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확실성의 시대 -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토비아스 휘터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평점 :
추천의 글
어려운 걸 이해하려면 진짜 이야기가 필요하다.
-추천사의 글 (by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이정모)
과학이 이토록 흥미진진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니….
이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처럼 긴장감이 넘치며 스펙타클하다.
1900년에서 1945년! 현대물리학의 황금기라고 불리우는 천재들의 찬란한 순간들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토비아스휘터의 《불확실성의 시대》 를 통해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수많은 실패와 도전을 함께 경험해보며 1900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1900년 베를린
20세기는 막스 플랑크에 의해 고전물리학과는 다른 새로운 양상으로 양자물리학이 시작하게 된다.
10의 마이너스 43초의 플랑크 시간, 플랑크 길이, 플랑크 질량……..바로 그 주인공인 막스 플랑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곳은 1900년 베를린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흑체가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가설과 씨름했다. 흑체복사 공식이다.
새로운 이론과 모델의 필요성을 일으킨 점에서 의미가 크고 플랑크가 양자가설을 발표한 이 시기를 양자물리학의 위대한 탄생으로 보고있다.
1903년 파리
마리 퀴리는 발표할 논문에 불길한 문장을 하나 적었다.
“방사선은 수수께끼이자 깊은 경찬의 대상이다. ”방사선은 저절로 생긴다. 아무런 원인 없이. 이 주장으로 마리 퀴리는 물리학의 토대인 인과 원칙을 흔들었다. 심지어, 에너지는 결코 사라지거나 무(無)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물리학의 철칙인 에너지보존법칙도 과감히 버렸다.1902년 여름 퀴리 부부는 마침내 목표에 도달했다. 그들은 0.1g쯤 되는 순수 라듐을 손에 쥐었다. 마리는 원소의 원자량을 정하고 주기율표에서 88번을 부여했다.
짜릿한 발견이다!
1905년 베른
평생 스포트라이트만 가득할 줄 알았던 천재 과학자인 아인슈타인. 물리학 연구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때 비로소 활짝 꽃을 피웠다. 1903년 12월 ‘전자기파 이론’을 발표했다. 이 이론은 나중에 ‘상대성이론’ 이라 불릴 것이다.
빛을 입자의 흐름으로 보는 것은 거의 이단에 가까웠다.
아인슈타인이 친구 하비히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거론하지 않은 다섯 번째 논문에 대해 말한다.
이 논문에서 E=mc^2 공식이 처음 등장한다.
1911년 케임브리지
덴마크의 어린 청년, 어른이 되다.
아인슈타인과 끝까지 논쟁에 논쟁을 이어나간 20세기 양자 역학의 역사를 연 천재 닐스 보어에 대한 이야기다. 보어의 목표는 원자의 작동 방식을 알아내는 것이다. 방사능이 원자 구조의 열쇠이다.
보어는 자신의 원자 모형으로 이제 이 스펙트럼을 아주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중력이 행성들을 태양 주변에 묶어두는 것처럼 전기 인력이 전자를 각자의 궤도에 잡아둔다.
1914년 뮌헨
보어는 세계적 수준의 물리학자지만 아주 형편없는 수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연구 논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은 방정식이 거의없다는 점이다. 공식에 능하고 아이디어가 풍부한 조머펠트의 손을 통해서 약점을 극복한다.
어쩌면 이 작업은 최초의 진정한 전 지구적 협업일 것이다.
1915년 베를린
그가 지금 몰두하는 작업은 뉴턴의 역학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모든 자연법칙은 특수상대성 이론의 틀 안에서 해명될 수 있다. 중력의 법칙만 뺀다면 말이다.” 바로 아인슈타인의 이야기다. 이혼, 내연녀와의 관계. 군대가 싫어 여권을 포기한 이야기….이 모든건 사회적으로 지탄받을수 있는 어찌보면 시시콜콜한 개인사 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수성의 ‘근일점 회전’을 설명했으며 8년의 고군분투 끝에 일반 상대성 이론을 논리적으로 완성하였다.
1920년 베를린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썼다.
“보어가 독특한 본능과 섬세한 감수성으로. 이 불안정하고 모순된 토대에서, 스펙트럼과 원자의 전자껍질의 주요 법칙뿐 아니라화학의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내게는 기적처럼 보인다. 그것은 사고 영역에 있는 최고의 음악성이다.“ 마치 음계처럼 소리들이 자리를 잘 잡고 있음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아인슈타인이 실패한 것을 보어가 해냈다. 보어는 스팩트럼선을 설명할 수 있었고 이 아이디어의 도움으로 플랑크의 복사공식을 도출했다. 그대신 고전물리학의 엄격한 인과관계를 버려야 했다. 이제부터 고전물리학과의 대립이 시작된 셈이다.
1922년 괴팅겐
보어는 주기율표의 원소 순서를 원자핵 주위의 전자 배열로 설명할 수 있다. 하이젠베르크와 닐스 보어의 만남은 꽤 의미있는 만남이었으라.. 양자이론이 무슨뜻인가? 에 대한 보어의 철학적인 대답은 수치와 확실한 측정에 대한 결과치가 아니다.
“먼지 알갱이 하나가 원자 수십억 개로 구성된다면 그렇게 작은 것에 대해 의미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 우리가 원자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우리의 경험과 관련이 있어요.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이론적 계산이 아니라 경험을 토대로 추즉하는 거죠.”보어가 말한다. 과연 철학자다운 말이다.
1924년 파리
보어와 아인슈타인.. 3년만의 재회다.
그러나 보어는 여전히 광양자(빛은 입자)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양자 도약을 반박한다. 그들은 전차를 타고 같은구간을 여러번 오갔다. 같은 장소에 있지만 그들의 이론은 절대 만날 수 없었던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듯하다.
숨막히는 긴장감을 지켜보는 내내.나도 1924년 파리의 한 전차안의 구경꾼이 되어 그들을 지켜보았다.
1924년 코펜하겐
코펜하겐은 양자 반대 진영의 최전선이다.
빛을 받은 전자가 원자안에서 룰렛 공처럼 제멋대로 튀어도 된다면, 그것이 과연 물리학일까? 아인슈타인은 빛을 받은 전자가 ‘제멋대로’ 튄다는 보어의 BKS(보어,크라머스,슬레이터)이론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양자물리학의 침체기였다.
1924년 파리
프랑스 귀족 출신인 드브로이 왕자가 원자를 살려냈다. 보어의 원자 모형에서 그냥 존재하던 궤도들의 둘레가. 이제 바이올린의 기본음과 화음처럼, 전자 파장의 정배수를 이룬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아인슈타인은 평했다 “루이 드브로이는 거대한 베일의 한 귀퉁이를 걷어 올렸습니다.이것은 모든 물리학 수수께끼 중에서 가장 성가신 부분을 비추는 첫번째 희미한 빛입니다.
”빛은 파동으로, 그리고 입자로 존재하며 두가지 정체성을 모두 갖고, 이 두 정체성은 야누스의 얼굴만큼 대조적입니다.“
1925년 드브로이의 대담한 아이디어가 클린턴 데이비슨의 우연한 실험으로 전자가 파동처럼 행동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증명하였다.
1925년 헬골란트
꽃가루 알러지를 피해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의 섬으로 향한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은 그에게 큰 도움을 준 듯하다. 그리하여 양자역학이론과 마법처럼 딱딱 맞아떨어진 위대한 발견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하이젠베르크가 기록한 숫자판들에서 보른은 행렬 대수학을 떠올린다.
기적은 기적을 낳는걸까? 우연히 기차에서 만난 보른과 요르단은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을 구체화했고 행렬역학이라는 이름으로 증명하였다.
1925년 아로자
슈뢰딩거의 방정식은 우아했다. 그것은 일종의 에너지 함수에 의해 조절되는 장을 설명하고 수학 연산자로 표현된다. 이 방정식을 원자에 적용하면, 장의 모든 정적 패턴, 즉 원자의 에너지 상태를 설명하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슈뢰딩거는 능숙한 수학으로, 보어가 아주서툴게 설정한 양자 규칙에 마법을 부렸다. 슈뢰딩거 방정식이 새로운 양자물리학의 핵심이 되었다.
1926년 코펜하겐
입자와 파동!
둘이 동시에 있을 수는 없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완전히 다르고 절대 합쳐질 수 없어 보이는 두 출발점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다니! 수학공식은 보어를 매료시키지 못한다. 하이젠베르크는 항상 수학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그들은 마치 입자와 파동처럼 같이존재할 수 없는 각기 다른 세계속에 존재하는 듯하다.
1926년 베를린
이제 양자물리학자들은 슈뢰딩거의 파동 아니면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마음을 끈 슈뢰딩거의 승리일까?…, 이야기가 중반으로 흐를수록 긴장감이 흐른다.
1926년 괴팅겐
보른은 파동역학을 이용해 두 입자가 충돌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계산했고 뭔가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충돌 후 튕겨져 나오는 입자의 파동이 연못의 파문처럼 공간 전체에 퍼졌다!
이것이 파동이 아니라고?? 파동이 높을 수록 입자일 확률이라니….보른은 입자와 슈뢰딩거 방정식을 모두 보존하는 걸작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1926년 뮌헨
자. 대결이다!!
나이든 물리학 거장들이 슈뢰딩거에 거는 희망은 크다.
하이젠베르크로부터 위협받는 그들의 물리학을 구하기 위해 슈뢰딩거를 뮌헨에 초대했다. 하이젠베르크는 길고 외로운 투쟁을 벌이며 자신의 사고에서 모든 작관성을 추방함으로써 행렬역학을 추론해냈다.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의 갈등은 수학에 있지 않다. 갈등은 공식이 아니라 해석에 있다. 슈뢰딩거가 말했듯이 이는 물리학의 영혼이달린 문제이다. 행렬처럼 낯선 공식이 아니라 물리학은 우리에게 세계를 더 가까이 보여줘야 한다.
1926년 7.21일 수요모임.. 정통의 물리학을 고수하기위한 강연 그리고 긴장감.. 최고조에 오른다.
하이젠베르크의 반론제기. 한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있게 말한다. 파동을 관찰할 수 없다면 어떻게 ‘실제’일 수 있을까? 물리적 세계 깊숙한 곳의 어두운 핵은 단순한 파동방정식으로 규명할 수 없다.
1926년 코펜하겐
1928년에 디렉은 ‘디렉 방정식’이라는 완전무결하게 아름다운 방정식 하나를 발명했다.
그는 자신의 방정식으로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이론을 화해시켰다. 또한 파울리가 발표한 전자스핀도 설명했다.
디렉은 빅뱅 직후 우주의 절반을 구성하는 재료인 반물질을 발견했다. 디렉방정식은, 전자, 화학, 전자를 자극한다. 그는 탁월한 수학자이자 동시에 우수한 물리학자다.
1926년 코펜하겐
보어의 초대는 초대라기보다 심문에 가까워 보인다. 보어와 슈뢰딩거의 과학 결투가 시작된 셈이다. 두사람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슈뢰딩거는 양자물리학이 고전물리학을 이음선 없이 깔끔하게 잇는다고 본다. 보어는 고전적 현실과의 결별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1926년 코펜하겐
보어는 파동과 입자를 모두 정당화함으로써 안정을 찾고자 했다. 그렇다. 그것은 모순되지만 서로 보완하기도 하고 함께해야 원자 현상의 온전한 그림이 된다.
하이젠베르크는 그동안 양자역학의 핵심으로 통했던 위치와 운동의 불확정성에 직면한다. “불확정성의 원리.” 풀어서 설명하면, 위치와운동량에 대한 불확정성의 곱셈값은 플랑크 상수보다 작을 수 있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해주었던 “무엇을 관찰할수 있을지를 이론이 결정한다.”이다. 세계는 그저 불확실하게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실제로 불확실하다. 세계와 우리의 언어가 맞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보어는 그사이 양자역학의 역설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기만의 고유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그는 그것을 ‘상보성 원리’라고 불렀다. *상보성원리: 전자는 파동으로 존재할 때는 특정 위치에 존재할 수 없고 입자로 존재할 때만 특정 위치에 존재하게 된다.
1927년 브뤼셀
5차 솔베이회의… 구성원들….참가자 29명중 17명이 노벨상 수상자들이다. 정말 물리학자의 어벤져스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이러한 위대한 과학자들을 대거 포진되어 있었던 그야말로 찬란한 시기였다.
옛날 양자물리학 vs 새로운 양자물리학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플랑크, 로렌츠같은 고전 물리학자들은 이미 확립된 질서를 방어한다. 파동이 부드럽게 흐르고 입자들이 궤도위에서 움직인다.그들은 ‘현실주의자’들이고 실재하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자 한다.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디렉으로 대표되는 젊은 ‘도구주의자‘들은 양자역학의 발전을 열망한다. 이들은 철학이나 의미론 따위를 맏지 않는다. 보어는 이들 진영에 소속되기를 거부한다.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대화는 유명하다.
아인슈타인:“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아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 세상은 예측 가능하다 양자역학적 세계를 부정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고전역학을 옹호하는 말이다.
1931년 취리히
파울리의 천재성은 이론에 쏠려있었다. ‘파울리 효과’는 파울리가 등장하는 곳에서는 뭔가가 깨지거나 고장난다는 미신이다. 1930년에파울리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입자의 존재를 발표했다. 전하도 없고 질량도 없고, 거의 모든 측정기를 감쪽같이 피해가는 입자. 그는 이것을 중성자라고 불렀는데 나중에는 중성미자로 이름이 바뀐다. 그때까지 물리학자들은 오로자 전자와 양성자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했었다.
하지만 화려한 성공뒤에 그의 이혼과 어머니의 자살한 직후 파울리는 개인적인 위기를 겪었고 심리적인 불안을 겪었으며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인 융과 만난다.
어두움이 다가온다.
물리학으로 꽃피웠던 찬란함뒤에 물리학자들이 내몰리는 시대적 배경들.. 나치를 피해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수많은 학자들이 이론보다자신의 생명과 안위에 더 걱정해야하는 불운한 시기가 도래했다.
1935년 옥스퍼드
아인슈타인과 편지교환에서 자극을 받은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핵심에 속하게 될 ”양자 얽힘“ 그리고 고양이 한마리를 발명했다. 이고양이는 죽었으면서 동시에 살아 있다. 동시에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다. 죽음과 삶 사이의 모호한 상황의 고양이는 없다. 양자역학은 현실을 표현하지 않는다.
슈뢰딩거의 히틀러에 대한 충성고백…. 자신이 주장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양자역학과는 반대의 결정을 내린것이 가장 안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1938년 베를린
그녀는 때때로 강의실 의자 아래에 숨어서 강의를 들었다.
마이트너는 차별에 저항하며 시위하지 않았다.
여성으로서 사회적 부당함에 목소리를 냈으면 좋았을 아쉬움도 들지만.. 뭔가에 푹 빠지면 다른건 보이지 않는 점을 이해하기에..여성이 설 자리가 없는 사회적 분위기속에서 수많은 남성의 머리에 박혀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실력으로 깼다. 새로운 원소 ‘프로악티늄‘은방사성물질로 주기율표 91번을 받았다.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실험에만 몰두했다는 사실을 후회했다. 결과적으로는 히틀러를 지원한것이기 때문이다.
원자핵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할 수 있는것은 결국 파괴이다. 물리학의 찬란함뒤에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어두움이 시작되었다.
1939년 대서양
충격적 소식을 가지고 대서양을 건너 보어와 로젠펠트는 증기선에 올랐다. 오토 한이 원자를 쪼갰다.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만이 중성자를 발사하여 우라늄 핵을 폭파했다! 오토 한이 측정했던 핵분열은 훨씬 흔한 우라늄-238이 아니라, 휘귀한 동위원소 우라늄-235에서만 일어난다.
천연 우리늄의 겨우 0.7퍼센트만이 우라늄-235다.
먼저 개발 하지 않으면 나치가 한다! 전쟁발발후 히틀러는 우리늄협회를 장악했다. 결국 아인슈타인은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쓴다. 나치에 맞선 원자폭탄 개발을 촉구했는데 후에 그는 이것을 인생 최대실수라고 불렀다. 바로 맨하튼 프로젝트다.
1945년 영국
벽에는 도청장치가 숨겨져 있다. M16은 하이젠베르크와 연구자들이 말하는 것을 모두 듣고 기록했다.
1945년 8.6일 아침, 히로시마에 햇살이 비친다. 분홍색 빛이 하늘을 밝히고 나자 8만 명이 즉사했다. 하이젠베르크는 과학자로서 자부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25년 동안 함께 겪었던 원자물리학의 진보가 수십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을 죽이게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직시해야만 했다.“
마무리하며
물리학에서 역사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찬란했던 물리학의 시대였다. 아인슈타인, 보어, 슈뢰딩거, 하이덴베르크….. 그들의 주 활동무대는 찬란하게 빛이 났다. 물리학의 정설이었던 뉴턴의 미립자 증명후에 빛이 입자냐 파동이냐를 두고 수많은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논쟁하였던 시기. 여전히 진행중이며 역사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입자와 파동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있다를 떠나서 그들이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 갈등들, 번민과 고뇌.. 열정적으로 탐구했던 수많은 진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충분히 의미있게 다가오는거 같다.. 양자역학에서부터 핵개발에 이르기까지.
현실에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선택들. 하지만 인간으로서 후회하지 않는 선택은 참으로 중요한듯 보인다. 과학도 인간다울때. 진정한 과학이라 생각된다.
물리학은 우리에게 미래가 될수도, 무기로 다가올수도 있다.
어두웠던 역사였던 시기를 지나..
그러나 그들이 100년 전에 세운 그들의 이론은 오늘날까지 굳건히 서있다.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숨가쁘게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하다. 지금도 솔베이회의에서 보어와 아인슈타인의 설전을 보는것만 같다. 토비아스휘터의 《불확실성의시대》 를 통해 물리학에 깊이 빠질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지금부터 물리학을 사랑할것만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