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는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신작을 기다리며 읽곤 했는데, 어느 순간 그들의 감성에서 독립한 느낌이 든다.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이라는 책이 보여 처음에는 신작인 줄 알고 펴 들었으나 알고 보니 십 년 전에 이미 읽었던 책이었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한 이유도 책을 읽고 기억을 못 해서였는데, 확실히 서평쓰기 이후로 기존에 읽었던 책을 기억 못 해서 다시 읽는 일은 크게 줄었다. 이래서 정리라는 게 중요한듯하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반짝반짝 빛나는의 주인공들의 이후 이야기를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여전히 셋이지만, 서로의 연인은 아니다. 이 소설의 매력은 모순이다. 따뜻하면서 동시에 쓸쓸하고, 안정적이면서 위태로워 보이는 이상한 분위기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책을 펼쳐든 순간 잊고 있던 이야기를 만났다. 신문에 실린 부고 기사를 본 뒤 조문을 간다는 시미즈 부부이야기롤 당시 나는 이 단편을 꽤 좋아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를 어떤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하지 못해 다른 일본 소설을 뒤적이기도 했다. 생각도 못 한 책에서 툭 튀어나온 이야기는 잊고 있던 절친을 갑작스럽게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십 년이란 시간을 지나 다시 만난 에쿠니 가오리는 이십 대 시절 갓 사회에 진출했을 당시 느꼈던 여러 감성을 떠오르게 한다. 그때는 이 기분을 공감해 줄 수 있는 작가의 책이 무척이나 특별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 타워나 호텔 선인장, 반짝반짝 빛나는, 냉정과 열정 사이 등 다양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 감성을 잊어버린 것일까, 간직한 것일까, 지금은 빛이 많이 바래버린 아쉽지만 소중한 기억들이다.
한 문장을 읽는데도 에쿠니 가오리임이 느껴지는 그녀의 문장들. 독특하고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이상한 선택과 일탈을 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야기는 전혀 과하지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다. 그녀의 문장이 주는 힘일 테지. 일상을 이야기하는 듯 소소하게 흘러가는 문장들. 누군가의 일기, 에세이를 읽는 듯 소설 속 이야기는 술술 읽힌다. 그 속에 담긴 섬세한 그녀의 감성들은 읽는 이들에게 마법과 같은 따뜻한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