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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개가 달려가네요 ㅣ <5+5> 공동번역 출간 프로젝트 2
유리 파블로비치 카자코프 지음, 방교영 옮김 / 걷는사람 / 2020년 7월
평점 :
다가오는 겨울을 맞아 찬바람과 불곰의 나라, 러시아의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내 머릿속 러시아는 보드카, 불곰, 평균 수명이 짧은 상남자의 추운 나라임에 동시에, 여러 대문호와 발레를 배출한 나라이다. 이 대조되는 특징이 러시아라는 한 나라에 공존하는 이유가 뭘까? 러시아에 대해서는 항상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책은 20세기 러시아의 단편 소설가 유리 파블로비치 카자코프의 ‘저기 개가 달려가네요’이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이지만, 멋진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되었다.
유리 카자코프의 단편 소설들의 특징은 넓디 너른 우주같은 자연일 것 같다. 책을 읽고만 있어도 티비에서 본 불곰이 서 있던 숲과 강이 떠오르는 듯하다. 그의 책 속에서는 숲의 습도, 식물과 동물의 냄새, 청량한 대기, 안개 속에서 새 소리와 동물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밤이 되면 넓은 숲 위에서 더 거대한 하늘과 총총히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다.
주인공들의 삶과 행적은 넓은 자연을 배경으로 평화로운 우주의 섭리의 한 부분이 된다. 목가적인 배경을 가진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러하듯, 이 단편 소설의 주인공들은 현대의 피곤한 경쟁에 시달리지 않는다. 현재에 하는 일, 현재에 느끼는 기분에 충실하다.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미래보다는 과거를 회상하거나, 그리워하는 때가 더 많다. 광활한 자연의 에너지에 힘입어, 과거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슬픔이나 괴로움도 지나온 길에 남겨두고, 현재에 충실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특징이 독자로 하여금 편안함과 청량감을 주는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은 곰이 주인공인 ‘테디’이다. 서커스 생활에서 권태를 느끼는 모습에서 이미 테디는 곰보다는 사람같은 느낌이 들었다. 테디가 탈출할 때, 총을 맞았을 때, 여러 번 위기 상황을 넘겼을 때, 엄마와 하얀 바지 주인을 떠올리며 슬퍼할 때 조마조마하고, 가엾은 기분을 느끼며 테디를 지켜보게 됬다.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주인공을 보는 느낌이랄까.
유리 카자코프의 단편 소설에서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 주인공이 고통스러워하고, 위험한 순간까지 말이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 삶에 주어진 과정같이 느껴진다. 불곰국의 호연지기를 가진 단편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