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진리를 훔치다 - 철학자들의 예술가
김동국 지음 / 파라북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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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어렵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잘 읽히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선 어렵다는 말이 적합할지 모른다. 잘 읽히지 않고 페이지는 넘어가지 않는다. 문장이 어려운 것일까. 허나 이 책의 본문에는 고유 명사나 전문 용어를 쓰고 있지 않다.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책은 읽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사유를 가지고 온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 사유들이 만든 거대한 이미지와 담론이 철학이다.

심오함의 깊이 만큼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이해에 많은 시간을 요한다.

이 책은 철학자와 예술가가 진리를 위해 걷는 동반의 경로를 보여 준다. 메를로퐁티는 철학하는 세잔이며, 세잔은 그림 그리는 메를로퐁티이다. 하이데거는 철학하는 횔덜린이며, 횔덜린은 시 짓는 하이데거이다. 철학은 예술 속에서 자신을 보고 동시에 예술 또한 철학 속에서 자신을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20세기의 미술은 자연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담는 행위가 아니다. 또한 인간에 대해 사유하고 논하는 것은 철학의 영역만은 아니다. 문학, 미술, 철학 등과 나란히 인간의 문제를 논하며 그 사상을 공유하며 발전해가기 시작했다. 철학의 사상을 한 장의 그림이나 문장으로, 어떤 철학자는 자신의 사상을 소설로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정점에 끌어 올린 것은 미학의 개념이다. 20세기 이후 철학적 주제의 핵심이 된 미학과 미학적 논의는 예술이란 카테고리안에 철학과 미술, 문학을 함께 꿰어가고 있는 것이다.

예술을 사유함으로써 근대적 사유는 탈근대적 사유로 변화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베케트가 아도르노의 사유의 대상이라고 보다, 아도르노가 베케트의, 하이데거가 횔덜린의, 메를로퐁티가 세잔의 어떤 결과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예술이 철학을, 혹은 철학이 예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철학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첫 장 하이데거와 횔델린의 사이에서 주고 받은 편지와 그를 통해 정의하는 시, 푸코와 마그리트가 주고 받은 편지와 파이프의 그림을 통해 예술과 철학이 서로의 뮤즈가 된 순간들을 엿볼 수 있다. 예술은 철학에다 미학이란 아름다움을 주었다면 철학은 예술에게 보다 숭고한 깊이를 더해준 것이다.

시인은 창조하는 자라기보다 해석하는 자이며, 기억하고 상기하는 자이며, 신들과 민족의 사이에 있는 자입니다. 그는 그렇게 " 내던져진" 자입니다.

횔덜린과 시의 본질 중에서

위에서도 소개했지만, 휠덜린과 하이데거가 주고 받은 편지와 그를 통해 시를 정의하는 부분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글을 쓰는 이들이라면 한 번은 꼭 읽어야 할 구절이 아닌가 싶다. 위의 구절 다음에 등장하는 횔덜린의 고독을 설명하는 문장은 특히나 아름답다. "언어 속에서 존재의 진리를 건립할 수 있는 시인" 이 하나의 찬사를 위해 시라는 언어를 계속해서 다듬어 왔던 것이 아닐까.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가장 즐겁게 봤던 것은 여러 부분으로 인용된 보르헤스의 작품들이다. 확실히 보르헤스의 소설은 실험적이고 어렵다. 철학자들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였음이 분명하다. 시뮬라크르를 단순히 가상, 상징으로 생각한 플라톤의 이데아와 달리 보르헤스의 글에는 영토가 사라진 땅에서 스스로 영토가 되고자 하는 지도가 등장한다. 사소 하지만 이 크나큰 아이러니가 물고 온 새로운 개념. 새로운 시뮬라크르는 원본 없는 시뮬라크르이며 세계는 이미 시뮬라크르의 세계에 묻힌 뒤라는 것이 보드리야르의 주장이다. 우리는 이미 시뮬라크르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개념처럼 시뮬라크르는 가상이 아니라, 가상이면서 실재로 파악되는 존재이다. 마치 매트릭스를 보는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철학과 예술을 변주하고 있기에 독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듯 하다. 목차에 나오는 개념에 응용된 다양한 예술작품을 함께 볼 수 있어 눈이 즐거웠고, 그 작품이 가진 의미를 한 번 더 새길 수 있어 좋았으나... 문제는 내가 이 책의 내용을 30%는 이해했냐는 것이다... 책꽂이 한 켠에 두고 지적 사유가 필요한 순간 평생 읽을 책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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