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사랑
이서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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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지극히 사랑한다고 느낄 때면 낮게 출렁이듯 슬픔이 찾아온다. 밀물은 언젠가 썰물이 되고 해는 지고 계절은 하얗게 지나갈 테고 시간은 결코 같은 얼굴로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짐작하면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고갱의 그림 속 질문이 더 절절하게 와닿는 이유는, 나의 존재만이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를 두고 우리의 존재를 함께 묻기 때문이다.
나의 사라짐보다 더 슬픈 것은, 어쩌면 사랑하는 누군가를 먼저보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랑하는 누군가의 오고 감을 알 수도 헤아릴 수도 짐작할 수조차 없으리라는 서글픔, 어쩌면 너를 먼저보내고도 네 간 곳을 알지 못해 헤매듯 이 세상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막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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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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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이 감정이 어찌나 압도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내가 줄곧 슬픔을 괜찮은 것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이 부끄럽게까지 느껴진다. 슬픔, 그것은 전에는 모르던 감정이다. 권태와 후회, 그보다 더 드물게 가책을 경험한 적은 있다. 하지만 오늘 무엇인가가 비단 망처럼 보드랍고 미묘하게 나를 덮어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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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외진 곳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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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 마음이 습기 찬 듯 일렁일 때가 있다. 그러면 창밖을 내다본다. 보이는 건 불 켜진 창문들이다. 어둠 속에 떠 있는 조각조각의 위안들. 밤이 좋은 이유는 불필요한 것을 없애고 불빛만 보여 준다는 것이다. 밤의 불안이 밤의 불빛에 묽어지면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은 숨 쉴 수 있게 설계되어 있구나. 돌아보니 불 켜진 창문에 대한 이야기였다. 유리창 불빛에서 위안을 찾던 오랜 나의 습관. 소설이 먼저 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은 문장으로 창을 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낸 문장의 창이 어둠에 지워지지 않아서 당신 밤의 위안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비록 그 창이 외진 곳에 있을지라도.
-나의 외진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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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외진 곳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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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펑년보다 포근한 겨울이 될 거라고 기상청에서 떠들어 대도 첫눈은 꼭 내렸다. 늦더라도. 반드시. 그건 마치 늦더라도 기필코 뭔가를 ‘이룬다’거나 ‘해낸다’는 뜻 같기도 했다. 그러니까 저 눈은 지금 높은 데서 떨어지면서, 부딪치고 깨지면서 무언가를 이루고 있는 셈이었다. 녹아 없어지면서 드디어 해내고 마는 것이었다. 뭔가를 이루거나 해내는 것이 저렇게 흔적 없이 사라지는 방식이라면 남자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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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외진 곳
장은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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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누군가의 울음을 알아차리기에도, 남한테 알리기에도 좋은 시간이다. 몰래 울기에도 좋은 때다. 하여튼 밤은 여러모로 울기 좋은 시간이다. 모든 사람들이 밤에 운다면 슬픔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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