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플랜트 트리플 11
윤치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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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는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와 함께 최근 작품의 경향이 어떻게 변하는지 잘 알 수 있는 좋은 프로젝트 서적이라 할 수 있다. 작아진 여성들의 가방만큼 함께 작고 얇아진 서적. 독자들은 예전처럼 긴 시간을 들여 독서를 할 만큼 여유롭지 못하다. 틈새 시간 편하게 들고 다니며 읽기도 편하다. 예쁜 표지는 소장 욕구를 충족시킨다. 사진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기도 좋다. 예쁜 책은 그만큼 홍보효과가 좋다고 한다. 무언가 아쉽다.라는 감정을 지울 수는 없지만 출판계 역시 살아남기 위해 독자의 기호에 맞춰 변신 중이다.

트리플의 11번째 시리즈는 서울신문과 조선일보를 통해 2021년 신춘문예 2관왕을 달성한 신인 작가이다. 황인찬 시인이나 안태운 시인 등 최근 활약하고 남성시인이나 박선우 같은 작가들은 보면 과거 남성작가들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느낌이 없다. 정치적인 색깔이나 사회적 시간을 다룬 작품들 보다는 사랑과 연애얘기를 주 소재로 다루고, 부드럽고 유연한 감성을 가진 작품들가 들이 꽤 많이 등장했다. 이런 작품들을 보다보면 세상이 바뀌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윤치규 작가의 러브 플랜트에서 연애. 결과. 이혼 세 가지 소재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각 장 마다 자신의 방식대로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이해 할 수 없는 상대. 고정 관념으로 대하는 편견이 주는 폭력에 대한 대사가 묘하게 맘을 찌른다. 아무리 사랑해도 결국은 남이고 내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를 보다 가까운 나로 만드려는 엇갈림이 존재하기도 한다. '너는 왜 네가 보고 싶은 대로만 봐?'라고 묻는 희주의 질문은 그런 상대와 세상에게 되묻는 질문이 아닐까. 각기 다른 사람들의 연애에서 보이는 이해와 소통에 부족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이야기와 다른 듯 닮아 있어 쓸쓸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초승달이라니까, 너는 왜 항상 네가 보고 싶은 대로만 봐?

일인칭 컷

여자친구의 비혼식에 참가한 나. 사람들은 자신이 결혼을 한다 해서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식을 언제 올리냐고 물어오지만 자신은 웃을 수 없다. 다시 만난 희주는 밖의 나무가 야자나무인지 팜트리인지를 물어본다. 새로 산 악세사리 하나에도 초승달인지 그믐달인지를 가지고 언쟁을하면서 왜 네가 보고 싶은대로만 보냐는 희주. 사실 그녀가 진짜 묻고 싶던 이야기는 퇴사 전 성희롱과 그것을 용서한 나에 대한 원망에 가깝다. 자신은 용서하지 않았는데 너는 왜 그것을 용서했냐고 되묻는 그녀의 말. 팜트리도 야자나무도, 초승달과 그믐달도, 그리고 용서도 그게 뭐가 문제냐고 되묻고 싶은 나에게 비혼식은 희주가 던지는 복수에 가깝다. 아니면 희주는 '나'가 되물어 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 때마다 현영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게 제일 괴로웠다. 이 모든게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 나를 만나도 똑같다는 것. 내가 곁에 있어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 그런 생각이 자꾸만 나를 어딘가 아득히 먼 곳으로 내몰았다.

완벽한 밀 플랜

신혼 여행을 온 나와 현영. 결혼도 신혼 여행도 삶에 있어 한번 뿐인 대사다. 완벽하길 바라는 계획은 조금씩 어긋나기만 한다.

아내인 현영은 조금 우울하고 손목을 긋거나 술을 과하게 마시고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는 등 문제를 일으킨다. 내가 곁에 있어 나아지기를 바랐으나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 때마다 그녀는 괜찮다고만 말할 뿐이다.

여행은 또 어떠한가. 계획은 계속해서 꼬이기만 하는 일정. 바다거북은 보이지도 않은 채 손바닥에 상처만 입었다. 남들이 보이는 거북이 왜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을까. 현영은 가이드가 말한 뿔달린 물고기에게 찔린 것이 아니냐 묻지만 나는 그럴리가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계획과 의지에 따라 바뀌길 바라는 나에게 결혼은 어떠한 결과도 내비치질 않는다. 어두운 밤바다를 헤엄치는 현영은 여전히 위태위태해 보인다. 부표를 통해 그녀의 위치를 확인하려 하지만 까만 밤바다는 어떠한 경계도 알려주지 않는다.

소송으로 헤어지면 바닥을 본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상대방 바다가도 보지만 결국 내 바닥도 보게 되는 거예요.

러브 플랜트

이혼 후 퇴사한 뒤 꽃집을 운영하게 딘 남자. 그는 고백을 꽃으로 하는 사람들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허나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는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되고, 그 마음을 화분이나 꽃을 통해 전달하게 되는 아이러니. 이주변에서는 재혼이나 여자를 소개 받으라고 말을 해오지만 그는 그저 지켜볼 뿐이다. 이혼이란 시련을 겪은 남자의 사랑은 배려와 함께 한 층 성숙하고, 동시에 식물처럼 고요하다.

신인 작가답지 않은 섬세한 표현력이 매력적인 소설이다. 그 안에 녹여져 있는 삶의 경험들이 공감대를 쌓아가며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사랑 참 어렵다. 하지만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세상의 눈과 세상의 잣대에 맞추려는 시각이 아닐까. 완벽한 밀 플랜에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라는 현영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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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 상징 코드로 읽는 서울 인문 기행
조동범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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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자들은 인류의 최고 발명품으로 도시를 꼽곤 했다. 도시(都市)의 都는 사람이 사는 경계와 市 시장(사람이 모여 왁자지껄함을 표현)을 의미하는 시가 합쳐진 단어이다. 영어로는 city 또는 urban이라 번역되는데 city의 어원은 civitas로 사회라는 뜻에 가까우며, urban의 어원인 urbus는 물리적 환경을 뜻한다. 영어와 한자 모두 물리적 경계와 사람 사이가 모이는 환경이 합쳐서 도시를 표현한다. 저자의 말처럼 도시는 단순히 사람이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도시의 발전에는 삶의 다양한 흔적과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도시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우리의 삶, 그 중심을 찾는 일에 가깝다.

서울의 가진 위상은 여느 도시와는 다르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현재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수도로 자리매김하며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한다. 서울이란 그릇에 담긴 삶의 지표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저자는 무엇을 이야기하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을까.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은 사람들이 만든 흔적들, 아파트, 도시, 난지도, 신도시 등을 하나의 기호와 상징으로 그 안의 의미를 읽어가는 책이다. 도시는 거주하는 이들을 통해 물리적 공간에서 유기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얼핏 이 말은 보다 낭만적이며 근원적 그리움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런 것일까? 급격하게 발전된 도시는 기존 거주민을 쫓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만든다. 사람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나은 삶을 과시하기 위해 높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를 짓고 있다. 도시는 사람들의 욕망에 의해 내쳐지기도 하고 편협하게 밀어내기도 한다. 그 안에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실체가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는 것이다.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에는 다섯 가지의 항목을 통해 변화해가는 서울과 수도권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인 쓴 책이다 보니 도시마다 제목을 뽑는 능력이 탁월하다. 3장의 현대 도시 모습을 적은 제목들은 하나같이 빛을 발하는데, '을지로 '힙'지로와 빈곤 포르노의 사이에서' 성수동을 표현한 '공장과 카페, 물러설 수 없는 삶의 최전선' '잠실 롯데월드, 인공 낙원의 꿈과 숨겨진 현대성의 비극' 등 제목을 통해 드러나는 우리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빗대고 있다.

그 중 제목부터 시작해서 내용까지 을지로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모든 가치관을 뒤집기도 한다. '힙'하다는 핫플레이스를 통해 도시를 하나의 구경거리로 만들고 젠트리피케이션 불러온 '을지로 '힙'지로와 빈곤 포르노의 사이에서'편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성수동, 을지로 등 사람들로부터 소외받던 현장이 '힙'한 공간으로 탈바꿈 되었다. 문제는 그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일터의 현장이라는 점이다. 이 낡고 오래된 도시에는 그곳을 거쳐간 이들의 치열한 흔적이 남아있다. 그것은 폐공장이거나 낡고 오래된 도시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이 빈티지하며 레트로한 분위기가 좋다며 이를 인테리어 삼아 커피를 마신다. 그 낡은 공장은 어떤 이가 일자리를 잃은 흔적이며, 몰락을 기반으로 한다. 저자는 이를 빈곤 포르노라 말한다. 이러한 지역들은 한낱 유흥과 구경거리로 전락한 뒤, 유행이 지나면 버려지고 말 것이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높은 임대료 상승과 토착민들의 쫓길 위기뿐이다. 저자의 말처럼 '힙'지로의 골목에 남은 참담한 슬픔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 떠나지 않는다.

서울은 서울이 아닌 곳과 차별화된 지위를 갖고 싶어 하고, 수도권은 재방과의 차이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뿐만 아니라 특정 브랜드의 아파트는 그야말로 어느 아파트 브랜드의 이름처럼 캐슬이 되어 자신들만의 특별함을 갖고 싶어 한다. 근대도시는 이처럼 특정한 공간이나 지역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타자를 배제하고 자신들을 계급화하려고 한다.

신도시, 서울을 둘러싼 새로운 욕망과 계급

근대화된 서울이 잃어가는 것이 '사람'이라면, 새롭게 드러나는 도시의 형태에서 가장 크게 읽히는 것은 '욕망'이다. 자본주의라는 것이 그렇다. 산업화는 인간의 욕망, 지배 구조, 빈부의 격차를 동반하며 진행되지 않는가. 산업화 이후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는 이 지배 구조를 보다 공고히 한다. 얼핏 보기에 산업화가 보다 발전된 도시화를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도시화와 산업화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조금 아쉬운 부분은 저자가 생각하는 도시화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지 않다. 느낌상 사람의 흔적을 차곡차곡 쌓여야 한다는 감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서울의 급격한 발전과 기형적인 성장은 짧은 기간 성장한 고도성장과 맞물린다. 문화, 교육, 산업, 삶의 모든 편의 시설이 서울로 집중되었다. 마치 우리나라에 서울과 수도권만이 존재하는것 같은 기형적인 형태의 성장을 이어 온 것이다. 서울과 위성도시 그리고 그 외의 구분되는 삶의 풍경은 수도 서울이 끌어안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비극적 양상이다. 이는 지방도시의 몰락과 빈집이라 또 다른 문제점을 안은 채 우리 앞 과제로 남아 있다.

한겨레 시 쓰기 수업에서 조동범 작가의 시 창작 수업을 들은 기억이 있다. 한 5년 전쯤이었나? 학생들의 평가는 극단적이었는데 무한 찬사와 존경, 알 수 없는 극악함으로 나뉘었다.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문화센터 수업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들었던 수업 중 가장 극악한 난이도를 자랑함은 손에 꼽을 것이다.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학생들도 하나 둘 일탈과 결석이 이어졌다. 재능보다는 노력과 공부를 수업하는 내내 설파하셨기에, 이 글을 읽은 저자는 섭섭하다 생각할 수 있으나 취미와 등단을 목표로 한 학생들에게 대학원 논문 과정을 들고 온 듯한 어려운 이야기였다.(지금도 이 시인에겐 한 학기에 한 주제를 깊게 파는 대학원 수업이나 연구원이 가장 어울린다 생각한다.) 당시에 근대화와 도시 그리고 미학서를 엄청 파고 계셨는데, 뒤에 각주를 보니 이후로도 어마 무시하게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신 듯하다.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은 그간 공부한 지식을 통해 서울과 세부적인 도시까지 적용하여 분석한 결과물이자. 이렇게 공부했으니 억울해서 쓴 책이 이 아닐까란 생각조차 들 정도다. 덕분에 우리는 서울이란 지역이 가진 근현대적 의미를 '산업화'와 '도시의 욕망'이란 관점에서 한 번 더 되짚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집요함이라 해야 할까. 이 책은 도시문화를 연구하는 학생들이 한 번쯤은 읽거나 교재로 써도 무색하지 않은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저자가 얼마나 씹고 되새겼는지 문장은 간결하고 이해가 쉬워 감사한 마음뿐이다.

#100년의서울을걷는인문학 #조동범 #도마뱀출판사 #인문학 #책추천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654919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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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진리를 훔치다 - 철학자들의 예술가
김동국 지음 / 파라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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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어렵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잘 읽히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선 어렵다는 말이 적합할지 모른다. 잘 읽히지 않고 페이지는 넘어가지 않는다. 문장이 어려운 것일까. 허나 이 책의 본문에는 고유 명사나 전문 용어를 쓰고 있지 않다.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책은 읽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사유를 가지고 온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 사유들이 만든 거대한 이미지와 담론이 철학이다.

심오함의 깊이 만큼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이해에 많은 시간을 요한다.

이 책은 철학자와 예술가가 진리를 위해 걷는 동반의 경로를 보여 준다. 메를로퐁티는 철학하는 세잔이며, 세잔은 그림 그리는 메를로퐁티이다. 하이데거는 철학하는 횔덜린이며, 횔덜린은 시 짓는 하이데거이다. 철학은 예술 속에서 자신을 보고 동시에 예술 또한 철학 속에서 자신을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20세기의 미술은 자연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담는 행위가 아니다. 또한 인간에 대해 사유하고 논하는 것은 철학의 영역만은 아니다. 문학, 미술, 철학 등과 나란히 인간의 문제를 논하며 그 사상을 공유하며 발전해가기 시작했다. 철학의 사상을 한 장의 그림이나 문장으로, 어떤 철학자는 자신의 사상을 소설로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정점에 끌어 올린 것은 미학의 개념이다. 20세기 이후 철학적 주제의 핵심이 된 미학과 미학적 논의는 예술이란 카테고리안에 철학과 미술, 문학을 함께 꿰어가고 있는 것이다.

예술을 사유함으로써 근대적 사유는 탈근대적 사유로 변화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베케트가 아도르노의 사유의 대상이라고 보다, 아도르노가 베케트의, 하이데거가 횔덜린의, 메를로퐁티가 세잔의 어떤 결과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예술이 철학을, 혹은 철학이 예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철학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첫 장 하이데거와 횔델린의 사이에서 주고 받은 편지와 그를 통해 정의하는 시, 푸코와 마그리트가 주고 받은 편지와 파이프의 그림을 통해 예술과 철학이 서로의 뮤즈가 된 순간들을 엿볼 수 있다. 예술은 철학에다 미학이란 아름다움을 주었다면 철학은 예술에게 보다 숭고한 깊이를 더해준 것이다.

시인은 창조하는 자라기보다 해석하는 자이며, 기억하고 상기하는 자이며, 신들과 민족의 사이에 있는 자입니다. 그는 그렇게 " 내던져진" 자입니다.

횔덜린과 시의 본질 중에서

위에서도 소개했지만, 휠덜린과 하이데거가 주고 받은 편지와 그를 통해 시를 정의하는 부분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글을 쓰는 이들이라면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구절이 아닌가 싶다. 위의 구절 다음에 등장하는 횔덜린의 고독을 설명하는 문장은 특히나 아름답다. "언어 속에서 존재의 진리를 건립할 수 있는 시인" 이 하나의 찬사를 위해 시라는 언어를 계속해서 다듬어 왔던 것이 아닐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가장 즐겁게 봤던 것은 여러 부분으로 인용된 보르헤스의 작품들이다. 확실히 보르헤스의 소설은 실험적이고 어렵다. 철학자들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였음이 분명하다. 시뮬라크르를 단순히 가상, 상징으로 생각한 플라톤의 이데아와 달리 보르헤스의 글에는 영토가 사라진 땅에서 스스로 영토가 되고자 하는 지도가 등장한다. 사소 하지만 이 크나큰 아이러니가 물고 온 새로운 개념. 새로운 시뮬라크르는 원본 없는 시뮬라크르이며 세계는 이미 시뮬라크르의 세계에 묻힌 뒤라는 것이 보드리야르의 주장이다. 우리는 이미 시뮬라크르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개념처럼 시뮬라크르는 가상이 아니라, 가상이면서 실재로 파악되는 존재이다. 마치 매트릭스를 보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철학과 예술을 변주하고 있기에 독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듯 하다. 목차에 나오는 개념에 응용된 다양한 예술작품을 함께 볼 수 있어 눈이 즐거웠고, 그 작품이 가진 의미를 한 번 더 새길 수 있어 좋았으나... 문제는 내가 이 책의 내용을 30%는 이해했냐는 것이다... 책꽂이 한 켠에 두고 지적 사유가 필요한 순간 평생 읽을 책임에 분명하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650548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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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순 - 2014년 제3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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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몬순은 줌파 라히리 작가의 표절 또는 오마주로 보이는데 이건 진짜 너무 하지 않은가. 20대 작가의 팬으로써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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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픽션
조예은 외 지음 / 고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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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년 전 SF가 문학에선 비주류였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시에 글을 쓰는 작가들은 상상력과 SF를 사랑하는 마음 그 두 가지 만이 있었던 것 같다. 90년대 우리 옆 동네에서 좀비가 UFO가 뭐든 나올 것만 같은 '우리 옆 동네 (혹은 우리 뒷동네) SF' 스타일 앤솔로지. SF 맛 좀 봤다면 이건 선물이자 축복 같은 앤솔로지가 아닐까.

수능과 입시 햄버거와 학원 괴담, 한국에서 노동을 하게 된 뱀파이어와 떡볶이의 상관관계, 사건 진술조서에 등장한 UFO, 광화문 인근을 수호하는 노병들, 자신을 시민이라 주장하는 살인 병기 로봇까지. 다양한 소재들을 비틀고 두들겨 색다른 이야기를 펼쳐냈다.

개인적으로 광화문이라는 친숙한 소재와 우리 주변에 익숙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지하철의 수호자들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노병들로 영웅으로 볼 수 있을까. 최근 몇 년 사이 태극기 부대라는 이미지는 우리가 가진 고유의 것들을 많이 퇴색 시켰다. 그 사이 완충 지대가 없다면 소설을 과거와 같이 순수한 눈으로 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소설이 슬픈 것이 아니라. 세상이 슬프게 바뀌었다.

한때는 SF 그 자체였던 이미지들이 이제는 비주류가 되어 찾아왔지만, 그때의 작가들은 보다 단단해져 고마웠다. 이 책의 하나의 장르가 되어 계속 키치 하고 마이너하게 이어지길 기대한다. 보다 깊게 보다 넓게 보다 연속적으로. 팬으로서 욕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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