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상 속의 삶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6월
평점 :
앤드루 포터의 문장들은 가을날 늦은 오후의 햇살처럼 찾아온다. 비스듬히 기울어져 방 안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비추고, 그곳에 오랫동안 쌓여 있던 먼지의 입자들을 눈부시게 들추어내는 그런 빛 말이다. 그의 첫 장편이 남긴 뜻밖의 평이함 속에서, 이 작가는 본래 짧은 호흡의 마술사가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었다. 눈부신 데뷔작이 던진 강렬한 인상과 그 뒤를 이은 단편들의 서늘한 아름다움에 너무 깊이 매료되었던 탓이다. 그럼에도 다시 그의 신작 《상상 속의 삶》을 펼쳐 든 것은, 그가 이야기의 이면에 숨겨둔 삶의 어떤 기묘한 균열들을 아주 잊지는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르나 형식의 외피를 벗겨내고 나면, 그것은 결국 그가 평생을 바쳐 응시해 온 어떤 거대한 상실의 무늬를 함께 읽어내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이 소설은 '세련된 미국식 멜랑콜리의 정수'이자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렌즈를 통해 바라본 중년의 통과의례'일지 모른다. 앤드루 포터 소설의 근저에 흐르는 것은 언제나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대한 기나긴 애도와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대한 응시'다. 데뷔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 찬란한 슬픔으로 반짝이던 기억의 파편들은, 《사라진 것들》에 이르러 삶의 모퉁이마다 흘리고 온 소중한 것들을 향한 쓸쓸한 시선으로 이어졌다. 비록 《어떤 날들》에서 그 유려한 호흡이 잠시 느슨해졌을지언정, 그의 세계를 지탱하는 기둥은 언제나 지나간 시간의 중력이었다. 그리고 이번 신간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미 지나가 버린 기회와, 가지 않은 길에 머물러 있는 유령 같은 자아들을 향한 쓸쓸한 연민'이 짙게 흐르고 있다.
포터는 결코 서사를 거칠게 몰아붙이는 작가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인물들이 지닌 감정의 조도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데 탁월한 장인이며, 장편이라는 캔버스 위에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 즉 '시간의 마모를 견뎌낸 상실의 흔적을 채집하는 일'을 나직하게 수행해 낸다. 이 소설은 내게 아버지가 남긴 가장 고독한 유산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한때 가족의 우주였으나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린 아버지, 그가 흘리고 간 삶의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으는 일은 기억의 지도를 새로 그리는 작업과 같다. 조각을 맞출수록 아버지는 선명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낯선 이방인의 얼굴로 다가온다. 그 궤적을 쫓는 여정은 흘러간 세월을 향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가까운 핏줄이라는 안도감 속에서도 끝내 서로에게 가닿지 못했던 인간적인 한계의 확인이며, 아버지가 부재했던 그 기나긴 공백의 시간 동안 "우리가 함께했다면 도달했을 또 다른 우주"를 끊임없이 서성이는 서글픈 탐색이다. 아버지를 찾아가는 미스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더 이상 가닿을 수 없는 과거의 진실을 대면하는 한 남자의 내면적 누아르인 셈이다.
누군가가 남긴 과거의 흔적을 밟아가며 내 삶의 감춰진 지도를 해독하는 여정은 늘 팽팽한 긴장감과 아련한 서글픔을 동반한다.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주인공이 기억의 왜곡을 깨달으며 과거의 진실을 추적할 때 느꼈던 그 당혹스러운 서늘함, 혹은 영화 《애프터썬》에서 딸이 캠코더 영상 속 젊은 시절 아버지의 숨겨진 우울과 비밀을 더듬어 가며 그를 비로소 이해하려 애쓰던 먹먹함이 이 작품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이 미국적인 변주 속에서, 아버지가 사라진 공백을 추적하는 행위는 결국 "만약"이라는 유령 같은 가정이 만들어낸 '상상 속의 삶'과 조우하는 과정이다. 타인의 행적을 쫓는 그 서글픈 탐색은 결국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초라한 현재를 확인하는 일이며,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상상 속의 삶과의 슬픈 조우이자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일일 뿐이다.
이 소설은 서사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정서적 풍경화에 가깝다. 작가는 극적인 사건을 배치하는 대신, 인물의 내면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 차분하고 정교한 문장으로 독자를 물들인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두어야 한다는 냉혹한 진실을 알면서도, 인간은 왜 끊임없이 과거라는 무덤을 파헤치는가. 소설을 덮고 나면 밀려오는 것은 허무가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들에 대한 깊은 유대감이다. 비록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삶일지라도, 그 불가능한 가능성을 꿈꾸는 순간만큼은 우리의 영혼이 가장 뜨겁게 숨 쉬고 있었음을 이 책은 고백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책을 읽는 내내 스티비 닉스의 음악이 은은하게 동행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작가가 사소한 일상적 소품을 거대한 정서적 상징으로 치환하는 가운데, 이 작품의 중심을 관통하는 플리트우드 맥과 스티비 닉스의 음악적 장치가 특히 눈에 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본래 그들의 음악을 깊이 사랑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덕분에 텍스트 곳곳에 그들의 다양한 노래와 앨범 이야기가 끊임없이 언급되는데, 활자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스티비 닉스 특유의 애절하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리며 소설 특유의 쓸쓸한 정조를 채워나간다.
특히 차오와의 마지막 만남, 그 이별의 순간에 스티비 닉스의 〈Edge of Seventeen〉이 흘러나올 때 소설의 정조는 완벽하게 청각화된다. 차오가 자동차 창문을 열고 볼륨을 최대한 높여 틀었던 그 노래.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떠오르는, 심장 박동처럼 거칠고 집요하게 달리는 16비트의 기타 리프는 활자를 넘어 아득한 기억 속의 청각을 사정없이 뒤흔든다. 그 리프의 선율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순간, 마치 실시간으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듯한 강렬한 동질감이 찾아온다. 가슴을 세차게 뛰게 만드는 거친 리프와 뒤이어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애절한 목소리가 번져갈 때, 인물들이 가졌던 오랜 미련과 슬픔, 그리고 삶에 대한 찬란한 예찬은 거대한 음악적 소음 속으로 흡수되며 마침내 완벽하고 슬픈 정적을 완성한다. 그것은 문학이 음악의 영혼을 빌려와 인간의 미련을 위로하는 가장 감각적인 방식이다.
앤드루 포터는 우리가 살지 못해 더 찬란하게 반짝이는 그 '상상 속의 삶'이야말로, 지금의 우리를 지탱하는 가장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허구임을 증명해 냈다. 결국 삶이란 우리가 살지 못한 날들의 연속이며, 우리는 매일 밤 그 상상 속의 방들을 서성이는 존재들이다. 전편에 흐르는 감미로운 음악을 따라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그 서성임마저도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 있음을 느끼며 영혼을 뒤흔드는 깊은 울림과 함께 완벽한 정적을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