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느린 걸음
김병훈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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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사진을 찍는 것이다. 극악할 정도로 사진 찍는 실력이 형편없어 지인이 우스갯소리로 정말 디자인 전공한 게 맞는지 묻곤 했다. 동경인지는 모르겠으나 멋진 그림과 사진을 보는 걸 어려서부터 즐긴 편이다. 전시회나 예쁜 사진과 글이 담긴 에세이집을 보면 약해질 수밖에 없다. 흑백사진을 좋아하고, 과거 추억을 되살리는 유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내게 있어 '가끔은, 느린 걸음'은 취향 모음집에 가까운 책이다.

일상의 풍경을 담은 사진과 짧은 이야기를 담은 책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 좋다. 글이 담긴 사진집을 한 권 선물 받은 기분이다.

시간이 디지털 개념이라면 세월은 지독히 아날로그적인 개념이다

헌책방에 파묻혀 중에서

앨범을 들춰보듯 펼쳐지는 이야기

이제는 보기 힘든 필카 감성이 가득한 책인데, 오래된 앨범을 들춰 보는 듯한 책이다. 사진과 함께 실린 이야기는 저자의 추억을 담고 있는듯하다. 작가가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찍은 사진들을 모아 과거의 추억들과 함께 만든 책처럼 보인다.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세월이다. 바래고 낡아가는 것들 이제는 오래되어 발걸음도 멀어지는 것들에 대한 가치를 담고 있다.

필카 감성이라고 기술했는데, 책에 실린 사진들은 작가가 직접 찍은 필름 카메라 사진이라 한다. 90년대부터 200년대 초반까지 작가가 전시나 프로젝트를 통해 담아낸 도시의 삶과 풍경이라고 하는데, 지금과 다른 풍경을 보면서 달리진 것은 사람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도시가 짧은 시간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해왔음을 저자가 담아낸 풍경을 통해 들춰볼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사진 속의 기억들은 이미 퇴색되어 불완전하기에 더욱 애정 어리다

잠상과 기억 중에서

청계천 복개 공사가 이루어져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이 2005년이라 한다. 벌써 17년이 지난 것 같은데, 그 시간은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오래되지 않을 일들이 너무 멀어져 버려 이제는 감각하지 못한다.

모든 일상은 어느새 과거가 되어 버린다. 눈치채지 못한 흐름 속에서 차츰 잊혀 간다.

저자가 들려주는 지난 간 일들의 감회와 기억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소중하지만 이제는 멀어져 버린 돌아오지 못할 삶의 이야기들. 이미 퇴색되어 불완전해져버린 기억들. 이들이 기억의 책장에서 오롯이 빛나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 역시 그 안에 함께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일까. 그래서 묻히기 전에 한 번 더 보듬어주고 소중히 하라는 이야기를 전해주고자 함일까. 책을 넘기는 동안 지나간 하루와 삶이 무엇보다 소중해지도록 만드는 책이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822793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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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솔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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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나를 설레게 했던 작품집이 이제는 의무감이 된 듯하여 아쉽다 보석같던 작품들을 찾아내던 선구안은 어디로 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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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리카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7
김지현 지음 / 호밀밭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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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삶에 대한

이해와 극복

파브리카의 이야기는 특별한 것이 없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듯 일상적인 이야기들, 일상과 삶의 갑갑함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각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어느 순간 삶을 이해하게 된다. 나에게도 이어질 부모의 삶, 노력해도 바뀔 수 없는 사회구조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이 처절한 삶의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답습되는가.

단편 '파브리카'의 주인공이 원하는 것은 새 얼굴이다. 얼굴은 유전의 핵심적 요소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얼굴이 세상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새 얼굴을 찾는 것이다. 바뀐 새 얼굴이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가져다줄 테니. '흰 콩떡'에서는 쉬어버린 아버지의 삶과 떡이 배치된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은데, 이해가 되는 아버지의 삶. 흰 콩떡의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건 떡이 쉬기 전에 꾸역꾸역 씹는 것이다. 결혼 이후 독립한 딸과 자식의 삶에 자신의 삶이 되어버린 어머니. 부모의 삶이 굴레처럼 이어진다. 엄마와 딸, 두 사람의 관계는 여기저기 새는 집과 같다. '누수'의 주인공은 어머니에게 사실을 숨긴 채 집을 수리한다. 작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집은 고쳐져야 한다.

아이고 아무리 오래된 집이라 케도 누수 안 나는 집은 평생 가도 안 나는데. 진짜 재수 안 좋으면 난다 카든데

누수 중에서

인생의 뽑기운

모두가 알 철학자 니체는 삶의 형태는 직선보다 원에 가깝다고 말했다. 삶의 모든 형태는 처음과 비슷한 형태로 반복된다는 것인데, 매일 반복되는 회사 생활에 가깝다. 퇴근의 기쁨은 잠깐이고 또다시 지옥철과 업무 스트레스는 반복될 것이다. 그 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반복되는 고난을 극복할 지혜와 삶의 가치를 발견해야 하고 그 괴로움까지 끌어안는 성숙함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곱씹다 보면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합리한 불행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어디까지 받아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들이 끌어안은 불행의 끝에 마주할 수 있는 건 소설 '방'의 주인공처럼 늙고 추레해진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자신이다. 저항해도 바뀔 수 없는 결정론적 운명론은 삶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에서 파브리카에 실린 단편들은 하나같이 독한 맛이다.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잘못된 선택과 판단의 결과가 아니다. 그저 운이 나쁜, 불행의 중첩에 가깝다.

그중 가장 독한 맛은 가족이다. 가족은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다. 개인의 선택이 아닌 운명이자 우연에 가깝다. 누수가 나는 집을 뽑은 주인공처럼 가족 역시 잘못 걸린 뽑기 운에 가깝다.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잔인하고 독할 뿐이다.

다시 천천히 몸을 밀었다. 조금씩 가벼워진다. 숨을 들이마시지도 않는데 몸이 팽창하는 것이 느껴진다. 다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만이 유일한 생의 이유인 것처럼. 그 어떤 목적도 없는 것처럼 배를 민다.

구인 중에서

도망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빛이 왔다. 그의 제안은 물속에 잠긴 나를 건져 올렸다. 새 얼굴을 드릴게요. 그거면 충분했다

파브리카 중에서

타인이 노래하는

지옥도를 되짚으며

내가 나로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를 이루는 무수한 운명론적의 결과물로 씨실과 날실처럼 이어진다. 반복되는 지옥, 개인의 삶. 동일하거나 혹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을 보여주며 저자는 무엇이 구원이자 극복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운명의 지옥도는 어떤 구원을 필요로 할까. 어떤 구원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지옥을 끊은 유일한 선택이 과거를 나를 지우고, 나를 부정하는 것으로 밖에 바꿀 수 없는 것일까?

부모의 삶을 대물림하는 청년세대, 파브리카는 슬픈 운명론적 보고서이다. 각 주인공들은 운명의 굴레 속에서 각자 벗어날 길을 모색한다. 그들의 행보는 너무나 작고 소소한 일상의 부정에 가깝다. 이 소소한 행보가 앞으로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알 수 없다. 보다 나은 삶을 가져다주면 좋겠지만, 더 깊은 수렁이 이어질 수도 없다. 신 이외에 누구도 확답할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새로 생긴 얼굴을 통해 맞이할 새로운 인생이 반복되는 삶에 갇힌 개인의 불행을 끊어 낼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적어도 주인공들과 같은 선택이 아닌,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마주할 수 있는 행복을 찾길 바란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81919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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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 - 변호사가 바라본 미디어 속 소수자 이야기
백세희 지음 / 호밀밭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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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간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시위를 했다. 문이 열린 지하철에 바퀴를 올리거나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면서 지하철 운행을 지연시켰다는 평이다. 많은 이들의 불편함을 호소했고, 언론은 지연되는 지하철에 우려와 지연시간을 기술하며 불편함을 제목으로 단다. 동시에 많은 시민들이 장애인의 시위 불편을 못 참겠다 표현한다. 그 안에 장애인들이 그동안 겪어왔던 불편함에 대한 공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서울신문에서 나온 보도만이 시민들이 "장애인 시위 불편 감수""장애인 이동권 이슈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보도했다. 그리고 이러한 뉴스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최근 지하철 지연 관련하여 보도 중 하나는 이러했다. "욕먹는 것보다 무관심이 무서워" 신기하게도 지워지고 비치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그들이 모습을 보일 때는 "이슈"가 되는 순간뿐이다. 권리를 찾기 위해 그들은 문제아가 되어야 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내몰았을까.

'투명하고 납작한 사람들'의 저자는 드라마나 티비에 등장하는 그들의 이미지와 분위기가 그들을 만든다 표한다. 만들어진 이미지가 사회로 차별과 혐오, 편견이 함께 이동한다.

드라마와 영화는 재미를 무기로 혐오를 양산하곤 한다.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2018~2019)은 극 중 테러가 발생하자 배우가 “테러범은 조현병 환자였습니다. 망상에 빠져 폐하를 공격한 모양이에요”라고 말한 장면이, 같은 방송사의 드라마 <여우각시별>(2018)에서는 조현병 환자가 복용해야 할 약을 두고 인천공항 출국장 안으로 들어간 상황에서 남자주인공이 “상대는 조현병으로 의심되는 환자고,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요. 혼자 떨어지지 마세요”라고 여주인공에게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두 드라마 모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정지도를 받았다.

사회가 소수자로 표현하는 방법 중 다수는 그들을 '우스꽝스럽게''보다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다. 일상에서 차별은 농담거리로 등장하곤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덤벼드는 이야기라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중립적인 어조로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하지만 이 안에 등장하는 소수자는 남의 이야기 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지방 출신이라, 누군가는 여성이라서, 다른 누군가는 어린이거나 또는 노인이라서, 어떤 이는 경비원이나 배달노동자 혹은 파출부라서 소수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소수자의 위치를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성애자과 동성애자로 나누지만 세분화하면 소수자의 위치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내가 혹은 나의 가족, 지인 누구라도 또는 언제라도 소수자의 위치에 설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위치에서는 주류가 되어 타인에게 가해를 가하기도 하고, 또 어떤 위치에선 소수자로 피해를 받기도 한다.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너무도 일상적이라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게 만든다.

대중이 평균적인 노동자의 모습을 회사에 다니는 정규직 근로자의 모습으로 상정하고 대중문화 콘텐츠가 이런 안일한 인식을 확대·재생산해 내기 급급하다면 노동 인권의 개선은 요원하다. 과거에는 ‘정규직은 주류, 비정규직은 비주류’라는 도식이 통용될 수 있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급변하는 세상, 노동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번듯한 사회 구성원으로 가는 길 중에서

대한민국의 직업이 달라지고 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유튜버가 월 일억이 넘는 소득을 벌기도 한다. 매장을 내지 않고 인터넷상의 점포를 통해 더 큰 매출을 올리는 이들도 존재한다. 노동은 다양화되고 세분화되는 가운데 사회는 그 안의 빛 또는 어둠 양극단을 바라보고 부각한다. 매체와 사회가 다루는 방식은 자극과 흥미다. 덕분에 그 안에 가장 중요한 핵심을 간과하게 된다.

트랜스젠더는 하나의 이미지로 다루어진다. 짙은 화장과 과한 옷차림. 트랜스젠더와의 인터뷰를 통해 할리우드가 트랜스젠더가 묘사하는 방식과 사회에 끼친 영향을 다룬 미국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 트랜스 리브스 온 스크린'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미국인 80%는 사적으로 알고 있는 트랜스젠더가 없으매도 공통적으로 이미지화된 트랜스젠더가 존재한다. 우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트랜스젠더 남성보다 여성을 다루는 수가 압도적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글을 읽으며 소름 끼쳤던 사실은 이 문장을 읽기 전까지 트랜스젠더 남성의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조금도 그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장애인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잔인하다.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에서는 치료감호소 안의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정신과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왜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사회는 변화하고, 세상은 깊어지고 있다. 조현병 환자들은 살인자가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가련한 존재들이지만, 그들을 돌보는 가족들은 가난이나 무지로 인해 가족을 방치하거나 혹은 사지로 내몰기도 한다. 언론은 범죄가 발생한 배경은 다루지 않은 채 범죄에 초점을 맞춘다. 범죄를 일으킨 이의 조현병을 부각하면서, 사회는 조현병 환자를 위험한 폭탄처럼 대하고 있다. 섣부른 오해로 사회의 적이 되어 버린 사람들, 누가 이들을 구원해 줄 수 있을까?

균열은 바로 독자들로부터 시작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와 진실 중에서

알게 모르게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소수자의 삶과 일상. 모든 국민들은 법앞에 평등하다는 공허한 진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무엇이 있을까. 최근 방영한 '우리들의 블루스'가 떠오른다. 발달장애인 영희와 영옥 자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장애인 가족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식당을 가는 것조차 망설여야 하는 삶. 가족을 말하면서 '모자란 애는 함께 살 수 없는 세상이니까'라고 말해야 하는 삶. 슬프지만 이것이 현실이라고 말하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영희와 영옥을 바라보면서 왜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을까. "영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어" 이 대사에 왜 눈물을 쏟아야 했을까. 사회와 세상이, 그리고 나의 시선이 어떻게 장애인을 바라보고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에서 좋은 예로 나올만한 드라마가 아닐까 싶어 찾아봤으나 등장하지 않아 아쉬웠다.

세상에 그림자만 존재한다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희망의 씨앗이 있다고 '우리들의 블루스'같은 드라마가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이런 시선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이런 바람직한 시선에는 아낌없는 애정과 응원을 보내도록 하자. 세상의 편견을 깨뜨리는 균열은 독자와 시청자들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들의 블루스'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 이런 책과 작품들이 더 많아져 사회의 곳곳을 비춰주길 바란다. 더 이상 투명하고 납작해져서 보이는 사람들이 없도록 말이다.

https://blog.naver.com/sayistory/222809181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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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 - 개정판 문학동네포에지 8
박정대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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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읽으면 계속 읽게 되는 시. 계속 사 모으게 되는 시집 무슨 마법의 주술을 걸었기에 찾게 되는지 신기하기만하다 정말 매력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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