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의 멸종 - 기술이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 인간은 계속 인간일 수 있을까
크리스틴 로젠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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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하철을 타면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숙이고 매끄러운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다. 문득 나 역시 그 풍경의 일부였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묘해졌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 모든 것을 해결하는 편리한 세상이라지만, 정작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영양가 없는 즉각적인 자극뿐이었던 게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무언가 소중한 것을 스스로 지워나가고 있었다는 서늘한 자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1분도 안 되는 숏폼 영상으로 빈칸을 채우고, 기다림의 고독 속에서 피어나던 깊은 생각의 시간들을 내 손으로 멸종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서툰 말로 마음을 전하는 일보다 메시지 한 줄로 감정을 ‘처리’하는 게 편해졌다. 알고리즘이 골라준 음악을 듣고, 남들이 좋다는 맛집만 찾아다니며 삶을 직접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모니터 너머로 그저 편리하게 '구경'만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타인의 숨결을 느끼고, 상대방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짧은 순간을 포착하는 인간다운 감각들이 모조리 깎여 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서글프게 다가왔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내 마음속에 축적되는 깊이는 도리어 얕아지는 기분이었는데, 온전한 몰입과 아날로그적 소통이야말로 이제 가장 귀한 희소 자원이 되었다는 외침이 마음속에 묵직하게 박혔다.


다만 독서 과정에서 못내 아쉬웠던 점은 문장들이었다. 번역 어투가 다소 매끄럽지 못하고 뻑뻑해서 읽는 내내 글의 흐름을 툭툭 끊어놓는 기분이 들었다. 저자의 생각이 참 날카롭고 공감 가는데도, 이를 담아낸 문장들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텍스트에 온전히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번역의 걸림돌 때문에 중간중간 사유의 맥이 자주 끊기는 바람에, 아이러니하게도 아날로그적 집중을 강조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도리어 집중력이 흐려져 혼자 끙끙 앓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던진 질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매끄럽고 완벽한 디지털 세상에 갇혀, 조금은 상처받고 불편하더라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던 진짜 삶의 냄새를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책을 덮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손에 쥔 스마트폰의 화면을 끄는 것이었다. 이제는 의도적으로라도 전원 버튼을 누르고, 내 눈앞의 투박한 현실과 온전히 마주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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