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리카 ㅣ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7
김지현 지음 / 호밀밭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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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는 삶에 대한

이해와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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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브리카의 이야기는 특별한 것이 없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듯 일상적인 이야기들, 일상과 삶의 갑갑함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각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어느 순간 삶을 이해하게 된다. 나에게도 이어질 부모의 삶, 노력해도 바뀔 수 없는 사회구조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이 처절한 삶의 비극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답습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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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파브리카'의 주인공이 원하는 것은 새 얼굴이다. 얼굴은 유전의 핵심적 요소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얼굴이 세상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새 얼굴을 찾는 것이다. 바뀐 새 얼굴이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가져다줄 테니. '흰 콩떡'에서는 쉬어버린 아버지의 삶과 떡이 배치된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은데, 이해가 되는 아버지의 삶. 흰 콩떡의 주인공이 할 수 있는 건 떡이 쉬기 전에 꾸역꾸역 씹는 것이다. 결혼 이후 독립한 딸과 자식의 삶에 자신의 삶이 되어버린 어머니. 부모의 삶이 굴레처럼 이어진다. 엄마와 딸, 두 사람의 관계는 여기저기 새는 집과 같다. '누수'의 주인공은 어머니에게 사실을 숨긴 채 집을 수리한다. 작은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집은 고쳐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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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아무리 오래된 집이라 케도 누수 안 나는 집은 평생 가도 안 나는데. 진짜 재수 안 좋으면 난다 카든데

누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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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뽑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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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알 철학자 니체는 삶의 형태는 직선보다 원에 가깝다고 말했다. 삶의 모든 형태는 처음과 비슷한 형태로 반복된다는 것인데, 매일 반복되는 회사 생활에 가깝다. 퇴근의 기쁨은 잠깐이고 또다시 지옥철과 업무 스트레스는 반복될 것이다. 그 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반복되는 고난을 극복할 지혜와 삶의 가치를 발견해야 하고 그 괴로움까지 끌어안는 성숙함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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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곱씹다 보면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합리한 불행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어디까지 받아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들이 끌어안은 불행의 끝에 마주할 수 있는 건 소설 '방'의 주인공처럼 늙고 추레해진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자신이다. 저항해도 바뀔 수 없는 결정론적 운명론은 삶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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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에서 파브리카에 실린 단편들은 하나같이 독한 맛이다.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잘못된 선택과 판단의 결과가 아니다. 그저 운이 나쁜, 불행의 중첩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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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가장 독한 맛은 가족이다. 가족은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다. 개인의 선택이 아닌 운명이자 우연에 가깝다. 누수가 나는 집을 뽑은 주인공처럼 가족 역시 잘못 걸린 뽑기 운에 가깝다.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잔인하고 독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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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천천히 몸을 밀었다. 조금씩 가벼워진다. 숨을 들이마시지도 않는데 몸이 팽창하는 것이 느껴진다. 다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것만이 유일한 생의 이유인 것처럼. 그 어떤 목적도 없는 것처럼 배를 민다.

구인 중에서

도망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빛이 왔다. 그의 제안은 물속에 잠긴 나를 건져 올렸다. 새 얼굴을 드릴게요. 그거면 충분했다

파브리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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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노래하는

지옥도를 되짚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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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로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를 이루는 무수한 운명론적의 결과물로 씨실과 날실처럼 이어진다. 반복되는 지옥, 개인의 삶. 동일하거나 혹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을 보여주며 저자는 무엇이 구원이자 극복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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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지옥도는 어떤 구원을 필요로 할까. 어떤 구원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지옥을 끊은 유일한 선택이 과거를 나를 지우고, 나를 부정하는 것으로 밖에 바꿀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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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삶을 대물림하는 청년세대, 파브리카는 슬픈 운명론적 보고서이다. 각 주인공들은 운명의 굴레 속에서 각자 벗어날 길을 모색한다. 그들의 행보는 너무나 작고 소소한 일상의 부정에 가깝다. 이 소소한 행보가 앞으로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알 수 없다. 보다 나은 삶을 가져다주면 좋겠지만, 더 깊은 수렁이 이어질 수도 없다. 신 이외에 누구도 확답할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새로 생긴 얼굴을 통해 맞이할 새로운 인생이 반복되는 삶에 갇힌 개인의 불행을 끊어 낼 수 있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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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적어도 주인공들과 같은 선택이 아닌,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마주할 수 있는 행복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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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sayistory/22281919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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