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고행이다, 라고 일찍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누군가 말했다. 생채기를 만드는 칼바람을 고스란히 견디며 한고비, 한고비 고통의 순간을 넘다보면 어느덧 마음은 세월이 남긴 흔적들로 어지럽다. 반기는 이 하나 없는데도 바지런히 찾아드는 거대한 삶의 일부, 오로지 홀로 감내해야만 하는 그 필연적 존재 앞에서 당신은 잘 견뎌내고 있는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는 길을 오늘도 묵묵히 걸었을 당신에게 안부를 전하려 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속속들이 알고 있는 무수한 인물들, 방대한 세계 속에서 한줌의 이야기를 추리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미리 밝혀두는 바이다. 또한 허구와 진실, 현실성과 비현실성 이런 것들은 기실 나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므로, 나는 당신이 불필요한 것들은 제쳐두고 이야기의 핵심에 다가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타인의 슬픔과 고통으로 점철된 신철규 시인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에는 한 편의 짧은 소설처럼 강렬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둡고 축축한 골목에서 절박하게 자신의 그림자를 도려내는 남자와 그 기이한 광경을 연민과 두려움이란 양가적 감정으로 지켜보는 화자. 시인이 눌러쓴 활자에 묻어난 그리움 때문일까,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익숙한 장면을 떠올린다. 자신을 드리운 그림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은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이 집요하게 자신을 도려낼 때 그저 발가락 끝으로 땅을 있는 힘껏 누르고서 지켜만 보던 한없이 무력했던 나의 모습. 어찌할 수 없단 걸 잘 알면서도 자꾸만 애석한 물음이 비집고 나온다. 우리가 슬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면 슬픔의 양은 줄어들까 커질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해 "지구만큼 슬펐다"고 표현한 아이의 순수와 속물적 세상이 충돌하며 "한입 베어 문 사과"는 눈물처럼 "입안에 짠맛이 돈다." 생명체의 눈은 은하계의 행성과 닮아있고 무수한 행성 중 하나인 "지구의 속은 눈물로 가득 차 있"기에 슬플 수밖에 없는 운명일 테다. 하여 그 속에서 숨을 쉬는 당신은 아프지 아니할 수 없다. 뜨겁게 차오른 눈물이 차갑게 흐르듯 미처 해주지 못한 말들은 온기를 잃고, 소리 없는 활자의 세계는 고요히 당신을 바라볼 뿐이다.

 

한때 파릇파릇한 생명의 힘을 자랑하던 사람들은 어쩌다 곪아버렸나. 여기에는 쉽게 간과되지만 절대적으로 기억해야 하는 진실이 있다. 대게의 사실은 새빨갛게 따끔거리는 상처가 아닌 딱딱하게 덮여 아문 줄 알았던 흉터에서 비롯된다는 것. 고통이 사람을 성숙케 한다는 말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상처가 아프지 않을 만큼 굳은살이 박인 마음일지라도 입김 하나로 사그라지는 것이 또 사람 마음 아니던가. 누군가는 고통을 자양분 삼고 일어서지만 누군가는 영원히 그 굴레에 갇힌다. 책장을 한참 앞으로 넘겨 유년시절로 돌아가 보자.

 

다비드 그로스만의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도발레는 순수했던 시절이 빗어낸 죄책감으로 평생을 뒤집힌 세계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작은 클럽에서 한껏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무장한 채 가짜 웃음을 파는 그는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이름 모를 관객들 앞에서 속죄한다. 온갖 폭력에 노출된 환경 속에서도 물구나무를 서며 굳건히 엄마와 자신을 지키려했던 아이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영악한 마음을 품었던 그 찰나의 순간에서 영원히 성장하지 못한다. 도발레가 작고 마른 몸을 의자에 파묻고 우유를 들이키는 장면은 그가 지나온 삶을 압축해 보여준다. 본래 한 인간이 품은 고통이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 남이 보기에 티끌 같은 것일지라도 그것을 이고 사는 자는 그 무게에 평생을 짓눌리기도 하는 법이다.

 

배수아의 <뱀과 물> 속 소녀들은 어떠한가. "나는 갈라진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트럭 앞에 서 있었다."는 이 소설집의 첫 문장은 ''라는 존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 버림받고 방치되고 유린당한 소녀들의 근간을 보여준다. 태어나는 것이 아닌 땅에서 불쑥 솟아난 것과도 같은 그들의 존재는 그렇기에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울타리가 없는 아이들은 한 곳에 머물 이유가 없고, 모두들 저마다의 목적을 갖고 길을 떠나지만 여정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더욱 깊숙이 침잠한다. 스스로를 파괴하고 죽음을 갈망하면서도 고통의 근원을 마주하길 거부하던 길라가 백조가 토한 자신의 태아를 씹어 먹는 장면은 두려움과 광기에 사로잡혀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모습과 일체하며 더욱 극대화된다. 죽음까지 주인에게 종속된 스키타이족 말들의 운명처럼, 무력할 수밖에 없는 소녀들은 멈춘 시간 속에 갇힌 채 멈출 줄 모르고 돌아가는 대관람차와 같이 끊임없이 고통 받는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겠다. 당신의 고통을 함부로 가늠하고 재단하지 않겠다. 대관람차를 멈추고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 거짓된 손을 내밀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 당신이 멈추지 않고 책장을 넘겨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우리는 별에서 와서 별로 간다. 삶은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여행일 뿐이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지하묘지 p.96>

 

이곳에 부흐하임의 이야기를 끌고 온 것에 대해 다른 오해는 없으리라.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책들의 도시이자 삶과 문학이 일치하는곳이므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 발터 뫼어스가 들려주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내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매우 적절하다는 것을 당신도 곧 이해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책으로 시작해 책으로 끝나는 곳, 책들의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부흐하임은 언뜻 자유로운 시장 경제 체계에 기초한 듯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모종의 세력에 의해 움직인다. 자신들의 잇속을 위해 악마 같은 짓도 서슴지 않는 그들은 글쓰기에 천부적 재능을 가졌다는 이유로 를 괴물로 만들었다. 그렇다. 끔찍한 연금술로 탄생한 호문콜로스 그림자 제왕.’ 그러나 난데없는 어둠의 봉착 앞에 그의 의연한 태도는 놀랍다. 글쓰기로 인해 지독하게 외로운 삶을 살았고 자신의 존재까지 잃어버렸음에도 그는 결코 자신이기를 멈추지 않는다.

 

책이 되어버린 작가는 선한 이들을 위해 피 흘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책 사냥꾼들에 맞서 지하 묘지를 지키며 글쓰기를 열망하는 자에게는 아낌없이 오름의 비법을 전수한다. 비록 단 한줄기의 햇살도 허락되지 않는 삶이라 한들 기꺼이 저버릴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해하려 할수록 도무지 알 수 없어지는 게 삶이라면 우리는 지구별의 여행자로서 낯선 곳에서 또 다른 낯선 곳으로 머물다 가면 그뿐이다. 그리움과 회한을 짊어지고 살아가도 좋다. 고통스러운 시절로부터 달아나려는 몸부림이 번번이 출발점으로 돌아온대도 괜찮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나아가는 것, 삶이 있는 이유는 오로지 그것뿐이다.

 

아마 당신의 무의식은 난관에 빠진 주인공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생각할 것이다.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고 사건은 마무리되게 마련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고통의 순간은 또 다른 순간으로 흘러간다. 고로 중요한 것은 마지막 장이다. 당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깊은 수렁에 빠졌는지, 어떤 식의 결말을 맞았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삶은 고행이라지만 그렇게 나를 닦아가는 여정엔 고통 외에도 무수한 순간들이 존재하고 그 모든 것이 더해져 비로소 삶은 순환한다. 살을 에던 바람이 어느 순간 산들바람이 되듯이 계절처럼 돌고 돌아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기를, 개개인에게 주어진 고유한 삶을 마지막 장까지 온전히 살아내기를. 당신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고요한 외침에 지나지 않는 나의 글이 그곳에 가 닿기를 바라며. 나는 책이자 삶이고, 또 다른 당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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