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어렵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 잘 읽히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선 어렵다는 말이 적합할지 모른다. 잘 읽히지 않고 페이지는 넘어가지 않는다. 문장이 어려운 것일까. 허나 이 책의 본문에는 고유 명사나 전문 용어를 쓰고 있지 않다.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책은 읽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하나의 문장이 하나의 사유를 가지고 온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온 사유들이 만든 거대한 이미지와 담론이 철학이다.
심오함의 깊이 만큼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이해에 많은 시간을 요한다.
이 책은 철학자와 예술가가 진리를 위해 걷는 동반의 경로를 보여 준다. 메를로퐁티는 철학하는 세잔이며, 세잔은 그림 그리는 메를로퐁티이다. 하이데거는 철학하는 횔덜린이며, 횔덜린은 시 짓는 하이데거이다. 철학은 예술 속에서 자신을 보고 동시에 예술 또한 철학 속에서 자신을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20세기의 미술은 자연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담는 행위가 아니다. 또한 인간에 대해 사유하고 논하는 것은 철학의 영역만은 아니다. 문학, 미술, 철학 등과 나란히 인간의 문제를 논하며 그 사상을 공유하며 발전해가기 시작했다. 철학의 사상을 한 장의 그림이나 문장으로, 어떤 철학자는 자신의 사상을 소설로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정점에 끌어 올린 것은 미학의 개념이다. 20세기 이후 철학적 주제의 핵심이 된 미학과 미학적 논의는 예술이란 카테고리안에 철학과 미술, 문학을 함께 꿰어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