딱딱하고 어려운 글이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와서 어느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매력적이고도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

 

인간의 아이들이 출생의 순간 아무 힘도 없듯이, 어쩌면 승리도 바람직한 사회에 관한 문화적 감각의 일부로 통합되기 전에는 아무 힘도 쓸 수 없을는지 모른다.

 

107

운동은 믿고 의지하기 어렵다. 신속하지도 않다. ‘직접행동이라는 표현이 가두시위, 볍률위반과 시민불복종을 포함하는 대치상황에 쓰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운동은 직접적이지 않다. 사람들이 운동의 효과가 군대의 경우처럼 직접적이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행동가들이 군대처럼 거리를 행진하기 때문인 듯하지만, 군대는 물리적 세계를 공격하고 그 세계를 물리적으로 확보한다. 반면, 운도가들은 거리를 되찾기도 하고 때로는 바스띠유 감옥을 점거하거나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그들의 작전 지역은 상징의 영역, 정치적 담론, 집단적 상상력 등 대개 비물질적이다. 그들은 강력한 힘으로 대화에 끼어들지만 대화는 대화일 따름이다.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까닭에 모든 행위는 신념에 기초한 행위. 그저 희망을 품은 채 목표를 이루는 데 가장 힘이 될 만한 지혜와 경험을 동원할 따름인 것이다.

 

128

유대-기독교 문화의 중심적 서사는 낙원과 타락이다. 그것은 완벽과 상실의 서사인데, 깊은 상실감은 완벽에 대한 믿으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략) 그들은 가능한 것을 완벽한 상태와 거듭 견주면서 후자에 근거해서 전자를 흠잡는다. 낙원은 정태적 장소로, 역사 이전이나 이후의 장소, 쟁투와 파란만장한 사건들과 변화 이후의 장소로 상상된다. 전제인즉슨 일단 완벽한 상태가 도래하고 나면 변화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구원과 귀가歸家를 믿고 운동이 일상적 실천이 아닌 위기에 대한 반응이라고 믿는 것도 이 완벽이라는 관념 때문이다.


152쪽

문제는 어떻게 세계를 창조할것이냐가 아니라 그 창조의 순간을 어떻게살려나갈 것이냐이며, 창조가 결코 끝나는  법이 없고 사람들이 창조자가 되는 힘을 나누어 갖는 저 코요테의 세계, 미완의 상태이고 즉흥과 참여에 열려 있기에 희망에 찬 세계를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이다. 내가 그려본 혁명의 날들은 희망이 더 이상 미래에 고정되지 않고 현재 속에 요동치는 힘이 되는 나날들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신이 되라고 말씀하셨지. 창조자의 힘을 나누어 갖는 게 아니라. 아메리카의 원주민 신학은 그리스도교보다 조금 더 단순한 것같다.


164쪽 우리가 이 곳에 오기 전에 대륙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처녀지였으므로 아메리카 원주민은 존재한 적이 없는 셈이 되는데, 이런 식의 이야기는 자연을 인간과 무관한 영역, 별도의 장소로 간주했던 환경론자들에게는 각별히 값진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그림 속으로 되돌려 놓는 것은 자연이무엇이고 자연 속 인간의 위치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다시 정의하는 것을 뜻했다. (이것은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갈라서 보는 또 하나의 이분법을해체하는 것으로 환경운동에 함축하는 바가 큰데, 환경운동은 이런 의미 수정을 아직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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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대한 사색>
지은이: 타데우쉬 다이체르 신부
출판사: 기쁜소식

제 2부 신앙의 역동성
제 5장 교회에서 사용하는 풍부한 수단과 가난한 수단
영적인 모성

다른 사람의 영혼 안에 그리스도를 탄생시키는 일을 영적인 모성이라고 정의한 저자는 영적인 모성의 예로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일화를 소개한다. 성녀 데레사는 죄인의 회개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하였는데, 그 중에서 히야친토 루아송 신부의 회개를 위해 기도한 일화를 자세히 소개하였다.
루아송 신부는 당시 파리 가르멜회 총장이자 지혜로운 웅변가로 이름을 날리던 중 교회가 진실한 복음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교회와 싸우며 배교자로 낙인찍혔고, 결국 파문 당하였다. 성녀 데레사는 루아송의 회개를 위해 9년 동안 기도를 했지만, 배교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글로 남기지는 못하였다. 다만 그녀의 시성 심사기록 중 셀리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데레사가 루아송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구절이 나올 뿐이었다. 그는 8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임종 때 그의 곁에는 가톨릭 사제도 없었고, 고해성사도 드리지 못 한 채 죽었다고 한다. 그는 생전에 데레사의 자서전을 읽었고(성녀데레사가 루아송신부보다 15년 일찍 죽었다고 한다), "미칠 듯이 감동적"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데레사가 그를 위해 기도를 했다는 것을 루아송은 알았을까?...

루아송은 임종 때 '나의 조용한 예수님'이라고 말하며 죽었다고 한다. 저자는 루아송의 말이 회개의 증거이며, 그가 회개한 것은 성녀데레사의 기도 덕분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의 회개여부와 관계없이,, '나의 "조용한" 예수님'이라는 구절을 읽자마자 영혼 깊은 상처를 느꼈다. 파문 앞에서도 당당했던 그의 큰 목소리와 대조적으로 적막으로 가득 찼을 그의 내면과 아무런 목소리도 듣지 못 했을 그의 영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가 가톨릭 교회의 잘못들을 큰 소리로 외치고 다닐 때도, 그가 파문을 당할 때도 아무 말씀 없으셨을 예수님이 떠올랐다.

예수님은 루아송에게 큰 인기도, 절망적인 파문도 같이 안겨주셨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늘 사랑하고 있다고 데레사를 통해 속삭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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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성녀 데레사의 기도와 희생에 중점을 두고 이 글을 썼지만, 나는 버려진 자, 쫓겨난 자의 이야기에 더 빨려든다. 교회 안에 있는 자에게든, 밖에 있는 자에게든 주님의 사랑은 영원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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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 폐허의 철학자 에밀 시오랑의 절망의 팡세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챕터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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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문체를 기대했었는데, 매우 논리적인 문장들이었다.
- 에세이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철학적 단상들 모음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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